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뱀 (六月の蛇 / A Snake Of June, 츠카모토 신야, 2002)
공식 홈페이지
http://snakeofjune.joycine.com/
요즘 일본 감독들 중 관심이 가는 감독을 대충 꼽으라 한다면 미이케 다케시, 기타노 다케시, 기타무라 류헤이, 이시이 소고, 그리고 어제 개봉한 '6월의 뱀'의 츠카모토 신야. 상업적 우회로에서 길을 잃어버린 듯 보이는 기타무라 류헤이에 비해 네 사람의 인디 마인드는 여전히 펄펄.
개론서 수준일지언정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몇 가지 상징들을 가지고, 그리고 그가 10년 넘게 구상했다는 6월 장마철의 에로티시즘에 대한 몇 개의 압축적인 장면들을 가지고 이렇게 단단한 영화를 만든 것에 대한 놀라움. '6월의 뱀'은 '쌍생아'의 실망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을 강렬한 힘의 영화다.
그침 없이 줄기차게 비가 내리는 6월 장마철은 에로티시즘이 만개할 절호의 계절이다. 물, 빗방울 듣는 화초, 개수구와 하수구 같은 구멍...구멍들로 쉼없이 쏠려 들어가는 물줄기, 그리고 오래된 사진기 하나. 츠카모토 신야는 유방암에 걸릴 정도로 성적 욕망을 단념하고 사는 여자와 청소 강박증에 빠질 정도로 에로스를 억압하며 살아가는 남자를, 욕망이 거세된 현대인의 초상의 양축으로 설정하면서 영화를 시작한다. 이 영화는 권유의 영화다. 잃어버린 관능과 에로스를 되찾자는 권유의 이야기며, 관음증과 거세 공포증에 시달리는 남성들을 해방시키는 첫 번째 길이 바로 여성들이 자신의 욕망을 주체적으로 회복하고 발견해낸 그 자리, 그 아름다운 젖가슴의 권능에 입을 맞추는 길임을 자각케 하는 영화다. 느끼함이 절개된 존 스타인벡의 세계와 어쩐지 닮아 있다.
츠카모토 전작들에 비해 달라진 게 있다면 상징의 이미지들을 곳곳에 배치하고 있는 점인데, 구멍, 성기, 뉴질랜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욕조에 감금된 인간들, 시클롭스의 카메라 옵스큐라 관음증 등 다소 상투적인 상징 도상들이긴 하지만 흑백 명함의 강렬함과 빠른 편집 때문에 전혀 군더더기 없이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츠카모토 신야는 여전히 다른 화법으로 이야기하기를 즐긴다. 그건 감각적이되, 기존 플롯을 해체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기존 화법으로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이야기 흐름을 중간에 놓치고 말게 될 것이다. 조금만 귀와 눈의 감각을 열어젖혀서, 뭉턱뭉턱 쏟아져 들어오는 이미지 다발을 음미하다보면, 세세한 플롯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될지도. 그의 영화는 늘 '감정'에 관한 영화이지 않던가.
(그의 영화들이 아직 걸작 반열에 들어서지 못하는 건 그의 말하는 방식을 관객들이 따라가지 못하거나, 아직 화법이 덜 여물었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게다. 개인적으론 후자 쪽에 내기를 걸겠지만, 여전히 일본 인디 영화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 감독임에는 분명할 터.)
덧붙임
눈 대신 처음부터 끝까지 비가 내리는 영화지만, 애인과 손 잡고 가서 보면 금상첨화일 영화. 욕망을 허심탄회 파트너와 이야기하는 방법을 잃어버린(혹은 아직도 찾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걸 생각나게 하더군요. 다음 관람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저랑 함께 보실 분은 꼭, 연락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