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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98년 친구사이에서 진행된 세미나 중 '세계 동성애 역사'의 3장 발췌본 일부입니다. 이미 5년이나 흘렀고 이 글에 대한 필자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수정 없이 이곳에 계속 연재할 생각입니다.

고대 원시 사회


몇몇 고대의 부족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동성애적 관계의 양상은 크게 두 가지로 변별될 수 있다.

성 역할의 전환

첫 번째 형태는 성 역할의 전환(cross-gnder-transfer)이다. 이러한 형태는 북아메리카의 버다치 berdache족에서 볼 수 있다.

150여개 이상의 북부 부족에 존재했던 이들은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는 남성들을 말한다. 그들은 간혹 여성의 옷을 입기도 하고 때때로 남성배우자들을 반려의 대상으로 취하기도 했다. 성인식에 이른 소년이 異性이 하는 일을 더 선호할 경우 추장의 허락이나 마을 공동체의 특정한 의례를 통해 버다치로서의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들 북부 인디언들에게 생물학적 성biological sex보다 중요한 것은 후천적으로 습득 가능한 사회적 성social(혹은 gender)이었다. 또한 인디언들은 버다치들이 우주와 만물의 이치에 더 가까운 존재라 믿어 그들을 샤먼과 동격으로 치거나 경외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버다치족의 선택된 삶을 동성애적 관계로 해석하는 데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왜냐하면 berdache는 엄밀히 따져 프랑스에서 일컫는 것처럼 수동적인 동성애 파트너가 아니다. 즉, 지금의 의미로 사용하는 Gay게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남성의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 남성'이었던 그들은 전환된 여성(transgender)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남성과 여성'의 혼합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대안적인 성, 제 3의 성이었다.

남성이면서 남성을 좋아하는 감정, 여성이 되고픈 남성, 자신의 여성성을 스스럼없이 인정하는 남성들. 이것은 인디언 특유의 세계관에서 비롯되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종교에 있어서 강조되는 것은 모든 사물의 정신적인 본성에 대한 것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정신적인 것이며, 실재하는 사물들은 영혼의 반영물이며 그림자인 것이다. 인디언들은 젠더가 어떠한 생물학적인 성을 가지고 있느냐와는 상관없이 변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 개개 본인들의 마음 상태가 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인디언들이 북부 아메리카의 대평원에서 사냥과 식량 채집을 위주로 작은 부족 단위로 삶을 영위했음을 먼저 자각해야 한다. 사냥거리와 채집거리가 부족한 그들에게 주변의 사물들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극히 소중한 자원들이었다. 풀 한 포기를 채집하더라도 자연의 생명력에 감사를 표시할 만큼 인디언들은 주변 생태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심지어는 순환적인 우주관에 접목되는 평등한 정신성을 부여했다. 아울러 그러한 사상을 기반으로 부족민 개개인들의 삶과 정신세계 역시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생태 조건을 초과하지 않도록 인구증가에도 적잖이 신경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berdache족은 생태 환경과 평화적으로 조화되는 삶을 살아온 인디언 세계에서 가능했던, 다양한 성적 이형異形들의 인정된 집단 형태였다. 16세기 이후 서유럽의 경제적 침략과 함께 굶주린 기독교도들의 사냥개와 대포로 말살되기 전까지 일반 인디언들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그리고 그들 삶의 태도를 명확히 반영하는 문화적 양상이자 실제적인 이웃들이었던 것이다.

아주 자극적이게도, 버다치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서구적인 근대화를 겪지 않은 전통 사회에서 성적 경험, 특히나 동성애적인 그리고 젠더 변화적인 성적 경험들이 개인 고유의 경험으로 형성되어졌다는 놀라운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통 사회에서 성 정체성에 관한 개인적 선택이 부재한 것을 고려할 때 그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주석 : 버다치는 20세기 초엽까지 생존자들이 미국 내에 살아 있었던 걸로 알려진다. 엄밀히 말해, 버다치는 고대 부족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서구 사회의 침탈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존재했을 가능성이 많다. 버다치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걸쳐 '젠더 전이' 사례는 꽤 많이 보고되고 있다. 폴리네시아 지역, 인도를 포함한 동남아 지역 등에서 다양한 형식의 성 역할 전환이 용인되었다.  

버다치에 관해서

http://sohappy.or.kr/bbs/view.php?id=gender6&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


전사 집단의 정액 의례

두 번째 원시 고대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두 번째 형태는 성인 남성들과 소년들간의 섹스다.

이것은 정상적인 남성이 성장해가는 한 단계로 여겨졌는데, 그 소년이 자라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면 이번에는 그가 사회로부터 아무런 비난도 받지 않은 채 소년 애인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형태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사회는 고대 그리스였다.

남부 수잔의 아잔드에서는 청년들이 군대나 집단 노역에 종사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 사이의 '청년 아내'와 결혼해 지내다가 나중에는 각자 가정을 꾸리러 떠나곤 했다. 중앙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아란다Aranda족에서는 결혼할 여성을 아직 찾지 못한 성인 남성들이 10살이나 12살난 상대를 구했다.

