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이 든 이후부터 줄곧 ‘정치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국에서 ‘정치인’을 한다는 게 어쩌다 우스운 장래희망이 되어버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치는 늘 나에게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몰론 아등바등 사람들 밀쳐내고 줄 한 번 잘 서서 자리 하나 해서 ‘정치인’이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정치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
대학 3학년에 처음 게이 커뮤니티에 데뷔하기까지, 사실 데뷔하고 나서도 한참 나를 괴롭혔던 것은 게이로서 대체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였다. 게이로 살면서 누구나 게이로 살아갈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만 게이로서 정치인이 된다는 건 너무 큰 욕심인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나보다 열심히도, 잘도 못하면서 엉덩이 깔고 남아있단 이유로 리더가 되고 학교에서 중요한 선배가 되어가는 헤테로 남자동기들에게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 내 모든 부족함이 내가 게이여서 그런 것만 같았다.
게이로서 정치를 한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벽장 안으로 기어들어가 2류 헤테로 정치가로 살까, 남성/ 명문대/ 비장애인라는 내가 가진 권력을 부여잡고 성소수자에게 여분으로 주어질 고 자리를 차 앉고 민주주의의 장식품이 될까, 끊임없이 분열하고 계속 두려운 스스로를 인정하고 부를 수 없는 주체가 되어 소리없이 사라질까. 어느 쪽도 쉬워 보이지 않았고, 내키지도 않았다. 프라이드와 열등감과 비열함과 공명심이 헛되게 엇갈리는 시간들이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치사했다. 게이라서 패 한 장 띠고 화투판에 껴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내 손에 쥔 학벌이니 성별이니 하는 쌍피들은 꽁꽁 쥐고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또다른 누군가는 피박을 입고 이 판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한 장 덜 들었으니 나는 악착같이 더 많이 먹어야 한다고, 내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누구는 10장 주고 누구는 5장 주는 이 화투판은 ‘나가리’라고 외치지 못했다. 이 화투판은 ‘나가리’다. 한 장 덜 쥐었다고 앙탈 부리는 짓은 집어치워야 한다. ‘선’ 옆에 붙어서 광만 팔다 개평이나 받는 짓도 그만둬야겠다.
정치를 꿈꾸는 내가, 게이여서 다행이다. 정치가 완전한 권력자 되기를 꿈꾸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차별이, 타자성이, 나의 이 지긋지긋한 열등감이 오히려 정치의 연료라는 걸.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성애자였다면. 게이라서, 나는 사람들을 더 이해하게 되었고, 우리네 삶의 불완전함도 사랑하게 되었다. 이성애자가 아니라서, 사람들을 더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게이가 되기 위해 Calvin Klein Underwear를 입고, 커피빈 카라멜 마끼아또를 먹어야 하는 세상에 정치를 꿈꾸는 사람이라서 불행히도 다행이다.
이밀
내년 공연도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