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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화장실, 찜질방, 그리고 이반> -송신상훈
2003-10-07 오전 01: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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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화장실, 찜질방, 그리고 이반> -송신상훈

[이 글은 "공중화장실과 동성애"라는 재밌는(?)소재를 취해서 현 이성애 중심주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헛점들을 나무라고, 또한 동성애자들의 억압되어 변질된 욕망의 형태와 정당성을 고찰하고 자성하고자 하는 글이라는 생각으로 발췌하였습니다.]


문제를 하나 푸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먼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남자거나 아니면 여자로 명확히 갈린다고 가정하자. (흔히 남녀의 구분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의심의 여지 없는 구분이라고들 생각하지만, 이 '명확한 구분'은 문화적으로 가공된 착각일 뿐이다. 이는 백인-황인-흑인 따위의 인종구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여기선 논외로 하자.) 게다가 이 남녀들은 모두 이성애자라고--즉,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며 여자는 남자를 좋아한다고--가정해 보자. 이 세계와 관련해 내가 당신에게 던지는 과제는 다음과 같다: 이 사람들을 성적으로 배타적인 최소 개의 집단으로 나누라. (여기서 '성적으로 배타적'이라함은 같은 집단에 속하는 Q와 R 두 사람은 어느 방향으로도 성적으로 이끌리지 않음을 의미한다. 즉, Q와 R이 성적으로 배타적인 집단을 이루려면, Q는 R에 대해, 그리고 R은 Q에 대해 성적으로 관심이 없어야 한다.) 답은 간단하다. 남자와 여자의 두 집단이면 족하다. 남학교와 여학교, 남탕과 여탕,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의 존재가 보여주듯, 이성애자 남녀의 무리는 성적으로 배타적인 두 무리로 깨끗하게 갈라진다.

물론 위에서 설정한 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세계와 많이 다르다. 따라서 이번에는 보다 현실에 충실하도록 이 세계에 남성 동성애자와 여성 동성애자의 존재를 더하자. 그런 후, 이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들 또한 성적으로 배타적인 최소 개의 집단으로 나누어 보자. 과연 앞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남녀의 두 집단으로 깨끗이 나눌 수 있을까? 남성 동성애자 하나--A라고 부르자--부터 출발해 A가 속하는 성적으로 배타적인 집단 N을 구성해 보자. 우선 남성 이성애자인 X는 집단 N에 속할 수 없다. 왜냐하면 동성애자인 A가 남성인 X에 대해 성적으로 배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성 이성애자인 Y를 A와 한 집단으로 묶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여성 이성애자인 Y가 남성인 A에 대해 성적으로 배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성 동성애자인 Z를 역시 남성동성애자인 A와 같이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A와 함께 둘 수 있는, A에 대해 성적으로 배타적인 사람은 여성 동성애자 B 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남성 동성애자인 A와 여성 동성애자인 B로 이루어진 성적으로 배타적인 집단 N을 만들어 냈다. 자, 그럼 이 집단 N에 성적으로 배타적인 제 3의 인물을 더할 수 있을 것인가 살펴보자. 먼저 남성 동성애자인 Z는 집단 N이 남성 동성애자인 A를 포함하고 있는 한 이 집단에 들어갈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여성 동성애자인 W는 여성 동성애자인 B와 관련하여 성적으로 배타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 집단에 들어갈 수 없다. 나아가 남성 이성애자인 X는 남성 동성애자인 A와 관련하여, 그리고 여성 이성애자인  Y는 여성 동성애자인 B와 관련하여 집단 N의 일원이 될 수 없다.

결국 남성 동성애자인 A와 여성 동성애자인 B로 이루어진 집단 N은 성적 배타성이라는 구성원리를 포기하지 않고서는 제 3의 인물을 받아들일 수 없다. 달리 말해, 이성애자들 만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여고-남고, 여탕-남탕, 여자화장실-남자화장실의 이분법적 성적 격리가 가능한 반면,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와 공존하는 세계에서는 이러한 이분법적 격리가 불가능하다. 만약 이 가상의 세계에서 성적 격리가 정말로 중요한 지상과제라면, 극단적인 경우 A와 B 단 두 사람 만을 위한 학교와 공중화장실과 공중목욕탕이 따로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단 두 사람만을 위해서 말이다.

