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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챠밍한 게이들의 문화살롱 - 챠밍스쿨을 돌아보며
챠밍스쿨과 관련하여 소식지글을 써 달라고 했을 때, '언제 시작했지?'라는 생각을 더듬다가 무척 긴 한숨을 내 쉬었다. 생각을 더듬어도 그 시작에 대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친구사이 홈페이지를 검색하다 '벌써 10여년이 흘렀구나'라는 생각에 ‘헉’하고 놀라고 말았다. 그러면서 걱정이 되었다.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친구사이 20’ 행사마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어떻게 10여년이 지난 행사에 대해 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되었고, 10여년이 지났음에도 친구사이 행사에 함께 참여하고 그때 만난 친구들과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내 현재의 모습을 보니 친구사이랑 함께 늙어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묘한 안도감과 뿌듯함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기억을 더듬어보면 챠밍스쿨은 대략적으로-아쉽게도 친구사이 홈페이지에도 초기에 진행된 챠밍스쿨에 대한 기록이 뜨문뜨문 보인다.- 2003년 7월 정도에 시작하여 2006년 하반기에 게이컬쳐스쿨로 명칭이 변경되기까지 3년 동안 22강 정도가 진행된, 챠밍한 게이들을 위한 교양 강좌였다. 비정기적으로 진행되었으며, 한 달에 4번이 열리기도 했고, 두어 달에 한 번 열리기도 했다. 지금 현재 여전하게도 남성동성애자들이-혹은 호모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어려운 세상인데, 그 당시 남성동성애자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하기는 지금보다 수월치 않은 시대였다. 그것도 친구사이 사무실을 벗어난 공개적인 장소에서 친구사이 명칭을 걸고 하는 문화행사였으니 ‘사람들이 올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매우 컸었다.
그러다보니 강의의 주인공들인 사람을, 게이들을 모으는 것이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때론 친구사이 소모임인 마린보이 운영자를 협박하여 마린보이 회원을 동원하거나 전혀 관심 없는 Gay 친구들을 윽박질러 동원하기도 했다. 물론 챠밍스쿨을 계기로 친구사이 행사에 처음 참여하는 이들도 매우 많았다. 그렇다보니 챠밍스쿨을 통한 교양 증진보다는 강의 후에 이어지는 뒤풀이가 정말로 중요한 행사이기도 했다. 반대로 강의를 청강하러 오는 이들을 모으기보다는 강의를 하러 오는 강사를 모집하기는 수월했다. 왜냐하면 초기엔 능력 많고 다재다능한 친구사이 회원들이 강의를 해주었고, 초기에 진행된 강의를 보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추천을 해주었기에 강사를 섭외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챠밍스쿨의 강의는 참 많은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 제일 먼저 한 강의는 건강관리와 성병에 관련한 강의였고 그 다음부터는 퀴어영화, 발레, 고전음악, 현대 미술사 등의 이론 수업부터 뜨개질, 요가, 수화까지 몸을 움직여야 하는 강의까지 참 다양한 분야에 대해 강의했고 배웠다. 물론 그 강의에 대부분 참석한 나는 그 무엇 하나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기억나는 것 중의 하나가 손뜨개질을 배울 때였다. 강사의 약력도 좋고 푸근한 목소리를 가진 분이라 참 재미있을 거라 예상했었다. 물론 강의는 재미있었고 나름 유익했었지만 강의에 참여한 한 회원의 발군의 뜨개질 실력으로 강사님이 약간 당황하셨다. 두 개의 바늘을 이용하여 양손으로 목도리를 뜨는 시간이었는데, 그 회원은 바늘 한 개로 뚝딱 모자 한 개를 만들기도 했다. 물론 그 회원을 제외한 대부분 강의 참가자들은 첫 코를 잡는 데에만 거의 30분 이상을 허비해야만 했다. 매우 솜씨 좋게 쓱쓱 해나간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 첫 코를 잡고 첫 줄을 뜨는 데에만 강의 시간 전부를 썼다. 두 시간 동안 난 겨우 4줄 정도를 올렸고, 그것도 집에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너무 엉망이어서 새롭게 시작했어야만 했다. 물론 그 목도리를 완성하지는 못했다.
뜨개질이나 수화, 요가 등은 모두 전문 직업인으로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강사로 섭외했지만 그 외 강의는 대부분 친구사이 회원들로 구성되었다. 건강관리와 성병은 지금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인 코러스보이님이 해주셨고, 발레, 고전음악, 퀴어영화 등은 친구사이 회원들이 강의해주었다. 그렇다고 강의의 질이 낮거나 하지는 않았다.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역량은 없었을지 몰라도 같은 회원으로서 때론 친구로서, 때론 선배로서 들려준 이야기는 꼭 강의로만 머물지 않고 함께 나아가는 친구로서 위안을 주기도 했다. 바로 그 부분이 챠밍스쿨이 보여준 가장 큰 미덕이 아니었을까 한다. 단지 강사들의 강의만 듣고 궁금한 것만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친구사이 회원에게서 듣는 지식과 위로와 동지애를 함께 느꼈기 때문에 더 좋았던 게 아닐까 싶다.
게이컬쳐스쿨 - 교양 게이, 한 발짝 더!
