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 동성애의 정의
동성애라는 말을 쉽게 쓰지만, 그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 사실 애매한것 같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 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정서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으로 나누거나 또는 그 둘을 통합적으로 생각해 볼수가 있을것이다. 나는 다음과 같이 동성애를 나누어 보았다.
가. 강한 정서적 이끌림은 있으나 성적 접촉이 없는 동성간의 관계.
(일반적인 우정보다는 좀더 강하고 둘만의 특별한 관계라는 인식이 동반하는 경우)
나. 정서적 이끌림과 동시에 성행위가 수반되는 동성간의 관계.
다. 성적 쾌락만을 목적으로 하는 동성 관계.
* 여기서 성적인 행위라는 것은 상호간의 육체적 접촉 즉 애무나 성기접촉, 자위행위 해주기 등을 통해서 성적인 흥분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또한 딥키스 정도는 포함되나, 가벼운 포옹이나, 볼키스, 손잡기, 팔짱끼기 등을 성적인 접촉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사실 이렇게 셋으로 단정지어 나누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가)의 경우 비록 성적인 접촉이 없다고 해도 간헐적으로 성적 충동이 있을때 이성적, 윤리적으로 억제하고 있는 케이스도 있을 것이며, (다)의 경우 성적 쾌락만을 위한 접촉이라고 해도 일말의 정서적 이끌림을 느낄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하나 하나의 경우를 따져보자.
(가)의 경우, 과연 이것을 일반적 의미의 동성애로 볼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생긴다. 두 남성간 서로 강하고 배타적인 애착과 유대감을 느끼지만, 성적인 행위를 하지 않거나, 그런 충동이 조금은 있다고 해도 이성적, 윤리적 가치관에 따라 자제하고 있다면 과연 이것을 동성애라고 할 수 있을까?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관점에서 이것은 동성애에 포함되지 않는 것같다. 오히려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처럼 이상적인 우정의 형태로 숭배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관계는 특히나, 고대의 전쟁 영웅문학에서 많이 나오고 있는데, 전쟁터에서는 의리가 매우 중요한 만큼 남성들간의 강한 애착이 매우 중요시 되었기에 이들의 관계는 남녀관계 혹은 가족관계보다 더 강한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일리아드]의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도 이런 관계에 속한다고 볼수 있다. 이런 친밀한 동성간의 관계는 현대 사회에서도 발견되는데, 주로 미혼의 젋은 시기에 한 곳에서 같이 오래 생활한 룸메이트 사이에서 이런 관계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물론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런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시간 함께 생활하다 보면 서로에게 동화되어가고 자연히 정이라는게 싹트고 때로는 타 친구들과는 배타적인 서로에게 매우 특별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성적인 접촉을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들을 동성애자라고 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 대부분이 정상적인 결혼을 하고 정상적으로 살아간다. 때로는 둘 사이에 생긴 긴밀한 스킨쉽으로 인해 둘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이 동성애 관계로 발전하기 보다는 서로에 대한 더 친밀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선에서 끝나 버린다.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에 대해서 부연하자면, 반동성애적 성서해설가들은 애써 그들 사이의 정서적 애착을 경시한채 정치적 동지의 관계로만 해석하려하고, 반면에 친동성애적 해설가들은 그들의 관계를 동성애적으로 몰아간다. 중립적 해설가들은 그들의 관계가 정치적 동반자인 동시에 매우 친밀한 정서적 관계였다고 말하지만, 성적인 행위가 필연적으로 동반했을 거라고는 보지 않는다.