(이 문제가 남-녀의 축과 더불어 동성애자-이성애자의 축을 설정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남녀 이성애자만 존재하는 세계에서는 남녀구분을 경계로 성적으로 배타적인 이분이 가능한 반면, 남녀 동성애자만 존재하는 세계에서는 동성애자-이성애자 축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남성 동성애자 A와 여성 동성애자 B외의 제 3의 인물을 성적으로 배타적인 집단 N에 소속시킬 수 없다. 물론 이 모든 설정은 현실을 과잉단순화했다. 앞에서 전제한 남녀구분과 관련한 가정 외에도 양성애자를 배제했고, 보다 중요하게는 흔히들 말하는 '식성'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동성애자가 개입하는 한, 남-녀의 깨끗한 이분법적 분리는 물건너간다는 사실이다.)

왜 동성애자란 개념이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는지는 철학적으로 재미있는 문제인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선 이론적인 것보다 그 현실적인 함축을 짚어보고 싶다. 공중 목욕탕이나 공중 화장실의 예가 보여주듯, 한국사회의 일부 공간은 그 사회 구성원을 남-녀의 두 무리로 나눠 수용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남탕-여탕과 남자화장실-여자화장실 구분이 정당한 이유는 추측컨데 일시적이나마 사회성원들을 성적으로 배타적인 두 무리로 분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 그런 분리가 필요한지는 별개의 문제로, 이 글의 범위 밖의 문제다.) 그리고 이 분리는 남-녀의 명확한 구분과 이성애의 보편성을 전제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이성애자'란 전제는 불행히도(?)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 그리고 그 헛점(?)을 통해 나타날 수 있었던 현상이 공중 목욕탕, 혹은 공중 화장실에서의 동성애자들의 성행위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성적 배타성과 관련한 앞서의 분석이 옳다면, 한국 사회가 극단적인 경우 남성 동성애자 하나와 여성 동성애자 하나 만을 위해 화장실과 욕탕을 따로 만들지 않는 이상 이 틈새는 계속 열려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은 그 틈새를 이용, 성적으로 배타적이게끔 의도된 공간에서 유유히(?) 성적 희열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일단 주제를 바꿔보자. 일반인들은 흔히 공중 화장실에서 일어나는 '호모들'의 짓거리에 대해 "도덕적" 분노를 표출하곤 한다. 그런데 나의 눈에는 과연 그것이 정당한 도덕적 분노인지가 분명치 않다. 왜냐고?

"문명사회"인 한국에 사는 우리는 아무 곳에서나 바지를 내리고 일을 보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 대로변에서 엉덩이를 까고 일을 보려 한다고 해보자. 모르긴 몰라도 그 자리에서 당장 비난의 화살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노출과 관련해 경범죄 처벌을 받을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이 비난은 단순히 대로변에 '실례'를 했기 때문은 아니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신체의 '은밀한 부분'을 노출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비난의 대상인 것이다. (목욕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를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누군가 대로변에서 목욕을 한다면, 그는 목욕이 더럽기 때문이 아니라 공적 공간에서 드러내서는 안될 신체부위를 드러냈다는 이유로 비난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명사회"인 한국사회는 어떤 공간을 설정해 놓고 그 공간에서는 마음놓고 신체노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약 '공적 공간에서는 신체노출을 맘대로 할 수 없다'가 사회규율이라면, 이는 '신체노출을 맘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은 공적 공간이 아님'을 의미한다. 만약 여기에 '공적 공간이 아닌 것은 모두 사적 공간'이라는 보조전제를 끼워넣는다면, '신체노출을 맘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은 사적공간'이란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공적 공간인 대로변에서와는 달리 화장실의 좁은 칸 안에서는 마음놓고 엉덩이를 깔 수 있다는 사실은 그 공간이 사적 공간임을 의미한다.

"문명사회"인 한국사회에서 사적 공간에서는 할 수 있되 공적 공간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은 성행위이다. 대개 기혼 이성 커플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사적 공간인 침실 등에서의 성관계는 용인을 넘어 거의 권장되는 반면, 설혹 부부 간이라 할지라도 공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성행위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즉, "문명사회"인 한국에서 성행위란 사적 공간에서는 이루어질 수 있는, 나아가 사적 공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행위이다.

이런 거창한 얘기를 왜 꺼냈는지 궁금할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생각해 보고 싶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렇게 말하는 일반인이 아직도 있을 것이다): "그 호로자식들 말이야, 화장실에서 그런 짓거리나 하고... 하여간 호모놈들 공중도덕도 모르는 몹쓸 놈들이라니까.." 이 발언은 대략 이런 구조를 갖고 있다. (1) 동성애자들이 화장실에서 성행위를 하는 것은 공중도덕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2) 공중도덕을 어기는 동성애자들은 따라서 나쁜 놈들이다.

