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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6 04:03

동성애 억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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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나우누리 레인보우 미네르바의 방패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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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성애 억압의 역사
    
  인류가 섹스의 생물학적 의미를 파악한 시기는 기원전  9,000년 전후라고 알려져 있다. 그 이전에는 성숙한 여인이면 누구나 자력으로 아이를 잉태할 수 있다고 우리 조상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쉽게 납득이 되지 않겠지만, 성 행위 후 몇 달이 지나야 임신의 징후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조상들 의 무지가 이해될 법도 하다. 남성도 잉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터득한 후 많은 변화가 생겨난다.
  
  먼저 인류역사는 여성의 모성숭배 문화에서 남근숭배 문화로 옮겨가게 되었다. 출산력을 상징하는 여성의 엉덩이와 가슴을 동굴 벽에 공들여 새기던 인류가, 이제 고대 이집트에서처럼 남근 상징물을 종교 의식의 중심 소품으로 활용하거나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남근 그림에 권위의  상징인 날개를 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섹스에 사회적 의미가 부가되었다. 기본적인 사회제도들, 예를 들면 부와 권력의 세습 제도나 가족 제도 등은 섹스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 섹스는 규범에 의해 규제되어야 했고, 그런 규범을 보호하기 위한 터부가 만들어진 것은 자연스런 과정이었다. 섹스와 관련해 가장 먼저 생긴 금기는 근친 상간의 금기이다. 고대  이집트나 잉카의 왕가들은 혈통 보전을 위해 남매나 부녀간의 결혼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사회에서 근친 상간은 엄격한 금기의 대상이었다.

  수천 년간 지속된 또 다른 금기가 동성애 금기이다. 현대 서구 문명의 정신적 기초를 이룬 초기 기독교는 간음과 매춘은  물론이고 출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부부의 성관계도 죄악시했으니, 동성애에는 더욱  완고할 수밖에 없었다. 남색을 의미하는 소도미(sodomy)라는 용어는 성경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도시 소돔에서 유래되었다. 알다시피 소돔은 동성애를  비롯한 성행위로 더렵혀진 곳이고 그래서 신의 분노를 사 불탄  도시이다. 동성애는 신의 권능에 대한 도전 행위로까지 여겨졌던 것이다.
  
  중세에도 많은 유럽 국가들이 성관계를 죄악시했고 자위,  오럴 섹스, 동성애를 금기시 했으며 규범을 어긴 성행위에는 엄격한 처벌을 가졌다. 현재도 카톨릭과 유태교 그리고  이슬람교를 포함한 대부분의  종교가 동성애를금기시하고 있다.

  동성애 금기가 어떤 형태로 법제화되고 실행되었는지 문헌을 뒤져보는 일도 의미가 있겠지만, 영화 [토탈 이클립스](아니예츠카 홀란드  감독, 1996년)가 보여 주는 한 장면도 충실한 참고 자료가 될  만하다. 1870년대 초반 어린 무명 시인 랭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베를렌(데이비드 툴리스)은 정신과 육체 양면으로 교감을 나누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함께 파리를 벗어나 유럽 대륙을 여행한다.  그런데 두 연인이 벨기에의  브뤼셀에 도착했을 때 베를렌은 절망감에 빠진다. 부유한 처가와 아내에게 버림받은 데다가 랭보마저 떠나려 했기 때문이다. 위기감에 판단력을 잃은 베를렌은 총을 쏘아 랭보의 왼손에 관통상을 입힌다.
  
  법정으로 끌려간 베를렌은 이 치상 사건의 경위를 조사  받는다. 이런 심문 과정은 절차상 당연했겠지만, 이상한 일은 베를렌이  추가적인 검사까지 거쳐야 했다는 사실이다. 베를렌의 사생활에 관한 풍문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재판관은 두 의상에게 베를렌이 동성애 경험이 있는지 검사하도록 의뢰한다. 영화는 짧은 순간이지만 이 검사과정을  보여 준다. 의사들은 베를렌의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 그 내부를 더듬은  후에 그가 동성애자임을 증언한다. 19세기 후반 유럽 전역에서는 합의에 의한 동성애가 명백한 범죄행위로 여겨졌고, 동성애 전력이 판명되면 그 사실만으로도  옥살이에 처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동서양의 문화적·종교적 차이를 막론하고 배척  대상이었던 동성애가 모든 사회에서 금지되었던 것은 아니다. 드물지만  동성애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던 역사적 시대가  있었으며, 우리 모두에게 낯익은  한 사회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고대 그리스는 기원전 500년에서  기원전 300년까지의 황금기 동안,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을 비롯한 수많은 철학자  그리고 아리스 토파네스와 같은 유명 작가들을 배출했다. 현대 서구 학문의 근간을 이루는 문화의 발상지인 고대 그리스가 바로 동성애를 공인한 희귀한 사회였다.
  
  당시 사람들은 동성애 욕구를 자연스런 것으로 보았고, 특히 사제간의 동성애 관계는 제자 부모의 동의 아래 이루어졌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미성년 남색을 타락으로 여긴 이도 있었지만. 당시의  동성애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의 태도는 현재 우리가 꿈꾸지 못할 정도로 관용적이었다. 동성애를 공인한 사회의 또 다른 예로 뉴기니 등지의  원시 부족이 거론되지만, 문명 사회 그리스만큼 강한 설득력을 지닌 사례는 찾기 힘들다.

  고대 그리스 사회와 같은 예외적 상황이 있지만 동성애를 금기시 하고 동성애자를 단죄하는 경향이 인류 역사에서 대세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동성애 금기가 인류 사회에서 보편적인 경향이었다는 사실을 역으로 읽으면 흥미로운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동성애 금기가  그랬던 것처럼 동성애도 인류 역사 내내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동성애자는 소수의 불순한 무리에 의해 어느 순간 솟아난 것이 아니다.  편견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동성애자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비록 사회의 주변인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분명히 인류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동성애자는 주변인으로 내몰렸지만 그들이 비정상적이고  열등한 인물들이라는 일반의 생각은 사실이 아니다. 다수의 동성애자들이  동성애 성향을 숨겨 왔겠지만 적지  않은 인물들이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공포하거나 후에 확인되었는데, 그 중에는  역사적인 인물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나 다윗 대왕은 물론이고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도 동성애자였다. 그리고 오스카 와일드와 제임스 볼드윈 그리고 컴퓨터 발명자인 앨런 튜링 등도 모두  동성애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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