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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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남들 사이의 터울 #10
: 거기에 내가 없었다
한때 결혼식 축가를 많이 부르러 다녔다. 꽤 쏠쏠한 알바였고, 축가 선곡과 연습에 열심히 임했다. 그러던 어느날부턴가 결혼식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저런 장황한 이벤트가 내 몫이 되지 않을 거란, 될 리가 없으리란 생각을 자를 수가 없었다. 축가를 부탁한 절친한 친구의 결혼식을 앞두고 사흘을 앓았다. 절친하기에 내 몸 상태를 이해해주는 게 아니라, 절친하기에 그 무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치러내야만 하는 거였다. 온갖 기운을 끌어써서 펑크를 면하고 무대를 치르고, 집에 돌아와서는 또 사흘을 앓았다. 그 때 이후로 남의 결혼식에 가본 적이 없다. 저 세레모니는 명백히 나를 아프게 하는 일이었다.
한때 절친했던 다른 친구가 있었다. 그와 여러 가지 일과 인생의 사건을 더불었다. 어느날엔가 결혼을 한다고 했다. 배우자를 소개하는 술자리에 나를 불렀고, 그닥 나가고 싶지 않은 육신을 이끌고 그 자리에 합당한 의전을 치렀다. 결혼식 일자가 다가왔지만 거기에 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일지 않았다. 예정된 고통의 장으로 나를 내던질 기력이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몇년 뒤 그 친구가 나를 씹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흔히 말하는 결혼식 인맥 정리를 처음 겪어본 나는 적이 당황했다. 그 세레모니가 자기에겐 중할 수 있어도 남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공리가 그렇게 눈앞에서 무너질 줄은 몰랐다. 일찌감치 커밍아웃을 했던 친구였음에도, 나는 내가 평소에 하던 말을 이 친구가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그 친구는 그렇게 장례식장에서도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됐다.

누구에게는 결혼이 중요하고 누군가에게는 결혼이 중요하지 않다. 이 문장에 도사린 비수는 그 호불호를 마치 개인의 차원에서 평등한 것처럼 호도한다는 것이다. 마치 누군가는 이성애자이고 누군가는 동성애자라는 진술이 그 둘 사이의 위계를 은폐하는 것과 같다. 결혼이 중요한 사람의 정서는 결혼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의 정서보다 압도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취급받는다.
가령 결혼이 중요하지 않은, 또는 중요할 수가 없는 사람이라 해서 결혼이 중요한 사람을 미워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세상엔 나와 다른 수많은 남들이 있고, 내게 중요한 것을 그닥 중요하게 생각 안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다. 그러나 결혼이 중요할 수가 없는 사람이 자기 결혼식에 안 왔다고 남을 모르는 취급하는 사람을 존중하기란 어렵다. 그건 사람이 남에게 베푸는 호의의 여부를 떠난 정서적 불평등의 문제다.
제도화된 행복이란 무시무시한 힘을 갖는다. 왠지 이성애자가 아니라 불행한 것 같고 왠지 결혼을 안해서 불행한 것 같은 느낌은 망상을 넘어 제도화된 감정이고, 그건 개인의 호불호를 뛰어넘은 구조적인 사회 현상이다. 결혼·동거 관계에서 날이면 날마다 구타당하는 여성과 퀴어 문제를 남자 잘못 만난 내 탓으로 개인화하지 말고, 가족 안팎의 정의를 바로세우는 사회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는 데서 성정치의 문제의식이 나왔고, 젠더·섹슈얼리티와 관련된 모든 운동의 전제가 거기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제도화된 행복은 습관적으로 그 모든 일을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모두의 결혼'이라는 프로젝트로 성소수자 혼인평등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비혼 운동측과 결혼이 중요할 수가 없는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모두의 결혼'이라 부를 수 있냐고 문제제기했다. 거기에 돌아온 대답 중 하나는, 이때까지 운동 열심히 해온 동지가 오랜 연인이랑 결혼 좀 하겠다는데 그걸 축하 못해주냐는 것이었다. 그때 결혼이 중요할 수가 없는 사람은 졸지에 운동과 친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속좁은 인간으로 다시금 개인화되었다.

