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이렇게 말하면 좀 차가운 것 같지만,
연애는 사실 계약이죠.
서로 외롭지 않게 해주겠단 계약.
서로 외롭지 않게
주말에는 놀아줘야 하고, 여름이면 여행을 가고,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고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말해주고
밤이면 굿나잇 문자를 보내야죠.
고민이 있으면 들어주고
힘들고 아플 땐 특별서비스로 옆에 있어줘야하죠.
그런 의미로 연애는 집을 고르는 것과 비슷해요.
너무 좁아서도, 필요 이상으로 넓어서도,
교통이 너무 안 좋아서도, 내 생활공간과 너무 멀어서도 힘들죠.
전혀 따뜻하지 않다거나, 혹은 너무 뜨겁기만 해도 문제죠.
물(?)이 안나온다거나, 자꾸 바람이 드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겠죠.
인테리어가 맘에 안 든다거나, 너무 더럽다거나
주변이 영 지저분한 것도 맘에 안 들 수 있겠죠.
잔손이 너무 많이 간다거나, 끊임없이 돈이 들어가는 것도
좋은 집은 아니죠.
연애는 계약이기 떄문에,
무엇보다 잘 맞는 사람을 찾아야해요.
내가 필요한 딱 그만한 사람,
식도 되고, 이야기도 잘 통하고,
취향도 비슷하고, 삶의 고민도 들어줄 줄 아는 사람.
세상의 지저분함을 알면서도
분노만 하지 말고 그것으로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
상투적인 줄 알면서도 가끔은,
연애의 룰을 묵묵히 지켜줄 수 있는 사람.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
하지만,
설사 내 손으로 집을 짓는다 하더라도,
내 손에 꼭 드는 집을 찾기가 어렵잖아요.
집은 낡아가고, 나도 변해가고, 짐은 늘어나고.
공부방이 필요하던 나는 넓은 침실이 필요해지기도 하구요.
함께 있을 때 더 행복할 수 있는 만큼,
물론 그 계약이 잘 이행되기 위해 서로 매일매일 노력해야겠지만,
그 만큼 서로를 열심히 사랑하고,
혼자가 더 좋을 때가 오면 웃으면서 다시 혼자가 되어야해요.
그런 의미에서,
제 지난 연애는, 80점은 줄 수 있는 거 같아요.
서운한 것도 천만가지, 미안한 것도 천만가지이지만
우리는 함께 한 삼년 동안 서로에게 힘이 되었고
서로를 축복하며 헤어질 수 있을 때,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었거든요.
물론, 지금도 제게 더할나위 없이 소중한 사람이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그냥 만났으면 정말 좋게 지낼 수 있는 사람도
직장 동료라 다퉈야 하고, 상사라서 미워하게 되고,
가끔은 '역할' 자체가 서로를 더 멀게 하는 거 같아요.
'애인'이 아닐 때, 서로 더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무슨 상관인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더 좋은 관계가 되는건데
울고 불고 할 필요가 뭐 있나요.
내가 나쁜 년이라 그런가요,
연애는 누구를 사랑하는 데 첫째 목적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그저 내가 좋자고 하는거죠.
하지만 나 좋은 일만 해서는 내 행복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데
연애의 묘미가 있는 거겠죠.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을 위해서,
아니, 그 사람이 있어야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
그 사람이 원하는 것도, 그러니까 우리의 계약 조건을
충실히 들어줘야해요.
이제는,
조금은 열심히 집을 찾아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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