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이 아닌 관계자들의 ‘팬심’을 얻는 배우는 흔치 않다. 조인성(27)은 그런면에서 희귀한 존재다. 입대 소식에 기자들이 ‘본분’을 잊고 안쓰러워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칭찬하는 연예인이라는 것은 행복한 일일 것이다. 동시에 남다른 성실함으로 자신을 몰아붙여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유하 감독의 신작 ‘쌍화점’ 개봉(30일)을 앞두고 만난 조인성은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고 잘할 수 있는게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열정적이라는게 젊다는 뜻이라고 어른들이 말씀해 주시잖아요. 군대 다녀오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겠죠. 저도 기대하고 있어요.”
-‘쌍화점’이 첫 사극이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힘들었겠다.
“육체적으로도 힘든 점이 있었고, 새로운 것들이 많아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감독님이 제작 전 단계 때부터 홍림은 날 염두에 두고 썼다 했는데 막상 시나리오를 보니 어떤 부분이 그런 것인지 도무지 막막했다. 그래도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따랐다. 기역, 니은, 디귿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 따라보니 홍림은 어떤 인물이었나.
“회색지대의 인물이다. ‘햄릿’ 같다고도 했는데, 왕이 원망스럽지만 좋기도 하고 그걸 또 혼자 고뇌하는 역할이다. 수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왕에 묶여 있는 인물이다. ‘쌍화점’ 전에는 지르고 표출하는 연기가 익숙했다. 오열하고 ‘열연’을 하고 나면 격한 충족감이 온다. 이번에는 반대로 밖으로 보여주는 것 없이 홍림의 마음을 표현해야 했다. 영화가 진행되는 중 차근 차근 쌓아가면서 완성이 되는 캐릭터다.
- 동성애 코드와 베드신 등 노출 수위가 부담스럽지 않았는지는, 질리도록 들었겠다.
”진짜 지겹게 들었다.(웃음)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아니고 노출도 이야기를 끌어가는 장치일 뿐이다. 남자냐 여자냐, 성의 문제를 배제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과 욕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런 장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비열한 거리’가 조폭 이야기가 아닌 비루한 청춘에 대한 이야기인 것처럼 ‘쌍화점’은 동성애 이야기가 아닌 사람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다.“
-입대한다고 들었다. 걱정은 안되는지.
”그냥 가야할 때가 된 것 같다. 아직은 아무 생각이 안들고 실감도 안난다. 당장 영화 개봉 앞두고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이 앞에 있어서 그런가보다. 아무래도 연예인이다보니 일반성이 많이 떨어지고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했던 부분이 있는데 군대에서 이런걸 배우고 채워서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쉬면서는 뭐하나.
”요새는 활자에 익숙해지려고 책을 보는데, 좋다. 잠도 잘 오고.(웃음) 사람 사는 얘기, 인간의 감정을 다룬 책에 관심이 간다. 새로운 만화책을 몇권 추천받아 읽었는데 내 현재의 감정과 비슷한 작품들이 많더라.“
- 현재 감정이 어떤 것인지.
”혼돈스러운 시기인 것 같다. 이제 곧 서른이고, 정신차려야할 나이, 어른인 것 같다. 그런데도 아직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잘 모르겠고 궁금한 것도 많다. 예술가들의 삶을 보면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 좋은 아들로 산 사람들이 완벽하게 좋은 작품을 내지 못하더라. 내가 예술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럼 난 어떻게 해야 내 세계를 완성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한 마음이 든다. 그렇다고 일부러 불행해질 수도 없고, 앞으로 심적으로 좀 더 복잡한 시기가 올 것 같다.“
전영선기자 azulida@munhwa.com
원문은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1211MW084905402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