한때 오랜 연애 경험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 서로에게 결혼을 하고 싶냐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때 지금 우리 관계가 이렇게 튼튼한데 그런 제도적 굴레가 꼭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고 답한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 관계가 바뀌고 생각도 바뀐다. 헤어지고 나눴던 대화 가운데 기억나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만약 결혼한 헤테로 커플이었다면 헤어지지 않았을 것 같지 않냐는 말이었다. 그때만큼은 그렇게 사랑이 이울어도 제도적으로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이성애 결혼이 참으로 부러웠다.
비혼주의에 큰 뜻이 있은 사람이 아니었어서 그런지, 결혼한 사람들을 보면 속절없이 부럽고, 내가 깨치지 못한 관계와 인생의 비밀을 저들은 알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을 한다. 그것이야말로 제도적인 행복이 작동하는 방식임을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그만둘 수 없고, 그렇게 안으로부터 사람을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제도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문제를 개인화하지 말자던 운동 단체의 사람들은 적어도 그런 제도의 문리를 아는 줄 알았다.
모든 인생의 곤경이 결혼에 근접한 친밀한 배우자를 못 만나서 그럴 것이라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부당하기 짝이 없는 제도적 행복의 망상에 사로잡혀 있을 때, '모두의 결혼' 캠페인의 공보물을 보았다. 다른 누구도 없는 오롯한 두 사람이 서로의 친밀성을 과시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친밀한 배우자 둘이라면 천지가 개벽하고 한강물이 용솟음칠 사적인 행복과 해외의 펀딩이 오겠으며 그것의 귀결이 과연 동성혼이라는, 대중적으로 친숙하고 간명한 메세지였다.
그들은 과연 아름다웠지만, 그 공보물 어디에도 내 자리는 없었다. 그 두 분들과 나는 서로 참혹하게 다른 남이었다. 운동판에 있으면서 그 때만큼 고독했던 적이 없었다. 두 분들의 미래를 응원하지만, 그 두 분들의 운동에 함께 하기란 어려웠다. 개인화하지 말자 했지만 결국은 개인이었고, 사려되리라 믿었던 것들은 결국 사려되지 않았고, 같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결국 같지 않음을 깨닫는 경험은 그렇게 늘 가장 예민한 안으로부터 찾아왔다.

직장과 운동판에 커밍아웃하고 난 후부터, 고향에 있는 원가족과는 심리적인 거리를 두고 살았다. 원가족에게 커밍아웃하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 커밍아웃할 만큼 심리적인 거리가 이미 가깝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가족을 떠나온 만큼 새로운 터전과 공동체에서 만날 친밀성과 관계의 욕구는 강해진다. 관계의 욕구와 명의가 강하면 대체로 그 관계는 잘 버텨내지 못한다. 인간관계는 유리알처럼 예민하고 취약한 것이고, 그 취약함에 따르는 당연한 형태의 실패와 반목이 뒤따른다. 그럼에도 원가족을 떠나온 사람은 적어도 이번 관계에서만큼은 실패하고 싶지 않고, 퀴어판이 제도적으로 떠드는 프라이드에 값하는 연애를 구가하고 싶고, 사계에 연구 대상으로 쓰임이 있을 바람직한 성소수자 커플이 되어보고 싶고, 그러한 바람직함에 동성혼도 한번쯤은 타의 모범이 될 캠페인으로 고려해보고 싶다.
