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queer
언어는 차이와 권력의 파생물입니다. 특히 정체성을 지칭하는 언어들은 싸움의 한복판에 있기 마련입니다.
퀴어queer라는 용어는 아직도 전쟁 중입니다. 1969년 스톤월 봉기 이후 1970년대부터 퀴어라는 말이 조금씩 사용되어지다가 본격적으로 사람들 입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1989년 퀴어네이션Queer nation이라는 급진적인 단체가 결성되면서부터입니다.
퀴어는 본디 '이상한, 비정상적인, 별종스러운' 등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만, 퀴어네이션은 이 평가절하된 속어를 정치화하자고 주장했습니다. 또 게이, 레즈비언 등의 동성애자를 비롯한 다양한 성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위해, 이 모든 다양한 성적 소수자들을 아우르는 말로 '퀴어'라는 용어를 제안했던 것입니다.
퀴어네이션은 단순히 이성애 사회로 편입되려는 시민권 전략을 용인하지 않았을 뿐더러, 'Queer as Fuck!(성교하는 별종들)'라는 구호가 의미하는 것처럼 경멸의 속어를 전면에 내세워 정치화함으로써 애써 점잖은 척하는 동성애자들의 위선을 꼬집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퀴어다. 그것에 익숙해져라!”
"Hey hey, ho ho, homophobia's got to go!"
"인종주의자, 성 차별주의자, 반동성애주의자, 고집불통들은 썩 꺼져버려라!"
편견에 찌든 사회를 향하는 그들의 구호는 직선적이었으며, 워싱턴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1993년)에 대해 적극적으로 보이콧할 만큼 이성애자인 척하며 인정을 구하는 동성애자들을 비판했습니다.
이후 퀴어라는 용어는 사람들 입에 많이 회자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여러 정치적 의미를 지닌 채 떠돌고 있는 형국입니다. 일단의 동성애자 인권 활동가들, 특히 맑시스트들은 퀴어를 주창하는 이들은 '분리주의'를 강변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동성애자의 평등권 쟁취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퀴어라는 용어는 여전히 전쟁 중이며, 여전히 퀴어네이션과 같은 운동을 펼치고 있는 일단의 운동가들이 존재합니다.
미국 gay shame
http://chingusai.net/bbs/zboard.php?id=fre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keyword=gay&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18
영국 queeruption
http://www.queeruption.org/
한국에 이 퀴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98년 퀴어영화제가 개최되면서부터입니다. 이후 한국 동성애자 커뮤니티에선 그 말에 담긴 정치성과 상관없이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보갈과 이반
'보갈'은 7, 80년대 종로 등의 게이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던 대표적인 은어입니다. 70년대 종로 게이 커뮤니티가 형성되던 시점, 박정희 정권의 도시 계획에 의해 사창가였던 낙원동이 재개발되었고, 그곳에 서서히 게이 바, 극장 등이 들어서면서 '갈보'라는 용어를 뒤집어서 동성애자 스스로 자신들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하던 은어였습니다.
이후 이 보갈이란 말은 90년대 초반까지 위세를 떨치다가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시작과 함께 점점 소멸되기 시작했습니다. 보갈이라는 말을 대체한 은어는 이반(二般, 異般)이었습니다. 이반의 유래에 대해서 90년대 초반 동성애자 인권 활동가 사이에 논쟁이 있었습니다.
크게는 일반一般적인 사람들보다 열등하다는 뜻으로 자신들을 지칭하기 위해 이등시민을 의미하는 이반二般이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주장과, 일반적인 사람들의 성 정체성과 '다른' 정체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뜻하기 위해 동성애자를 비롯한 다양한 성적 소수자들을 이반異般으로 불렀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여하간 현재 이반이라는 용어는 동성애자 커뮤니티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러 이성애자들도 이반이라는 속뜻을 알고 있습니다. 이 이반이라는 용어는 미국의 '퀴어Queer'와 비슷한 맥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동성애자를 비롯한 다양한 성적 소수자들을 일컫는 점도 그렇고, 자기 비하와 체념을 털어내고 보다 능동적인 의미로 이반이라는 은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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