(나)의 경우가 가장 일반적인 의미의 동성애에 부합할 것이다. 더이상 부연 설명이 필요없이, 동성애게 정서적 애착을 느끼며 동시에 그 애착을 성적인 관계로까지 발전시키는 관계이다. 대부분의 동성애자에 해당되는 이야기인것 같다. 부연하자면, 동성에 대한 애착은 사춘기 이전에 충족되어져야하고 사춘기 이후에는 이성에게 끌려야 하는데 동성애자들은 동성에 대한 애착이 충족되지 못한채 2차 성징을 겪게되며, 2차성징을 겪은 후에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2가지, 즉 동성에 대한 정서적 애착과 성적욕망이 하나로 뭉쳐서 동성에게 투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성에 대한 결핍된 애착과, 2차성징 이후에 나타난 성적욕망을 분리시킬 수 있다면 동성애는 극복되어지는 것이다. 동성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는 동성으로부터의 정서적 사랑을 채워줄 수 있는 따뜻하고 사심없는 동성과의 친밀한 교제가 필요하다. 본질적으로 다른 이 두가지의 욕망을 헷갈려하면 동성애자가 되는 것이다.
(다)의 경우는, 이성애자로 살다가 어느날 우연한 기회에 동성과의 성관계를 접하고, 그 관계에서 이성관계와는 또 다른 쾌감, 혹은 그 이상의 쾌감을 느끼고 동성애를 즐기는 사람이다. 이런 경우가 얼마나 많을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아도 할 말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2. 동성애의 원인
동성애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 많은 연구가 있어왔지만, 뚜렷하게 증명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간 제기된 다양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동성애자가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급진적 동성애운동가들은 동성애의 원인을 밝히려는 연구 조차 동성애 차별이라고 주장하며 반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학문의 자유에 대한 도전이다. 또한 비록 동성애가 미국 정신의학회의 결정에 의해 정신이상목록에서 삭제되었지만, 그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당시의 급진적 사회분위기 속에서 동성애자들의 강력한 로비에 의해서 삭제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전문가들은 동성애가 정상적이 아니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단순히 투표에 의해 동성애가 정신질환에서 제외되었다고 그것이 동성애를 정상이라고 규정하는 절대적인 지표는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동성애는 유전이 아니다. 일단 동성애 유전자라는 것이 밝혀진바 없다. 다만 어머니의 자궁에 있을때 호르몬 분비의 부조화로 인해서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아이가 탄생할 수 있다는 학설이 있다. 이 호르몬설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내 생각에 동성애는 대부분 환경에 의한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의 하지 않는 사람이 많겠지만, 모든 인간은 양성애자로 태어난다고 하는게 나의 믿음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화에서 인간은 이성애자로 길러진다.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부모님의 이성애적 행위의 결과이다. 또한 생물학적으로 봤을때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 자연스러움은 물론이다. 그것 자체만으로 우리는 이성애적 환경에 놓여서 교육을 받는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문화 콘텐츠는 이성애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성애자가 되는것이다. 반면에 동성애적 성향은 '우정' 또는 '의리', '형제애' 등으로 性이 배제된 관계로 유도되어 진다. 아마 이것이 인류의 진화에 가장 도움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성간의 결합은 비생산적이고, 비위생적이기 때문에 권장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가 생기는 이유는 무었일까? 아마도 그 이유는 사춘기 이전의 가족관계와 교우관계에 있을 거라고 본다. 또한 어렸을때 자의적 타의적으로 경험한 동성애적 성접촉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본다. 이에 대한 여러 학설을 굳이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출생후 이성애자로 발달해가는 사춘기 이전의 과정에서 그 메카니즘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못해서 동성애자가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동성애가 일정부분 허용되거나 또는 이성애보다 오히려 숭고한 '고급 취향'으로 여겨지는 문화도 발견되는데,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 고대 중국의 황실, 일본의 무사집단 등에서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때의 동성애는 오늘날의 동성애 문화와는 좀 다른 구석이 있다. 일단 위에 열거한 시대는 남성 우월주의가 팽배한 시대였다. 한마디로 여자는 인간취급을 못 받는 시대였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남성간 동성애는 사실 굉장히 비판 받아야 할 점이 많은 지극히 남성우월주의적인 행태가 반영되어 있다. 저 시기에 동성애를 행한 사람은 동성애자가 아니라, 부인이 있으면서 또하나의 취향으로서 남성과 관계를 맺었던 경우가 더 많았을 것이다. (여자와의 섹스는 아이를 낳기 위한 수단일뿐이고, 동성과의 접촉을 보다 숭고하게 여기기도 했다) 오늘날 동성애주의자들은 동성애의 오랜 역사를 내세우기 위해서 고대 그리스 등을 예로 들지만, 내 생각에 이것은 오늘날의 동성애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며, 또한 여성이 완전히 무시된 것이므로 소수자의 인권을 내세우는 그들이 앞세워서는 안될 케이스 같다.
