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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전도 게이축제 초심은 어디에  -뉴욕통신


6월에 일어나는 일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게이 퍼레이드이다. 게이 퍼레이드는 뉴욕의 수많은 퍼레이드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퍼레이드 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핼러윈 퍼레이드인데, 이 둘의 공통점은 우선 이것들이 단순히 거리를 행진하는 퍼레이드가 아닌,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즐기고 노는 진짜 축제라는 데 있다. 두 번째 공통점은 화려한 의상이다.
두 개의 퍼레이드 모두 자기를 뽐내지 못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의 축제인 것 같다. 남을 대놓고 쳐다보는 건 원래 실례지만, 이날만큼은 사람들도 쳐다보면 웃어주고 사진기를 들이대면 안쓰러울 정도로 열심히 포즈를 취해준다. 솔직하게, 비뚤어지지 않은 모습으로 표출되는 나르시시즘은 아름답고 즐거운 것이다. 세 번째 공통점은 두 퍼레이드 모두 그리니치 빌리지와 관련이 있다는 점. 핼러윈 퍼레이드는 빌리지에서 시작하고 게이 퍼레이드는 빌리지의 크리스토퍼 스트리트에서 끝이 난다. 우리 집에서 두 블록 떨어진 크리스토퍼 스트리트는 실제로 이 게이 퍼레이드, 아니 게이 운동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게이 퍼레이드는 1969년 6월 28일 발발한 스톤월 항쟁에서 유래한다. 스톤월이란 이름은 크리스토퍼 스트리트에 있는 게이 바 ‘스톤월 인(Stonewall Inn)’에서 온 것으로, 스톤월 항쟁은 경찰들이 이 바를 습격한 데 반발한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등이 이 앞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불사하며 벌인 시위를 일컫는다. 이후로 이날을 기념하여 해마다 6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게이 퍼레이드가 열리게 되었고, 또 이런 이유로 뉴욕 게이 퍼레이드의 앞부분은 항상 정치 단체나 비영리 단체들이, 뒤로 가면서 게이 유흥업소들이 참여해서 퍼레이드는 언제나 화려하고 신나는 클라이맥스를 맞게 된다.

축제가 부족한 사회에서 자란 나는 누구보다 축제를 기리는 사람이지만, 요즘 게이 퍼레이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주객이 전도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앞이 뒤가 되고, 뒤가 앞이 되는 느낌이랄까. 퍼레이드가 지나간 길거리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다음 날 시에서 깨끗이 치워준다지만 과연 시민 정신은 어디로 간 걸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순 없다. 국가를 상대로 다른 시민들과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시작된 게이 운동이, 퍼레이드가 아니던가. 지금도 미국 곳곳에선 게이 결혼 합법화 등 이들의 시민 권익을 찾기 위한 노력들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게이 커뮤니티는 한편으로 지나친 파티 문화, 크리스털 메스와 같은 파티용 마약 복용, HIV/AIDS에 대한 불감증 등을 골칫거리로 앓고 있다. 물론 이런 초심을 잃어버린 시민 정신은 비단 게이 커뮤니티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미국은 벌써부터 대통령 선거로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했다. 뽑아놓고 후회할 것이 아니라 뽑기 전에 바른 지도자를 뽑을 만한 시민으로서의 역량부터 재검검할 일이다.

박상미/화가·작가 binoux@naver.com


* 차돌바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2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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