직장으로부터 명받은 해외 출장차 귀찮은 몸을 이끌고 10년만에 여권을 재발급하러 갔을 때, 유고시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의 연락처를 쓰라는 서류 앞에 한참을 머뭇거렸다. 심리적으로 이미 거리를 둔 원가족 외에 내가 지내고 활동했던 커뮤니티에서 여기에 이름을 쓸 한 사람도 찾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 때 깨달았다. 게이스북에서 유고시 내 계정을 관리할 사람에게서 헤어진 애인을 지우던 그 때의 스트레스가 다시 찾아왔다. 그 때에 제도적인 행복은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원가족을 버리고 잘난 체하던 네가 결국 네 삶에 필요한 친밀성과 애착을 짓는 데 하나도 성공하지 못한 걸 보니 너는 명백히 실패한 인생이라고. 그러니 위선 그만 떨고 나가서 네가 부정한 척했고 사실은 오매불망 바라온 결혼 상대를 찾아 지금보다 가열차게 너를 팔아보라고. 가서 국민께 용서받을 때까지 끝내 네가 틀렸노라고 복명복창하라고.
그게 제도적인 게 아니라 진짜 내 감정이고 욕구처럼 느껴질 그 때, 나는 살면서 만난 많은 좋은 사람과 많은 좋은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 기억에 비추어보면, 아무리 봐도 제도적 행복이 부여한 그 세계에 내 몫은 없었다. 마치 '모두의 결혼' 캠페인의 휘황한 이미지에 아무리 봐도 내 자리가 없었듯이. 내가 머물 자리가 없으면 자리가 날 때까지 그 자리에서 즙을 내리는 일은 어느 시점의 연령 이후 여러 게이바에 앉아 늘상 해오던 짓이고, 볼 일이 끝난 곳에 어룽거리지 말자는 것은 그렇게 즙을 내릴 마음의 힘이 다하고 난 후에 예언처럼 나를 찾은 깨달음이었다. 내 자리가 없는 곳에 즙을 내려서까지 내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일은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것도 사람을 밀어내지 말자며 어깨 걸고 다짐하던 운동에서만큼은. 네 정서적 불평등은 오로지 너의 패착이고 실패라고 말하는 소위 '동료'들 앞에서는.

동성혼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걸 얄팍하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문단을 세이프 워드처럼 한참을 쓰다 그만두었다. 대체 누구에게 들리라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어서다. 설명이 길어지는 건 좋지 못한 신호다. 존재는 존재하라고 있는 것이지 설명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고, 세이프 워드는 짧을수록 효과적이다. 나는 애인의 샅과 샅 너머의 퀴어 공간(commons) 모두를 원하고, 그 가운데 관계에 경중을 매기고 누군가를 비참하게 만드는 모든 것에 반대한다. 일상이 정치라고는 내가 먼저 말 안했고 당신들이 먼저 말했고,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
내가 남 생각한다고 남이 나 생각하는 것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부터, 그걸 알고서도 남 생각을 그만두지 않는 것부터가 어른의 인생이다. 시간이 지나면 나도 운동도 모두 지금보다는 필시 어른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렇게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내가 느낀 분노와 슬픔을 없는 척하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게 혹시 내 탓이고 내 사적인 감정이고 내 유별남이 아닐까 몇십 번을 돌려 생각한 나를 추도하는 일이 당장 오늘의 급선무라 느낀다. 말해두건대 그때의 일은 전혀 괜찮지 않았고,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겪어서는 안되는 불평등이었다.
* 이 문제에 대해 필자가 쓴 다른 기사는 다음이 참고된다.
「남들 사이의 터울 #8 : 쓰레기같은 결혼/제도」, 『친구사이 소식지』 170, 2024.8.
* 이 글을 쓰는 데 다음의 책을 참고했다.
캐시 루디, 박광호 옮김, 『섹스 앤 더 처치 : 젠더, 동성애, 그리고 기독교 윤리의 변혁』, 한울, 2012[1997], 4장.
캐슬린 린치 외, 강순원 옮김, 『정동적 평등 : 누가 돌봄을 수행하는가』, 한울아카데미, 2016[2009].
Jane Ward, Not Gay: Sex between Straight White Men, NYU Pres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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