위에든 문화권의 예는 동성애가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다시말해서 동성애가 하나의 취향으로 인정되는 문화권에서는 누구나가 동성애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동성애운동가들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호모포비아들이 '동성애는 이상하고 변태적이고 더러운것' 이라는 공격을 할때, 동성애운동가들은 흔히 다음과 같이 반격한다. '동성애는 유사이래 존재해 왔고, 고대 그리스나 로마시대 같은 경우에는 상당히 보편적이었으며 오히려 이성애보다 더 높에 평가되었다.' 동성애운동가들이 이와 같이 주장할 때, 그들 스스로 동성애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문화에 따라 동성애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질수도, 반대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또한 그들은 다음과 같은 공격에 대해서는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동성애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내 아이를 동성애자로 만든다' 라는 주장을 기독교 단체에서 했을때, 동성애운동가들은 '이성애자가 동성애 드라마 본다고 동성애자가 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억지다' 라고 항변한다. 물론 드라마 한편으로 갑자기 사람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동성애가 차별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환경에서 태어나 성장하는 아이들은 분명 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동성애운동가들은 이사실을 애써 부정하려는 것 같다. 즉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서 동성애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내세울 때도 있고, 반대로 그것을 부정할 때도 있는 것이다. 이 명백한 모순을 제대로 지적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 나는 호모포비아가 아니다. 하지만 동성애가 이성애와 똑같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동성애자가 늘어났을 때의 사회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호모포비아들의 행동도 전혀 이해 못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러면 동성애의 문제점을 이야기해 보겠다.
3. 동성애의 문제점
反동성애자들이 동성애의 문제점으로 들고 있는, 저출산의 문제라던가 소위 '찜방'등의 문란한 성문화는 제외하겠다. 저출산의 문제는 동성애자들에게 국한시기키 어려운 문제이고, 이성애가 당연시되는 현재에도 집창촌의 문제, 룸싸롱의 변태적 집단 성행위등의 문란한 문화가 있는 것을 보면, 동성애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진다고 해도 그런 찜방같은 문란한 음지 문화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고로 동성애가 인정되면 찜방같은 문란한 음지문화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동성애운동가들의 주장 또한 지나친 낙관론이라고 본다. 내가 생각하는 동성애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가. 성 구분의 혼란
오늘날 사회의 모든 것은 남/녀를 구분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남/녀 화장실이 구분되어 있어며, 남/여 탕이 있다. 또한 단체 출장이나 여행 등에서 숙박을 해야하는 경우 남자끼리 여자끼리 잔다. 다시 말해 기본적으로 동성간에는 성적인 관심이 없을 것이란 가정하에 대부분의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동성애자가 증가한다면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예상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남교사가 남자 초등학생들과 함께 캠프에 참여하여 그들과 숙박을 함께 할경우, 그 남교사가 공인된 게이라면 부모의 심정은 불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사실 가장 덜 걱정되는 문제라고 볼수 있다. 왜냐면 모든 동성애자들을 잠재적 성추행자라고 판단하는 것도 지나친 기우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녀를 분리하는 이유는 꼭 성적인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것만이 아니라, 동성애자 이성애자를 떠나서 이성에게 몸을 노출시킨다는 것 자체가 수치심으로 다가오기 때문인 것인데, 아무리 동성애자라 할지라도 동성간에는 그런 수치심이 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혼란이 어느정도 야기될 수는 있다.
