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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호][활동스케치 #4] 2026년 1월 주한외교계 LGBT+ Coordination Group 참여 후기: 연대를 마주한 자리에서
2026-02-06 오전 01:17:16
18
기간 1월 

 

[활동스케치 #4]

2026년 1월 주한외교계 LGBT+ Coordination Group 참여 후기

: 연대를 마주한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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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OUT 2026 정치 축제가 시작되기 전날인 1월 14일, 저는 친구사이의 대표이자 RUN/OUT 기획팀의 일원으로 국내 외교계의 LGBT+ 협의그룹(Coordination Group)의 분기별 정례회의에 '친구사이의 RUN/OUT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를 목적으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높은 천장과 주황색 조명, 빼곡히 앉으면 40명은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미음자 책상 배열에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포르투갈, 벨기에, 콜롬비아, 프랑스, 네덜란드 등 각국의 대사와 외교관, 그리고 대사관 직원들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단체와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많은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과의 상황은 어떻게 비교될 수 있는지라는 아시아 지역에 대한 질문부터, 이른바 진보 정권이 들어선 상황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등 국내 정치 지형 전반에 대한 질문, 그리고 RUN/OUT 프로젝트 안에서 LGBT 다양성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의 질문까지. 질문에 답을 하면서 저는 RUN/OUT을 설명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우리의 현재와 앞으로를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국내 정치 지형 전반을 이야기하며 성소수자 정치가 왜 개인의 용기나 상징적인 대표성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경로의 문제인지를 다시 언어화했고, 일본과의 차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문화적으로 가깝더라도 서로 다른 정치 환경에 따라 각자의 조건이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RUN/OUT은 누군가를 무대 위에 세우는 결과를 넘어서, 그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조건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점이 스스로에게 더 분명해졌습니다.

 

한편, 한 외교관께서 던져준, "프로젝트 안에서 LGBT 다양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대표성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쉽게 단일한 이미지로 환원되는지, 그리고 그 환원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다시 배제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RUN/OUT이 지향하는 것은 하나의 ‘모범적인 정치인’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정체성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정치와 만날 수 있는 복수의 경로를 상상하고 실험하는 일이라는 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또렷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솔직한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대화는 진지했고 공감의 언어도 분명 존재했지만, 외교관들에게 구체적인 행동이나 명시적인 개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 역시 분명하게 느껴졌습니다. 국제적 연대는 중요하고 의미 있지만, 그것이 국내 정치의 변화를 대신해주지는 않습니다. 이 한계는 좌절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어디까지를 국제 연대에 기대할 수 있고 어디부터는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계를 다시 정리하게 만든 경험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이 만남은 RUN/OUT에 대한 지지와 관심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 프로젝트의 책임이 결국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다시 자각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국제 사회의 관심과 연대는 분명 힘이 되지만,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정치의 지속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일은 결국 이곳에서, 우리의 언어와 우리의 리듬으로 쌓아가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회의장을 나서며 높은 천장과 우리에게 한마디라도 응원을 전하려는 참석자들의 눈빛과 악수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공간은 분명 연대의 상징이었지만, 제가 더 오래 마음에 담고 나온 것은 그 공간 바깥에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시간들이었습니다.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정치(인)를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지금의 한국에서 RUN/OUT의 목표가 공격적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RUN/OUT은 영웅처럼 등장할 누군가의 당선을 위한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RUN/OUT은 성소수자 정치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반복 가능하고 재생산 가능한 과정이 되기 위해 필요한 질문들과 우리만의 해답을 하나씩 쌓아가는 축적이기 때문입니다. 2026년 1월 14일 주한외교계 LGBT+ Coordination Group 참여는 우리가 그 한복판에 서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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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대표 / 한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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