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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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사생활 #14 – 108배하고 이성애자 된 내 아들 MBC가 책임져라
108배를 하면 이성애자 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우리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즐겨 보신다. 특히 요즘 애청하는 프로그램이 드라마 <오로라 공주>라는 사실도 나는 잘 알고 있다. 최근 MBC드라마 <오로라 공주>의 게이 캐릭터가 절에 들어가 108배를 천 번 하고 이성애자로 전향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서 접하고 나는 뜨악했다. 그 장면을 보고 엄마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혹시 나한테 절에 들어가라고 하시진 않을까 하는 망상을 하기도 했다. 텔레비전을 통해 전달되는 편견과 그릇된 사실이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의 마음에 부담을 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머니가 무교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12월 10일 저녁, 우리 집의 가족들이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뉴스엔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 혼인신고’ 관련 뉴스가 전파를 타고, 혼인 신고서가 구청 측에 의해 반려될 것 이라는 앵커의 목소리도 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뉴스를 보던 어머니는 방에 있던 나더러 들으라는 듯 ‘잘됐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고,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이 씁쓸했다. 어머니의 의도가 어찌됐든 말이다.
‘세계인권의 날’, 인권침해를 주장하는 이상한 사람들
그래도 누가 뭐라던 12월 10일은 ‘세계인권의 날’이다. 이 날은 1948년 12월 10일 발표된 <세계인권선언>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쁜 날이다. 때마침 ‘세계인권의 날’을 맞이해서 서울 성북구에선 지자체와 구민이 주체적으로 만든 <주민인권선언>을 선포하는 행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동성애라면 눈에 불을 켜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일부 반대파들의 방해와 그릇된 행동이 어김없이 ‘세계인권의 날’에 열린 이 행사에 버젓이 벌어졌다.
<집 값떨어지면 제가 성북구로 이사가겠습니다 ⓒ뉴스1>
성북구의 주민인권선언문 16조 성소수자 규정에는 ‘성수수자가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반대파들은 이를 두고 ‘성북구는 동성애 도시되어 땅값 떨어지면 구청이 물어내라’, ‘주민인권선언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등 선정적이고 반인권적인 피켓을 내걸고 선포식을 방해했다. 결국 이 날 행사는 그들의 방해로 선언문 낭독도 하지 못하고 끝이 났다.
지자체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인권선언을 만들고 선포하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 일이 동성애를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일부 반대파들에 의해 와해되고 곡해되는 사실에 매우 통감한다. 성북구의 <주민인권선언>에는 자유권, 사회권, 복지권 등 구민들에게 정말 필요한 조항들로 이뤄졌고, 특히 마포구 등 일부 지자체의 차별적 태도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단지 ‘성수수자가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조항을 걸고넘어지면서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할 다른 권리를 그들 스스로 놓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그들의 반인권적 행위로 인해 주민인권선언의 의미가 퇴색되면 그들은 또 다른 차별적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은 외계인을 위해 쓰인 것이 아니다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한겨레>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인 194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문>이 처음 세상에 나오게 된 그 당시 상황은 어땠을까. 인류는 역사상 최악의 전쟁을 두 번이나 치르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을 의무가 있었다. 강대국들끼리 전쟁을 치르며 힘없는 수많은 민족과 소수자들의 권리를 무참히 짓밟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20세기 중반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근대 정치경제사상의 거대한 두 흐름이 충돌하는 냉전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한 냉혹한 현실 속에서 휴머니즘이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며 ‘인권’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형성해갔다. 즉, ‘인권’은 인류가 가꿔온 최고의 가치이자 개념인 것이다.
때문에 12월 10일은 인류가 ‘인권’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날이다. ‘인권’이라고 하면 누군가에겐 어려운 단어일수도, 입 밖으로 되뇐 적 없는 단어일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누군가에겐 목숨과 맞바꾼 개념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특히 근대 시민혁명의 출발점이었던 1789년 프랑스혁명의 본질은 시민으로서 누구나 평등하다는 가치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들은 시민으로서 자유와 평등한 권리를 찾기 위해 피 흘리며 싸웠다. 그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반인종차별, 인간답게 살 권리, 반전 등을 외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결국 그러한 과정들이 누적되어 자유권, 사회권, 환경권 등 변증법적으로 발전해가는 시기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다. 사실 성소수자에 관한 인권은 반인종차별, 반성차별과 같은 평등권(자유권)에 관한 것으로 선진국에선 보편적인 인권으로 받아들여진지 오래다. 우리나라 사회를 봤을 때는 아직 멀어 보인다. (일단 표현과 사상의 자유부터 어떻게 좀..)
다시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은 문자 자체의 역사적 의미뿐 아니라 현재적 의미로서도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생생한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선언이 발표 된지 7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이상적인 세계를 향한 인류의 다짐을 가능케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 땅에서 차별적인 행위가 만연한 요즘 <세계인권선언>에 쓰인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권리들을 되새기며 소수자의 인권을 박탈하는 그들에게도 인권의 참뜻이 전해지길 바란다. 21세기에 당당하게 혐오와 차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108배라도 시키고 싶은 심정이다.
<세계 인권 선언>
제1조 인간의 존엄 평등 자유 형제애
모든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똑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타고났으므로 서로를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제2조 모든 차별 금지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견해 또는 그 밖의 견해, 출신 민족 또는 사회적 신분, 재산의 많고 적음, 출생 또는 그 밖의 지위에 따른 그 어떤 종류의 구분도 없이,
이 선언에 나와 있는 모든 권리와 모든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제7조 법 앞에서 평등할 권리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어떤 차별도 없이 똑같이 법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위배되는 그 어떤 차별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러한 차별에 대한 그 어떤 선동 행위에 대해서도 똑같은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 남자의 사생활’, 이번 달을 끝으로 마무리합니다.
많이 부족한 글이었지만, 어딘가에서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성북구민이라 저때 이야기 듣고 난 좋은 동네 사는구나. 하고 뿌듯했는데. 역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