챠밍스쿨이 단발성 교양강좌로서 다양한 주제를 섭렵하며 게이들의 교양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면, 게이컬쳐스쿨은 한 가지 주제를 보다 집중적으로 심화 학습하는 전문강좌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게이컬쳐스쿨은 2006년부터 현재까지 사진, 영어, 글쓰기, 일러스트, 공예, 영화 등 시즌에 따라 한 주제를 선택하고 전문가들과 함께 2~3개월간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친구사이의 문화예술교양 프로그램이다. 최근 게이컬쳐스쿨은 2012년부터 현재까지 3년에 걸쳐 ‘전화기로 만든 나의 첫 영화’라는 프로그램으로 절찬리에 진행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게이컬쳐스쿨은 내게 있어 매우 의미 깊은 프로그램이다. 왜냐하면 친구사이에 들어와서 기획한 첫 프로젝트가 게이컬쳐스쿨 ‘My Photo Story’였고, 이를 계기로 이후로도 몇 가지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2008년 게이컬쳐스쿨 ‘My Photo Story’와 ‘나만의 일러스트북 만들기’, 2011년 포토보이스 프로젝트 ‘10대 게이, 사진으로 말하다’가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이었고, 2012년에는 ‘전화기로 만든 나의 첫 영화’를 현 강사인 영준과 함께 세팅했는데, 영화 프로그램은 게이컬쳐스쿨의 최대 히트작이 되었다. 이 프로그램 외에도 게이컬쳐스쿨에서 다루었던 주제는 더 많지만, 이 글에서는 내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프로그램 중심으로 이야기 하고자 한다.
내가 기획한 게이컬쳐스쿨은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향후 문화예술 프로그램/프로젝트를 기획하는데 있어서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첫 번째는 프로그램을 통해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잠재한 문화예술적 감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방법론적으로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담을 것. 두 번째는 이렇게 창작된 프로그램의 결과물들이 이웃과 사회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결과물의 공유(이웃-사회로의)를 통해 참여자는 아마추어 창작자로서 데뷔하는, 인생에서의 중요한 경험을 하게 될 수 있고, 결과물의 덩어리들은 성소수자의 고민과 문화를 커뮤니티-사회로 드러내는 결과를 얻게 된다. 개인의 성취감을 달성함과 동시에 집단의 결과물로써 성소수자의 문화적 커밍아웃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지향하고 있는 게이컬쳐홀릭 프로그램의 목표다.
2008년 진행했던 ‘My Photo Story’와 2011년의 ‘10대 게이, 사진으로 말하다’는 사진을 매개로 진행한 프로그램인데, 이 중 ‘My Photo Story’는 친구사이에서 처음 진행하는 프로젝트라 고민도 많고 애정도 많았다. 소수 정예로 진행되었지만, 과정과 결과물도 좋았고, 작은 규모이지만 결과물을 커뮤니티 내 공간에 전시하는 등 모두 함께 두근두근한 첫 경험을 할 수 있었다. 2011년 진행한 ‘10대 게이, 사진으로 말하다’는 10대 청소년들을 위한 문화예술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느껴 당시 친구사이 대표였던 재경의 제안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4명의 10대 게이들이 참여했으며, 10주간에 걸친 작업 결과물은 온라인 전시의 형식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공유했다. 이 프로그램에 관련해 기억이 남는 것은 한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온라인 전시 작품을 보고 한 친구를 전시 작가로 섭외한 사건이다. 소리를 빨아들인 듯한 공간, 마음이 먹먹해지는 사진을 찍은 그 친구는 프로 작가들과 함께 전시를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는데, 게이컬쳐스쿨을 통해 데뷔한 병아리 작가의 탄생이라고나 할까.
이외에도 2008년에 진행한 ‘나만의 일러스트북 만들기’는 강사와 수강생들의 분위기가 좋아 사적인 모임들을 가졌다는 후문이 들려왔고(오해하지 마시길, 주 강사는 일반 여성이었음), 2009년에는 ‘청소년 이반을 위한 글쓰기’ 프로그램도 진행되었다. 2010년에는 게이컬쳐스쿨이 개강하지 못했는데, 이때는 대신 게이문화가이드북을 만드는 ‘게이컬쳐홀릭’ 제작 프로젝트가 장기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2012년에 들어와서는 영화를 매개로 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는데, ‘게이봉박두’로 더 알려진 게이컬쳐스쿨 ‘전화기로 만든 나의 첫 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어떤 모임의 뒤풀이 자리에서 문화예술프로그램 강사인 영준이 영상을 매개로 한 게이컬쳐스쿨을 진행해도 재미있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렇다면 정말 게이컬쳐스쿨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던 것이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다. 장수 프로그램의 탄생이 결코 쉽지 않을진대, 부디 이 모범적인 사례가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사실 게이컬쳐스쿨은 어떠한 분야의 프로그램으로도 기획이 가능하다. 문화예술 장르뿐만 아니라 학술, 체육 등 그 어떠한 장르라도 설계할 수 있다. LGBT 커뮤니티는 점점 확장되고 있고 욕구는 많아지고 있지만, 실제 LGBT를 위한 전문 강좌나 프로그램은 매우 빈약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성소수자들의, 성소수자들에 의한, 성소수자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더 많이 생겨야 하지 않을까? 언젠간 진정 등교 가능한 게이컬쳐스쿨이 생기기를 바라는 희망을 담아, 능력과 재능을 가진 게이들이여 부디 당신의 재능을 나누어 주시기를!
<친구사이 20년史 톺아보기> 연재 순서
#01 성소수자 인권운동, 문을 열다 - 1994~1997 친구사이 발족 및 초기 활동
#02 당연한 권리를 위한 운동 - 2007~ 차별금지법 투쟁, 아이다호 캠페인
#03 자긍심의 절정을 보여주다 - 2000~ 퀴어문화축제
#05 이들이 있었기에 빛난 20년 - 역대 대표 인터뷰 및 설문조사
(챠밍스쿨 글) 친구사이 회원 / 이쁜이
(게이컬쳐스쿨 글) 친구사이 회원 / 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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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
이밀
내년 공연도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