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트랜스젠더 수감중 자해 ‘국가 배상’…“심리불안 상태인데 가위 건네” 판결
교도소에서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성을 지향하는 ‘성주체성 장애’를 겪다 자해한 한 수감자에게 국가가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신체적 자유가 제한된 상태에서 더 큰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구금된 성소수자’ 관리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05년 교도소 남성 수감시설에 입소한 박민수(가명)씨는 성주체성 장애를 겪으며 여성용 속옷을 구입하려고 특별구매 신청을 했지만 교도소에서 불허 결정을 받았다.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진 박씨는 심리적 불안 증세가 악화됐음에도 전문 정신과 상담 등을 받지 못했고, 그사이 주변 수용자들에게 소문이 퍼져 심한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끼게 됐다.
극도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 놓인 박씨는 자살을 결심하고 교도소 담당 근무자에게 ‘도배를 위해 가위를 빌려달라’고 했다. 박씨가 이미 자해 및 자살 우려자로 보고된 뒤였으나 근무자는 가위를 건넸고, 2006년 박씨는 스스로 성기를 잘랐다.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박씨는 외부 정신과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 ‘성주체성 장애’라는 진단을 받게 됐고, 이후 다른 교도소로 옮겨졌다. 2009년 출소한 박씨는 “수용생활 과정에서 끊임없이 성주체성 장애로 인한 고충사항 해결 등을 요구해왔음에도 전문 정신과 상담 등 충분한 의료적 처우가 제공되지 않은 채 방치됐고, 정신적 불안으로 자살의 우려가 예견됐음에도 가위를 제공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1단독 최형표 판사는 “박씨가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 있어 자해·자살 우려자로 보고돼 있었는데도 충분한 고려 없이 가위를 교부했고 사후 감시도 소홀했다”며 박씨에게 3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했다고 3일 밝혔다.
현재 교도소 등 수감시설에는 성소수자와 관련해 ‘성희롱,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독거 수용, 칸막이 설치 등 수용 관리에 철저를 기하고 간부 직원이 수시 상담한다’는 등의 내용이 2003년 지시 공문 형식으로 내려온 것 말고는 훈령·예규 등 공식화된 관리 조문이 없다.
박씨의 소송을 대리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는 “교도소 쪽에서 ‘남자가 왜 여자 속옷을 입으려 하느냐’는 식으로 나오는 등 박씨의 성주체성 장애에 대한 이해 부족 상태에서 대응해 자살 시도로까지 상황이 악화됐다”며 “정확한 진단 뒤 합당한 치료 제공 등 ‘소수자 가운데 소수자’인 트랜스젠더 재소자의 처우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