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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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더하기 2004-09-19 07:43:43
+1 764
대학 동성애 모임에서 사귄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모임 안에서 무척 인기가 좋았다.
언제나 웃는 낯으로 사람들을 대했고
입도 무거웠고 늘 겸손했고 유쾌했다.

그러던 녀석이 홀연 변화하기 시작한 것을 느낀 것은 한참 지나서였다.
친구는 일년 넘게 어떤 게이 온라인 모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다
여차하다보니 방장도 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과 굉장히 친해졌다.
친구는 그 온라인모임에서도 인기가 매우 많아서 기뻐했다.

그러다가 일 년 만에 정모가 열렸고
사람들은 친구의 실제 외향을 본 후 실망한 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온라인모임에서와 달리 친구는 전혀 인기가 없었고
다들 서로 이야기하기에 바쁜 채 그에게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2차에서 갑자기 ‘폭탄제거게임’이라는 것을 했는데
가장 인기 없고 못생긴 사람을 골라내서 놀려주는 게임이란다.
그런데 친구는 불행히도 1순위로 걸렸고
특유의 성격대로 겉으로는 시끌벅적 웃으며 대수롭지 않은 척 했지만,
속으로 어마어마한 쇼크에 빠졌다고 했다.
그 이후로도 정모에 나온 사람들은 친구의 뚱뚱한 몸이나
이용식을 닮은 얼굴 등에 대해 마구 놀려댔다.

친구는 그 정모에서 끝내 4차까지 화기애애한 척 하며 따라다녔지만,
결국 어떠한 기분 좋은 경험도 없이 집에 허탈하게 돌아왔다.
충격에 빠진 친구는 그로부터 4일간 바깥에 아예 나가지 않은 채,
전화연락도 끊었고 학교에도 결석했고 알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자기의 몸과 뺨을 스스로 때리기까지 했다.

녀석이 4일간의 ‘고행’ 끝에 결심한 것은 다이어트와 몸 만들기였다.
학교도 거의 나가지 않고 과외 알바도 끊었고 술도 마시지 않았고
모임에도 나오지 않았다. 친구는 그렇게 한동안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지경으로 사라졌다.

친구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동네 수영장에서 한 시간 넘게
몸이 부서지도록 수영을 했고
오후 내내 집에서 각종 체조를 했고
저녁에는 헬스클럽에 가서 3시간 넘게 운동을 했다.
나머지 시간은 인터넷과 책을 뒤지며 다이어트 노하우와
몸짱이 되는 방법에 대하여 끊임없이 읽어나갔다.

녀석에게 몸짱들이 쓴 책과 비디오는 하나의 모방해야할
성인들이 쓴 책처럼 신성하고 중요하게 와 닿았다.

그렇게 보낸 지 몇 달 만에 녀석은 학교 모임에 나왔다.
이구동성으로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할 만큼
메말라 있었고 전과 달리 의상도 매우 화려해져 있었다.
게다가 몸에 약간의 근육도 느껴졌다.

녀석이 이후 도전한 것은 한 게이운동모임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운동모임은 또 다시 녀석에게 좌절을 안겨주었다.
몇 달 동안 살인적인 살 빼기와 고문에 가까운 운동,
그리고 극도의 식사조절로 만든 몸이 그저 평범한 몸에 국한될 뿐,
눈에 띄는 몸은 결코 아니었다.
여전히 외향이 중시된 그 운동모임에서 녀석은 인기가 없었고
주목 받지 못했고 묻혀졌다.

동아리 친구들 모두 친구에 대해 깊숙이 안타까워했고
그처럼 똑똑하고 인간성이 좋았던 그가 그렇게 변해가는 게 짠했다.
그러나 녀석은 우리들의 충고에 대해 귀를 막았고
‘못생긴 사람들의 자기변명과 합리화’라거나
‘못생긴 사람들은 그런 말할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궤변을 늘어놓기까지 했다.

친구는 그렇게 작년 여름부터 올 봄까지 그답지 않은 모습으로 헤매고 있었다.
그 사이 정신과치료도 받았고 성형수술도 받았고
학업은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고 우정도 거의 잃을 지경이었다.

그러던 친구가 요즘 다시 서서히 자신의 본래 모습을 되찾고 있다.
다시금 친구의 체중은 무거워지고 근육은 사라지고
옷차림 또한 평범해지지만, 그는 누구 못지않게 똑똑한 머리로
지금 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른바 ‘몸짱’이 지나치게 대우 받고
인기라는 욕망이 사람들의 허영을 부추기고
똑같은 장점을 갖추기를 강요하는 시대 속에서
친구 같은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친구의 징후는 친구만의 책임이 아니다.
다행히 친구는 자기가 으레 걸어가야 할 길에 복귀했지만,
이 시간 못생긴 외모에 주눅 들고 상처받은 또 다른 영혼들은
또 다시 친구가 일년 가까이 힘겹게 경험했던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리라.

한군 2004-09-19 오후 22:15

저도 남들 보다 더 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생각했었던
사람입니다... 워낙 어릴때 부터 가지고 있던거라 지금은 많이 익숙해져서
괜찮지만...그래도 힘들때가 있긴 있죠.
힘들때 보던 글 이 있어서 그 친구분께 보여주셨하기도 하고
보여지는 모습에 고민이 있으신분들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도움이 될것 같다는 마음에 옮겨 봅니다.^^


---내 모든 관계는 사랑의 원에 감싸여 있다---

내 가족을 사랑의 원으로 감싸라.


살아 있는 사람이든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든.
여기에 나의 친구들, 내가 사랑하는 이들, 나의 배우자,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과거에 만난 적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용서하고
싶으면서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모든 사람을 포함시키라.

모든 사람과 훌륭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맺고 있으며,
우리는 이 관계에서 서로 존경하고 배려해준다고 다짐하라.

내가 존엄성과 평화와 기쁨을 가지고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라.

이 사랑의 원이 이 땅 전체를 에워싸게 하자.
나의 마음을 열어 내안에 무조건적인 사랑의 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하자.

나는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

나는 아름다우며 강인하다.

나는 모든 훌륭한 일에 마음을 열어놓고 있다.

진실로 그러하다.

-루이스헤이의 행복한 생각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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