나. 항문성교및 AIDS의 위험성
내가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이 이 항문성교의 위험성이다. 그러므로 여성 동성애자들 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누군가 '모든 동성애자가 항문섹스를 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반론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성의 성 본능(삽입 본능)을 고려해 본다면 궁극적으로는 항문성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항문은 성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들을 가져온다. 일단 지속적인 항문섹스의 결과 나타나는 항문파열, 괄약근 파열에 의한 항문기능의 상실, 그로인해 변이 흐르는 변실금 등의 문제이다. 그들 딴에는 사랑하기 때문에 한 행위이지만,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의 신체를 파괴하는 행위인 것이다. 누군가는 '이성애자도 항문성교를 한다' 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성애 이성애를 떠나서 항문성교는 정말로 상대방의 신체를 파괴하는 행위이지 결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또한 필연적으로 AIDS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AIDS는 보균자가 아닌 깨끗한 두 사람 사이에서는 그 무슨 짖을 해도 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즈 통계를 보면 에이즈 환자의 절반 정도가 남성간 동성애를 통해서 감연된 사람들이다. 1/2 이라고 하니 언뜻 들으면 반반인것 처럼 느껴지지만, 남성 동성애자를 대충 3%로 쳤을때 동성애자들의 에이즈 감염률은 상당히 높아진다. 게다가 실제로는 동성애를 통해서 감염되었어도 사회적 시선 때문에 이성애를 통해서 감염되었다고 거짓말 하는 경우도 상당수라고 한다. 에이즈와 동성애가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현실적으로는 틀리다. 동성애와 에이즈는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4. 동성애운동의 문제
지금부터는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동성애운동의 문제점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동성애운동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동성애도 이성애와 똑같은 법적, 제도적 대우를 받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성애도 이성애와 똑같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사회를 지향점으로 삼는 일련의 정치,사회,문화적 운동'. 내가 동성애운동을 비판적으로 보는 이유는 이 운동은 필연적으로 반동성애운동(호모포비아)을 동반하며, 찬반 양론의 동성애 담론이 퍼지는 것이 대다수 침묵속에 사는 동성애자들의 삶을 오히려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동성애는 유사이래 존재해 왔다. 호불호, 정상 비정상을 따지기 이전에 분명 동성애자는 일정 비율로서 인류역사속에 존재해 왔다. 또한 동성애는 성적 기호만 다를뿐 그 외 능력에 있어서는 일반인과 다름이 없기에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상적으로 기능해왔다. 우리가 흔히 하고 있는 오해가 있는데, 예전에는 동성애라는 말도 끄내지 못할 정도로 탄압받았고, 오늘날은 그나마 동성애 인권운동 때문에 동성애가 조금씩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언뜻 들으면 사실인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여러가지 다양한 자료들을 보면 오히려 과거에 동성애는 하나의 특이하고 별난 행위로 받아들여졌을 뿐 혐오의 대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들어내 놓고 자랑할 만한 것은 못되지만, 주변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비난하고 경멸하기 보다는, 그져 그 사람 취향이 별나고 남사스럽구나 하는 정도로 넘어갔던것 같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도 그런 레즈비언 아주머니 커플을 본적이 있다. 아주 오래전 동성애라는 말을 들어보기도 전 80년대, 우리 동네에 레즈비언 커플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내 기억에 그 분들은 계모임에도 참석했고 동네에서도 전혀 손까락질 같은 것을 당하지 않았다. 물론 당시에는 동성애운동가도 없었고 그에 대항하는 호모포비아도 없었다. 그냥 좀 특이한 사람들이라는게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 인식이었을뿐, 그들도 우리의 이웃이기에 크게 비난하거나 따돌리지 않았다. 내 생각에 동성애자들에 대한 안좋은 시선이 확대된 것은 에이즈라는 병에 대한 두려움이 큰 몫을 한것 같다. 그리고 더블어 동성애운동이 힘을 얻게 되면서 그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수 있는 반동성애운동 또한 커진것 같다.
