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사무실에서 꼬마를 처음 만났다. ‘조용한 아이’라는 느낌을 주던 교복차림의 꼬마. 은색 종이상자에 담배를 넣어가지고 다니며, 우리와 함께 담배를 피면서 회의를 했다. 다른 활동가들이 장난으로 “교복입고 담배를 피다니 이거 불량 청소년이잖아?”하고 놀릴 때마다 그냥 씨익 웃기만 했던 꼬마가 이제 스무 살이 되었다.
꼬마는 한동안 수능을 준비하느라 활동을 하지 못했었지만, 두어 달 전부터 다시 함께 레즈비언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이제 이십대라는 새로운 인생의 막이 꼬마 앞에 펼쳐져있는 지금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영화 [out: 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를 찍고 나서 인터뷰를 많이 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그렇진 않았다고 하면서 특유의 수줍은 웃음을 짓는다. 꼬마는 “별거 없는데...”하면서도 나의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을 해주었다.
영화가 상영된 후에 사람들이 혹시 알아보지는 않았느냐는 말에 그렇진 않다고 했다.
“알아보는 사람은 없는데 가끔 제가 다닌 학교를 알아보는 분은 계시더라고요. 그때 교복을 입고 나왔었거든요. 그리고 10대 팀이나 새로 만나는 10대 친구들한테 닉네임이 ‘꼬마’라고 소개하면 나중에 그때 영화보고 감동 받았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저도 그런 말을 들으면 감동을 받고, 뿌듯한 기분도 들어요.”
하긴, 나도 종종 꼬마를 연예인이라고 놀리기는 하지만, 길 가는 사람들까지 다 알아본다면 그건 정말 안 되겠지. 나중에라도 기회가 된다면 이반검열과 같은 영상물을 다시 찍을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이반검열을 찍으면서 영상에 관심이 생겼어요. 영상물을 직접 제작하는 게 흥미롭더라고요. 원래 영화를 좋아하긴 했었는데 직접 카메라를 만지니까 재밌고, 배우고 싶었어요. 얼마 전에 생긴 움(여성영상집단)에서 시작된 ‘불휘’라는 10대 레즈비언 영상집단이 있는데, 그 팀에서 활동하는 기기, 천재와도 친하고 그래요. 처음엔 움에서 계속 활동하고 싶었지만 비슷한 또래 친구들과 새로운 곳에서 영상을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잡히지 않았지만요.”
10대 레즈비언으로서 [out: 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를 찍었던 꼬마. 곧 있으면 대학생이 될 텐데 꼬마는 어떤 대학생활을 기대하고 있을까?
“심리학이나 여성학 같이 관심이 있던 분야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싶어요. 번역이나 통역 같은 전문기술도 배워놓으려고 해요. 무엇보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많이 기대가 되요. 고등학교는 사실 폐쇄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대학에 가면 다양한 배경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고, 또 다양한 레즈비언들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기대가 되요. 영화 작업하면서 사람들 만나는 게 재밌고 좋아졌거든요.”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그토록 기다렸다는 대학생활을 눈앞에 둔 꼬마는 요즘 레즈비언 인권운동을 하느라 생각보다 많이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활동을 하느라 바빠서 수능이 끝나면 해보려고 했던 소설 쓰기와 작곡도 미뤄두고 있다고 한다.
“수능 끝나자마자 상담소와 10대 팀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상담소에서는 인권정책팀 활동을 하고 있는데 지금 주로 하고 있는 사업은 ‘10대 이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라고 신공(10대들이 많이 다니는 공원)이나 일차(10대 이반들이 만드는 일일찻집)에 가서 10대 친구들과 만나고, 신뢰를 쌓고, 설문조사를 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10대 팀에서는 10대를 위한 커밍아웃 가이드를 만들려고 하고 있는데, 이걸 만들기 위한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서 3월에 문화제를 하기로 했어요.”
내가 그 나이 때에는 수능이 끝났다는 해방감에 매일 놀기만 해도 바빴는데, 꼬마는 이 두 가지 일을 하느라 자기가 생각했던 것들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꼬마는 왜 계속 레즈비언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상담소에 가입하기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꿈이 레즈비언 인권운동가였어요.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함없지만 방향이 좀 바뀌었어요. 당시 생각했던 ‘레즈비언 인권운동가’와 지금 생각하는 ‘레즈비언 인권운동가’는 다르거든요. 시간이 지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생각들을 하다 보니 달라졌어요.”
처음 레즈비언 인권운동에 관심 가지게 된 계기는, 인터넷에서 상담소 활동가가 쓴 글을 읽으면서 ‘나도 나중에 레즈비언 인권운동을 해야지’라고 생각한 것이 시초였다고 한다. 꼬마는 현재 다른 레즈비언들과 함께 활동을 하면서 새삼 신기하다고 했다.
“상담소에서 활동을 하다가 이반검열도 찍고, 이번에 10대 팀 활동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상담소에서 같이 활동하는 언니들은 거의 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10대 팀에서는 비슷한 또래들이에요. 각 단체별로 활동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것이 새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요. ‘같은 레즈비언 인권운동을 하고, 레즈비언들이 모이는 모임이라고 해도 다 다르고 다양하구나’ 이런 생각을 해요.”
앞으로 원하는 활동이 있다면, 10대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관련 활동을 하고 싶다고.
“저는 교과서 모니터링에 관심이 많아요. 교과서를 보면 동성애에 관한 내용은 아예 있지도 않은 것이 많거든요. 학교를 포함한 교육정책 사업에 관심이 있어요. 궁극적인 목표는 동성애에 관한 올바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되게끔 하고 싶어요. 비중 있게 배우는 것은 아니고 일 년에 한두 번이라도 성교육 시간에 배울 수 있게요.”
꼬마를 보면 평소에도 우리 나라 레즈비언 인권에 밝은 빛이 비추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인터뷰를 하니 그 느낌이 더욱 확실해졌다. 결코 쉽지만은 않을 텐데, 생각만큼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을 수도 있는데, 그리고 이런 것들을 꼬마도 알고 있는데. 참 대견하고, 고마웠다. 이제 당당히 술집에 들어갈 수 있다며 좋아하는 꼬마를 데리고 오늘밤 한 번 달려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