이와 비슷한 형태들의 실례들은 무수히 많다. 리비아 사막의 시와족, 삼비아족, 이집트……. 고대 종족들에 관한 인류학적 자료들은 분명 동성간 성 행위가 비정상적이 아님을, 오히려 그 종족의 공동체 안에 의례적 절차로 구성되어 있음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예들은 동성애자들이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사회적 편견과 호모포비아 같은 상식 수준의 억압에 대응할 수 있는 역사적 전거로써 비근하게 제시된다.

하지만 성인 남성과 소년간에 이루어지는 고대 사회의 섹스 형태에는 20세기 후반에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동성애'와는 상당히 다른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1. (예외적 경우들을 제외하고) 같은 연령대의 동성간 성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2. 거의 대부분이 군대나 집단 노역이라는 특수 공간을 전제하고 있다.
3. 항문성교를 통한 성인으로부터 소년에게로의 정액 전이轉移라는 의례적이고 반복적인 성적 행위가 지배적이다.

이같은 사실들은 보다 심층적인 문제들을 제기한다. 과연 성인 남성과 소년간의 섹스를 동성애의 형태로 볼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이 고대 사회는 '현재적 의미'의 동성애에 대해 관용적이었는가? 왜 레즈비언에 관한 언급은 없는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선, 고대 사회가 유독 연령차가 많이 나는 남성간의 섹스 형태를 고집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

1970년대까지 남아 있던 삼비아Sambia족의 그와 같은 의식ritual은 종족보존의 고유한 과정의 일부분이었다. 문제를 푸는 열쇠는 그러한 섹스 형태를 용인했던 사회가 대개 전사戰士 사회라는 점이다. 고대 전사 사회의 몇몇 군대집단에서는 소년의 항문을 통해 정액을 주입시키는 일이 통과의례로 자리잡고 있었다.

사막의 부족사회는 빈약한 생태 환경에 놓여져 있었고, 이웃 부족을 침략하는 방법이 주요한 생존 전략이었다. 그들은 강력한 전사 집단을 필요로 했다. 성인 남성들은 소년들에게 정액을 투입하고, 이따금 소년들은 그들의 정액을 마시거나 온몸에 바르기도 한다. 또 어떤 종족들은 부족간 전쟁이 일어났을 때 승리자의 용맹을 극화하고 패배자를 조롱하기 위해 포로들을 집단 계간하기도 했다.

여기에서의 정액은 남성적 용맹성, 전사의 기백, 생식능력의 전수를 의미한다. 정액 전이轉移 과정은 한 소년이 전사로 입문하는데 있어 중요한 의례였다.

여기에 뒤따르는 또 한 가지의 제약조건이 바로 인구 압박이었다. 제한된 생태 환경에서 인구 증가는 커다란 공포를 유발하기 마련이다. 고대 전사 사회는 생식의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여성 월경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소년들의 성에 대한 규율화와 여성의 性에 대한 회피를 의례화하는 데까지 이르게 했다.

다시 말해 소년들과 성인 남성들이 소속돼 있는 군대 집단,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의례화된 성적 행위들은 군사집단의 강화와 인구 통제를 위한 조절 장치였던 것이다. 궁극적으로 원시 부족사회에서의 성인-소년간 성 경험들은 공동체의 인적 자원인 한 사람의 소년에게 정령(정액)을 불어넣어 용맹스런 남성 전사로 키워내고, 인구 압박과 다산성을 의미하는 여성의 성으로부터 부족을 유지키 위한 자구적인 노력에서 파생된 셈이다.

물론 우리는 이 조직된 의례 속에서 개인화된 정체성, 혹은 개인적 욕망을 끄집어낼 수 없다. 그렇지만 생식과 분리된 동성간 성 행위와 욕망을 어떻게 한 사회 내에 극단적으로 의례화시킬 수 있었는지 비교적 명확하게 참조할 수는 있다.

아직은 동성애가 개인적 경험과 쾌락으로 언어화되지 못한 까닭에, 우리는 원시 전사 사회의 의례 속에 동성애적 욕망이 어떻게 침투되고 용해되었는지 선명하게 관찰할 도리가 없다. 다만 인류 초기부터 생식과 분리된 동성애적 성 행위가 비난을 받지 않고 행해졌다는 사실이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주석 : 고대 사회의 미혼 청년으로 구성된 전사 집단에서의 동성간 성 행위에 관해서는 아직도 연구 중이다. 다양한 지역에서 사례들이 보고되었고, 인구와 섹슈얼리티에 관한 당시 연령 사회의 권력이 여러가지 방식으로 작동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20년대 일본 사학자들은 신라의 화랑들의 남색 관계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며, 이는 전세계 고대 사회의 전사집단에서 골고루 보여지는 이와 같은 의례의 '흔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2/09/22  이송희일  출처 : sohappy.or.kr


(사진 : 시옌 족 인디언의 두 정신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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