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나누어보려고 했다가 시간을 지나치게 잡아먹는 것 같아 접었던 논의를 뒤늦게 글로 풀어 써 보려고 함미다.
1.
지난 시간에 제가 아래 문단에 대해 계속 문제를 제기했었는데요.
"모든 성 정체성은 선택되는 것이며, 이같은 유동성은 어느 방향으로든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모든 사람은 전면적인 성적 자기 표현을 저해하는 억제 요인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당신은 왜 동성애자가 되기로 결정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당신은 언제 경직된 이성애자가 되기로 결정했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이는 선택(Choice)이라는 단어가 과연 저기에서 적합한 것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미국 심리학회(APA)에는 동성애 관련 FAQ 코너가 있는데, 십 수개의 질문 중 하나가 "동성애는 선택(Choice)입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APA의 답은 "아닙니다(No)" 였구요. 현재 APA는 공식 입장을 약간 수정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은 본인의 성적 지향에 대하여 전혀, 또는 거의 선택(choice)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 "No"라는 단정적인 문장을 조금 더 엄밀하게 가다듬은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성 정체성 / 지향은 선택되는 것"이라는 문장은 "그것은 의식적인 선택이며, 따라서 그 의지에 따라 이성애자 / 동성애자 / 무성애자 / 비성애자 등 다양한 지향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성적 정체성 / 지향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저 문장을 본다면 십상 그런 의미로 해석할 거에요. 저는 이 자료가 성적 소수자들을 위한 자료가 아니라 교사를 위한 지침이라는 점에서 이런 곡해 가능한 - 어쩌면 곡해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 문장이 왜 쓰여졌는지, 저게 꼭 필요한 문장이었는지 통 모르겠습니다.
2.
이런 의아함은 뒤따르는 문장 때문에 오히려 더 커졌는데요.
‘당신은 왜 동성애자가 되기로 결정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당신은 언제 경직된 이성애자가 되기로 결정했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저는 이 뒤에 나올 만한 자연스런 결론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은 이성애자가 되기로 '결정'하지 않았으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이성애자들이 이성애자가 되기를 의식적으로 결정하지 않은 것처럼, 성적 지향은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없다."
"모든 성적 지향은 '선택'된다"는 문장과 정 반대죠.
이하는 사족인데요, 사실 이성애중심주의자들은 말 그대로 이성애는 '자연스러운 상태'고, 동성애자들은 굳이 자연스러운 상태를 버리고 동성애를 '선택'했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저런 질문이 얼마나 유효할지도 회의적입니다.
3.
궁극적으로, 저는 여전히 "모든 성적 지향은 선택된다"는 문장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1) "모든 성적 지향은 유동적이며, 다양한 '변곡점'을 갖는다". 여기에서의 변곡점을 선택이라고 표현. 이건 무난한 해석이긴 한데 선택이란 단어가 너무 쌩뚱맞고...
2) "우리는 어떤 성적 지향을 외부적으로 '표현할지'를 선택한다". 즉, 한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처럼 행동할지 동성애자처럼 행동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 경우, 이는 APA의 공식 입장처럼 보다 정확히 쓰여져야 했겠죠. "우리는 어떤 성적 지향을 외부적으로 표현할지를 선택할 수는 있으나, 성적 지향 그 자체를 선택할 수는 없다."
3) "모든 성 정체성은 (신에 의해) 선택된다." ... 죄송합니다... 라고 쓰고 보니 어쩌면 정말 이게 맞을지도!?...
나는 대충 읽었는데 ㅋㅋㅋ
일단은 네가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 의문을 품을 수 있다고 생각해
sexuality와 관련된 학문들이 우리 일상과 배움의 과정에서 널리 사용되어지지 않다보니
우리 스스로도 때로는 그 의미가 헛갈릴 때도 있는 것 같아
우리가 보았던 자료와 미국 심리학회 의견에서 선택은 서로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추가적인 의미는 데미지 언니가 원문 번역자므로 설명해주면 좋을 텐데
언니가 학위논문 때문에 바쁘니 송년회 때 와서 운이가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