그래서 어떻다는 거냐고? 나는 '동성애자들은 나쁜 놈'이라는 결론을 정당화하는 첫 번째 명제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즉, 나는 공중화장실에서 성행위를 하는 것이 과연 공중도덕에 어긋난 행위인가고 묻고 싶다.

나는 앞서 "문명사회"인 한국사회는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성행위를 용납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불륜"인 간통행위라 하더라도 그것이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한, 그 공간성 자체를 빌미로 비난하지는 않는다.) 나는 또 이모저모를 고려해 볼 때, 화장실의 칸막이는 사적 공간을 상징한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분석이 맞다면, 한 마디로 공중화장실의 그 공간은 사적 공간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질문을 던질 수 있겠다: 왜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성행위를 "공중도덕"을 들먹이며 비난하는가?

혹자는 "호모들 그 짓거리 하라고 화장실을 만든게 아니니까 그렇지"하고 쏘아부칠지 모른다. 하지만 화장실을 만든 사람이 의도하지 않은 행위를 하는 것은 모두 공중도덕에 어긋나는가? 나는 공중화장실을 만든 그 누군가가 우리가 화장실의 칸막이 안에서 하는 그 모든 행동--옷을 갈아입고, 비상금을 꼬깃꼬깃 접어 양말에 몰래 끼워넣고, 사랑하는 그가 전해준 편지를 몰래 읽는 등의--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고 자신있게 주장한다. 하지만 그 화장실의 설계자가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모든 무고한 행위를 공중도덕에 어긋난 것으로 만드는가? "남에게 불쾌감을 주기 때문"이란 것도 말이 안된다. 길거리에서 일을 보는 것이 남에게 불쾌감을 주기 때문에 그 칸막이를 설치한 것이 아닌가? 결국 그 화장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위의 범주 밖에 있다는 얘기다.  

나는 화장실에서의 동성애자들의 성행위가 공중도덕에 어긋나려면 "공중화장실에서 동성 간에 성행위를 하는 것은 공중도덕에 어긋난다"는 명시적인 표명이 있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중화장실이 그런 특별 규정까지 따로 두어야 할 만큼 그렇게 특별하고 신성한 공간이던가? 이도 아니면 그대신 "동성 간의 성행위는 공중도덕에 어긋난다"는 규정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동성 간의 성행위는 어디서 행하건 무조건 나쁘다"는 포괄적인 반동성애적 입장의 함축으로서는 모를까, 동성 간의 성행위를 공중도덕의 입장에서 규정한다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어쨌건 내가 지금까지 주장한 사실이 맞다면, 일반인들은 동성애자들이 "공중도덕을 해쳤기 때문에"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소리는 기껏해야 '호모놈들은 호모놈들이기 때문에 나쁘다'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아무런 정당한 근거도 없는 이런 비난을 우리는 편견이라 부른다.

통쾌한 결론인가? 혹자는 별 시시껄렁한 주장을 다 한다 말할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나도 이 논증이 헛점 하나없이 완벽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어쨌건 나는 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공중 화장실에서 또는 공중 목욕탕에서 '님'을 찾는 우리는 과연 떳떳한가? 우리들은 화장실을 배회하면서, 찜질방의 어둠을 더듬으면서 "공중도덕"을 해한다는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가? 떳떳하지 못하다면 화장실에서 배회하지 말라. 화장실에서 배회하려면 편견 앞에 떳떳하라. 남성 동성애자 A와 여성 동성애자 B만을 위해 화장실을 따로 만들어 줄 만큼 한국 사회가 넉넉--혹은 편협--해지지 않는 한, 기회는 항상 열려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화장실을 배회하면서, 찜질방의 어둠을 더듬으면서 우리가 잃는 것은 없는가? 왜 이름도 성격도 취미도 생각도 모르는 사람과의 단발성 교류로 우리의 반경을 제한하는가? 왜 당신 마음에 쏙 드는 그를 두 사람 만의 떳떳하고 당당한 생활의 보금자리로 들이지 않는가? 왜 당신의 사랑을 퀴퀴한 어둠 속에만 가둬두려 하는가?--화장실과 찜질방을 배회하는 우리는 진정 행복한가?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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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ㄹ 2007-12-10 오전 01:06

;;전 여자지만요..제가 쓸 화장실 이전에 누가 거기서 성관계를 했을거다..라는 생각을 하면 굉장히 찝찝합니다. 동성섹스건 이성이건 떠나서요..그래서 디비디방도 가는거 싫어하구요..모텔이나 여관도많은데 왜 굳이 고런데서 하나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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