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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소녀 2007-04-18 22: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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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가 '불치병'이라는 위험한 오해

[프레시안 2007-04-17 10:30]    


[에이즈, 이제 편견을 깨자ㆍ1] 감염인 인권 존중이 예방의 지름길

[프레시안 최용준/한림대 의과대학 교수]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재선충병."
  
  최근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소나무 재선충병'에 대해 보도하며 언론이 종종 사용한 표현이다. "재선충병이 쉽게 전염되고, 이 병에 걸린 소나무는 거의 대부분 죽는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의도라면 '소나무 에이즈'라는 비유는 적절치 않다.
  
  재선충병 매개충이 서식하는 곳의 소나무는 대부분 재선충병에 걸리지만, 에이즈 환자와 함께 지내는 사람이 에이즈에 감염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혈, 성관계 등이 아닌 일상생활을 통해서는 에이즈가 전파되지 않는다.
  
  그리고 최근 의학의 발전으로 에이즈 감염인의 사망률이 급격히 낮아졌기 때문이다. '걸리면 죽는 불치병'에서 '꾸준한 투약과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런 오류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에이즈 감염인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 또 절망한 에이즈 감염인들이 스스로 치료를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오류가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규제와 감시 일변도의 정책으로 이어지면 에이즈 감염인들이 자신의 병을 숨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에이즈 감염인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 할 뿐아니라 에이즈가 더 확산될 수도 있다.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가 집계한 에이즈 감염인은 3891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실제 감염인의 수는 이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게 보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지속되는 한, 정부 통계에 잡히지 않은 감염인의 수는 계속 늘어갈 수밖에 없다.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해서도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절실하다.
  
  오는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에이즈 관련 법의 개정안을 심사할 예정이다. 하지만 국민의 건강, 에이즈 감염인들의 인권에 관한 논의가 몇몇 국회의원들만의 몫일 리는 없다. 보다 풍부한 논의를 기대하며 관련 전문가들의 글을 4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조만간 국회가 후천성 면역결핍증 예방법(이하 에이즈 예방법) 개정 법률안들을 심사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 가운데 정부가 작년 9월에 제안한 일부 개정 법률안(내용)과,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 등 국회의원 20명이 작년 11월에 제안한 전부 개정 법률안(내용)이 눈길을 끈다.
  
  두 개정 법률안 모두 현행 에이즈 예방법과 제도에 인권 침해 요소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현행 법과 제도에 인권 침해 요소가 있음을 스스로 밝히고 이것을 고치기 위해 먼저 나섰다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필자 역시 현행 에이즈 예방법과 제도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부의 개정 법률안이 현행 법과 제도의 인권 침해 요소는 인식하고 있으나 법률안의 취지를 살릴 실효성 있는 수단을 정하지 않았고 에이즈 문제에 관한 국제 사회의 경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정부안을 만든 학자나 공무원 개인의 잘못이나 한계 때문만은 아니다. 에이즈에 대한 비과학적 통념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박고 있고, 정부의 정책 서클(policy circle) 역시 그러한 통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에이즈,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다
    
▲ 에이즈 감염인 인권 보호를 위해 거리로 나선 활동가들 ⓒ인권오름  

  "제2의 에이즈, 광우병". 한미FTA를 둘러싼 찬성과 반대가 엇갈리는 가운데 접한 선전 문구 중 하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광우병 감염의 위험을 경고하는 한 시민단체의 홍보물에서 본 것이다.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재선충병". 최근 확산되고 있는 소나무 재선충병을 보도한 거의 모든 언론 기사에서 언급되고 있는 문구다. 소나무가 재선충에 감염되면 100% 말라 죽는다는 점에 착안하여 재선충병을 에이즈에 빗댄 표현일 것이다. 결국 "제2의 에이즈", "소나무 에이즈" 따위의 표현은 에이즈가 대표적 '불치병'이라는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작년 12월 1일, 보건복지부 이종구 보건정책관은 국정브리핑 기고문에서 "에이즈는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고, 단순 만성질환일 뿐"이라며 "꾸준한 투약으로 에이즈를 극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질병 예방과 관리를 일선에서 담당하는 질병관리본부의 장으로 최근 자리를 옮긴, 책임 있는 당국자에게서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사실 에이즈가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라는 것은 지난 10년간의 의학 발전과 치료 경험이 확립한 사실이다.
  
