◇필라델피아(조너단 드미, 1993)
에이즈에 대한 담론이 아직 유치하기 짝이 없던 시절에 제작된 ‘필라델피아’는 성적 취향과 관련된 정치적 논쟁을 교묘히 피하는 대신 인간의 존엄성을 재확인시켜주는 웰메이드 할리우드 영화이다.
그러나 휴머니즘에 취해 감상을 끝낸다면 뭔가 아쉽다. 이 영화의 진짜 정치성은 에이즈 환자에 대한 차별이 초래할 사회적 비용의 상승을 염려하는 국가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데 있다.
주인공 앤드류는 필라델피아의 유능한 변호사. 그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아챈 회사는 조작된 무능함을 이유로 해고를 감행한다.
꺼져가는 삶에 직면했으면서도 부당한 대우를 수용하지 않고 소송을 걸기로 한 그가 변호사를 찾기란 쉽지 않다.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엄연한 현실에서 그것은 가능성이 없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흑인 이성애자 조가 파트너가 되면서 전개되는 법정장면들은 감동적이다. 지적이면서도 절제된 대사의 향연은 법을 사랑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앤드류를 충실히 그려낸다. 이 대목에 오면 애인을 대하는 태도에서조차 관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를 톰 행크스가 연기했다는 것이 너무도 적절하게 느껴진다.
이 영화는 애초에 관객들이 동성애자의 섹슈얼리티에 관심을 두지 못하도록 차단한 것이다. 변호사인 조의 전략처럼 문제는 부당한 해고가 초래한 정당한 권리의 박탈이지 동성애를 심판하자는 것이 아니다. 결과는 예정대로 앤드류의 승리지만 보수적인 대중의 취향을 감안해서 죽음을 피하지는 못한다.
할리우드 영화가 즐겨 사용하는 기호는 도시이다. 세련된 뉴욕, 에너지가 넘치는 L.A, 어딘지 아담한 샌프란시스코, 과잉으로 범벅이 된 라스베가스 등 세계적으로 수출된 그들의 문화는 도시의 이미지와 그 의미를 유포시키는 데 성공했다. 필라델피아는 미국독립선언이 발표된 곳이다. 평등의 도시, 형제의 도시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주제가인 “스트리트 오브 필라델피아”가 흐르는 영화의 오프닝에서 카메라가 훑어 보여주는 도시 곳곳의 보통사람들은 평등과 형제애의 수혜자여야 마땅하다는 논리 안에 포섭된다. 앤드류 가족의 무한한 이해심과 더불어 엔딩을 장식하는 홈비디오는 또 어떠한가?
앤드류의 꼬마시절이 담겨 있는 화면에는 성적 취향도, 그로 인한 불평등도 없다. 다만 결코 녹녹치 않은 삶을 앞두고 있기에 더욱 귀하게 대접받아야 할 하나의 개인이 있을 뿐이다.
대중영화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입장을 노골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의 정치적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 영화만큼 효율적인 매체도 없다. 이 영화는 마리아 칼라스의 유명한 아리아로 눈물을 유도하는 가운데 에이즈에 관한 태도의 측면에서 대중을 계몽시키는 데 성공한 영리한 텍스트가 아닐 수 없다.
* 차돌바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20 1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