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공비행>
퀴어 영화라도 뻔해지면 유죄
최근 몇 년 동안 퀴어영화제에 출품되는 영화들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걸 느낀다. 5년 전만 해도 ‘이 때가 아니면 못 봐!’를 외치며 열심히 봤던 영화들이지만 요샌 그렇게까지 구미가 당기지는 않는다. 물론 이들 영화들이 모두 재미가 없거나 심심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예를 들어 난 최근에 개봉된 <스파이더 릴리> 같은 영화는 재미있게 봤다. 앞으로도 좋은 퀴어 필름메이커들이 나와 퀴어 소재로 좋은 영화를 만들 게 분명하고. 그건 ‘일 년 안에 비가 온다'와 마찬가지로 뻔하고 안전한 예측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퀴어 영화’에 대한 관심은 점점 식어만 간다. 가장 큰 이유는 일반적인 퀴어 영화들이 다루는 소재가 지나치게 반복적이라는 것이다. ‘커밍아웃’(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것)하는 청소년 이야기는 한 번 보면 감동적이다. 좋은 영화들만 골라서 본다면 한 열번 정도는 그 감흥을 유지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이게, 백번, 천번을 반복한다면? 다들 질리고 만다. 현실 세계에서 청소년의 커밍아웃은 여전히 힘겨운 일이지만, 영화 세계에서는 벌써 클리셰가 되어 버리고 만다.
이건 단순히 영화가 재미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재미없는 영화는 세상을 해치지 않는다. 물론 그 영화를 보려고 2시간 정도를 낭비한 사람들에게는 재앙일 수도 있지만 2시간 정도의 시간을 낭비하는 더 나쁜 일들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이렇게 반복되는 소재나 이야기가 현실과는 격리된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들이 아무리 충실하게 현실을 반영해도 그 영화 속의 현실은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을 넘어서고 만다.
이건 꼭 퀴어 영화만의 경우도 아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이윤기의 <여자, 정혜>의 결말에 만족하지 못하는 건, 어린 시절 겪었던 성폭력의 경험이라는 진상이 지나치게 고루한 클리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은 현실세계에서도 클리셰인가? 현실세계에서는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종류의 폭력은 겪는 사람들에겐 똑같이 아프다. 하지만 스크린이나 활자로 수백번 반복되며 관습이 되어버린 이야기 재료들은 지겨워진 관객들과 독자들을 충분히 자극하지 못한다. 결국 모두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해버리고 끝나 버리는데, 그러는 과정 중 현실 세계의 부조리와 폭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영화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고 사람들을 자극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영화들을 처음부터 보지도 않고, 본다고 해도 그런 주제들이 계속 반복되는 동안 그냥 그 모든 것들에 익숙해져버리고 만다. 아마 따지고 보면 메시지 영화들도 일종의 도피처일 것이다. 세상에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가 실제로 겪는 것 이상으로 많다는 환상을 주는 도피처.
듀나/소설가·영화평론가
* 차돌바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20 1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