  1996년부터 일명 '칵테일 요법'으로 불리는 고효능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법(highly active antiretroviral therapy, HAART)이 도입되면서 에이즈 환자의 수명과 삶의 질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현대의 의학 지식과 기술로도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없다.
  
  에이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꾸준한 투약과 관리를 통해 고혈압·당뇨병 환자는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에이즈 환자도 마찬가지다.
  
  물론 전염병이기는 하다. 그러나 일상생활을 통해서는 전염되지 않는다.
  
  요컨대 현대 의학과 기술의 발전은 이제 에이즈를 불치병에서 '단순한 만성질환'으로 변화시켰다. 의학적 질병으로서 에이즈는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단서가 필요하다. HAART를 비롯한 에이즈 치료에 대한 에이즈 환자의 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에이즈 환자에 대한 정부의 치료비 지원으로 이러한 접근 장벽이 완화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약제 내성 환자에게 꼭 필요한 새로운 의약품은 아직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고 있으며, 에이즈와 더불어 발생하는 합병증을 치료하는 비용은 정부의 지원에서 제외되어 있다.
  
  이 문제를 고치는 법과 제도가 바뀌고 사회적 인식이 함께 변화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에이즈가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되 여전히 불치병으로 취급되는 역설적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감염인을 감시해야 에이즈를 예방할 수 있다?
  
  2006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질병관리본부 국정감사 회의록은, 다음과 같은 아무개 의원의 발언을 싣고 있다. "(…)에이즈는 분명 전염성 질환이지요? 그렇다면 질병관리본부가 감염인이 주거하는 지역을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에이즈는 전염병이고 감염인이 전염원이 되어 에이즈가 전파되므로, 에이즈 감염인의 거주 지역을 철저하게 파악하여야 한다는 얘기다.
  
  필자가 살펴본 바로는, 이처럼 에이즈 예방과 관리를 위하여 감염인을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회의원은 다행스럽게도 17대 국회에 들어와 크게 줄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에이즈는 병원체가 바이러스인 전염병임은 분명하지만 일상생활 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되지 않는다.
  
  에이즈의 주된 감염 경로는 넷이다. 첫째, 에이즈 감염인과의 성 접촉. 둘째, 에이즈 감염인이 사용한 주사기나 주사 바늘을 다시 사용하거나 그에 찔리는 경우. 셋째, 에이즈 감염인의 혈액의 수혈이나 조직과 장기의 이식. 넷째, 출산 전후나 모유 수유 시 에이즈에 감염된 엄마에게서 아기로 전염되는 경우.
  
  그렇다면 보건 당국이 에이즈 감염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고 과연 에이즈를 예방할 수 있을까? 질병관리본부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에이즈 감염인 대다수(98.6%)가 성 접촉을 통해 감염됐다고 보고했고, 앞에서 말한 나머지 감염 경로를 통한 감염은 대체로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경우인 만큼, 성 접촉을 통한 감염 경로에 대해 생각해보자.
  
  정부 당국이 에이즈 감염인을 철저하게 감시할 수 있다면 그들의 성 생활도 철저하게 파악할 수 있을까? 설령 모든 감염인의 성 생활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하더라도 과연 에이즈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모든 감염인의 성 생활을 금지할 것인가? 아니면 매일 저녁마다 감염인의 집을 방문하여 콘돔을 나눠줄 것인가? 콘돔을 나눠준다면 실제 콘돔 착용 여부는 또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설사 이 모든 것이 가능하더라도, 보고 감염인 수로는 4000여 명, 추정 감염인 수로는 최소 7900명, 최대 2만5000명에 이르는 감염인에 대하여 이 일을 정부 당국이 할 수 있단 말인가?
  
  건전한 상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위에서 던진 모든 질문에 대하여 응당 "아니요"라는 답을 할 것이다. 감시와 통제로는 에이즈를 예방할 수 없다. 오히려 감염인들로 하여금 더욱 보건 당국을 불신하게 만들고 마땅히 필요한 지원으로부터 소외되는 결과를 빚을 것이다.
  
  그런 감시와 통제로 얻는 것이 있다면, 에이즈 예방을 위해 당국이 무언가를 한다는 전시 행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처럼 잘못된 인식이 17대 국회에서는 많이 사라졌다고 하나, 현행 법과 제도, 더욱이 그 법과 제도를 고치겠다고 내놓은 정부의 개정 법률안에 아직 남아 있다.
  