나는 동성애를 정상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그들이 스스로 커밍아웃을 하고 나는 동성애자입내 떠벌릴 필요도 없다. 더욱이 자신의 정체성을 동성애자로 속단하여 보다 완전한 관계인 이성과의 만남에 선을 글 필요도 없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존재하면 된다. 묻지도 않고 밝힐 필요도 없다. 동성애자들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함께 어울리면 되는 것이다. 나는 이성애자, 너는 동성애자 그렇게 구분지을 필요도 없는데, 오히려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구분지을 필요가 뭐 있는가? 본인이 스스로 치료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와줄 필요는 있겠다. 아마도 대다수 동성애자들에게는 이런 세상이 더 편할 것이다. 하지만 동성애운동이 커갈수록 반동성애운동도 커간다.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는 점점 다른 존재가 되어간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은 점점 뭔가 특별한 사람으로 거론되어진다. 이런 현실이 오히려 그들에게 더 불편하지 않을까? 동성애자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 그 두명의 레즈비언 아주머니는 그냥 평범한 이웃주민으로서 우리곁에 살았다. 하지만 오늘날 아마도 그 아주머니들은 주변사람들의 시선에서 '저 사람들 동성애자라며..' 하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그 수군거림이 호의적이던 적대적이던 간에말이다. 과연 그분들에게는 어떤 시절이 편했을까?
5. 동성애가 인정되야 한다고 흔히 말하는 이유 2가지에 대한 반론
가. 사회적 시선에 못이겨 결혼하는 동성애자 때문에 애꿋은 여자가 피해를 본다.
사실 이런경우 굉장히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독신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야하는 것이지, 동성애의 문제가 아니다. 독신남자는 이 사회에서 더한 차별을 받고 있는데, 이것이 문제의 본질인 것이지 동성애의 문제가 아니다.
나. 동성애가 인정되야 찜방등의 문란하고 더러운 음지 문화가 사라진다.
내 생각은 반대다. 집창촌, 변태이발소, 룸싸롱, 단란주점 모두 이성애 문화이다. 동성애가 인정되면 오히려 이런 저질 문화의 동성애 버전이 출현하지 않을까?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기 바란다.
6. 결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아름답다. 하지만 사랑에도 지켜야할 선이 있다. 혹시 동성을 사랑한다면, 진실되게 사랑한다면 성적인 관계는 맺지 말아야 한다. 그럴때 그 사랑은 아름답다고 칭송되어 지고 평생 형제와 같은 관계로 서로 의지하며 지낼수 있지만,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면 빨리 불타오르고 삭아지는 장작처럼 쉽게 꺼져버린다. 브로크백 마운틴....그건 영화다. 영화니까 가능한거다. 이 글을 읽는 사람중에 혹시 한때의 호기심으로 아니면 잘못된 분위기에 이끌려 한두차례 동성친구와 성접촉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사랑하는 친구라면, 그 친구와 영원히 친구로 지내고 싶다면 그런 행위를 그만두길 바란다.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고 반성하면 좋은 친구로 남을 것이다.
그러니 서로에게 사죄하고 반성할 필요가 없습니다
죄인은 나와의 다름을 인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해하는 척하면서 결국은 아니고 하지 말라며
보이지 않은 칼을 들고 죄없는 사람들을 찌르는 사람입니다
빨리 불타오르고 삭아지는 장작처럼 쉽게 꺼져 버리는 사랑은
동성애든 이성애든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고난이든 시련이든 쉽게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지닌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동성애든 이성애든 호기심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성애도 이성애처럼 그냥 사랑이고
동성애자도 이성애자처럼 그냥 사람입니다
자연스러운 사랑이고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행복하고 평등할 권리가 있습니다
동성애자도 사람입니다
동성애자도 자신의 사랑으로 행복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 평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