  에이즈 감염인의 신상에 관한 신고·보고 절차와 내용을 정해 놓은 조항들이 바로 그것인데, 에이즈에 관한 그릇된 통념들이 얼마나 깊이 뿌리 박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인 셈이다.
  
  국민 건강권과 감염인 인권이 상충한다?…<연합뉴스> 따라가는 언론 보도
  
  지난 2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의 에이즈 예방법 개정 법률안에 대하여 국회에게 헌법상 기본권 제한 기준에 합치하지 않은 규정의 삭제나 보완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하고, 노동부장관과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개정안 관련 법령의 개정과 에이즈 감염인의 인권과 관련된 정책의 시행을 권고했다.
  
  당시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인권위원회 권고 직후 26개 매체에서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사는 인권위 권고를 처음 보도한 <연합뉴스> 기사의 변주에 가까웠다. 따라서 <연합뉴스>에 포함된 다음 문장도 확대 재생산되었다.
  
  "(…)한편 '성매매 자체가 불법인 만큼 강제검진을 폐지하는 게 당연하다'라는 찬성 의견이 있는 반면, 인권위 권고안이 시행되면 감염인의 익명성으로 추적관리가 어렵고 감염인이 헌혈한 혈액으로 인한 전염 등 국민건강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어 인권침해와 국민건강권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또 앞서 언급한 국정감사 회의록은 같은 의원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싣고 있다. "감염인들의 인권도 중요하지요. 그러나 일반 국민들의 인권과 건강권은 더욱 중요하지요, 그렇지요?"
  
  '고위험' 집단을 겨냥한 '강제' 검진이 타당한 에이즈 예방·관리 수단이냐는 점은 별도로 따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필자가 문제 삼고 싶은 것은 과연 국민의 건강권과 감염인의 인권이 상충하는 성질을 띠고 있느냐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감염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조치가 국민의 건강권을 침해한다는 논리가 성립하려면, 거꾸로 감염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법 조항이나 제도가 국민을 에이즈로부터 보호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감염인에 대한 철저한 감시를 기본으로 삼는 현행 에이즈 신고·보고 제도는 오히려 감염인의 신상을 주변 사람들에게 노출하는 경로가 되고 있다. 에이즈 감염 경로의 특성 상 감염인 스스로가 자신의 상태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고 그에 따라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신상 노출의 두려움과 정부 당국에 대한 불신은 감염인들로 하여금 검진을 기피하게 만든다.
  
  그 결과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에이즈 전파의 개연성만 커지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감염의 개연성이 있는 사람들(사실 이론적으로는 그 누구도 감염될 수 있다!)은커녕 감염인들조차 철저하게 감시할 수 있는 정부는 없다. 결국 할 수 없는 일을 법과 제도로 만들어 놓고,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시늉만 내면서, 감염인들로 하여금 더욱 더 숨어살게끔 만드는 것이다.
  
  감염인 인권 보장이 에이즈 예방의 지름길이다
  
  이런 잘못된 통념과의 싸움은 우리나라만 겪었던 것이 아니다. 에이즈가 처음 보고된 1981년 이래 많은 나라들의 경험이기도 하다. 그 경험의 소산이 오늘날 국제 에이즈 기구인 UNAIDS의 기본 접근 방법이 된 "인권에 바탕을 둔 접근법(human rights-based approach)"이다.
  
  이 접근법의 핵심 논지는 에이즈 예방·관리 정책에서 인권 침해 요소를 가려내어 고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염인의 인권 보장이 곧 에이즈 예방의 지름길이다. 국민의 건강권과 감염인의 인권은 본질적으로 상충하지 않는다는 것이 에이즈에 맞서 싸운 국제 사회가 얻은 교훈인 셈이다.
  
  글 머리에서 밝혔듯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에이즈 예방법 법률안들을 심사할 것이라고 한다. 아무쪼록 우리 국회가 우리 사회 깊이 뿌리 박혀 그릇된 법과 제도를 온존시켜 온 비과학적 통념을 이겨내고, 과학적 근거와 국제적 경험에 바탕을 둔 좋은 법을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최용준/한림대 의과대학 교수 (mendram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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