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8세의 스트레이트 여성입니다.
음...혼자서 생각을 많이 해보다가
아무래도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
글을 남깁니다. ^^
저에게는 아주 친한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알았으니까
인생의 중요한 시기들을 함께 해온 소중한 친구입니다.
나이가 차면서 서로 바빠서 조금씩 소원해지기는 했어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늙어가는 모습도 가까이서 지켜보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그런, 제게는 굉장히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 친구는 보통사람과 매우 다릅니다.
굳은 의지와 그것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행동력을 가졌으며
주변 사람 하나하나에게 한결같이 충성을 다하지요.
저는 그 친구와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예술을 사랑하고, 바보스러울만큼 사람을 잘 믿으며
도덕교과서에 나오는 좋은 것들을 현실속에서도 지켜져야한다고 생각하는
순수한 사람입니다.
또한 제게 주어진 것은 요리든, 운동이든, 심지어 십자수까지도
놀랄만큼 능숙하게 해내는 재주를 가졌지요.
친구는 고등학교부터 쭈욱 학생운동을 했습니다.
풍물도 하고, 대학에 가서는 단대장이 되서
수배를 받기도 하고, 경찰서에 무시로 들락거리기도 했지요.
저는 또 나름대로 괴로운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었기에
가끔씩 보는 친구의 얼굴에 드리워진 어두움에 신경을 쓰지 못했지요.
정학먹고, 도피생활하고 그러는게 힘들어서 그런가보다 생각하고는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점점 더 불안해지는 친구와
진지한 대화 한번을 못했었습니다.
고등학교때 친구에게서 한 후배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이야기 속의 그 후배는 제 친구에게 너무 큰 짐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약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친구의 성격탓에
또 귀찮은 날파리가 붙었구나....생각한게 사실입니다.
그리고는 잊어버렸습니다.
2,3년 뒤 우리는 대학에 갔고 어느날 친구의 어머니로부터 울먹이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친구가 병원에 있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술에 취해 발을 헛디뎌서 5층 높이에서 떨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는 6주동안 치료를 받고, 이후 몇년간 성형수술을 받아야했습니다.
말끔했던 친구의 얼굴에 길다란 수술자국이 그때부터 자리잡았지요.
그리고 친구는 어느날 정말 기가막힌 이야기를 하더군요.
술에 취해 있긴 했지만 사실은 밖으로 쏠리는 몸을 일부러 가누지 않았다구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한동안 친구와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나쁜년입니다.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하는 걱정보다는
스스로 그렇게 상처를 줄 만큼 바보같은 사람이었나, 하는 실망과 배신감이 더 컸던겁니다.
그리고 이후, 친구의 고등학교 후배가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참 어린 나이에 말이죠.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다른 남자아이들과는 달랐으니까요.
그애의 감성이나 생각들, 말투, 옷차림, 이성에 대한 무관심 등등
그리고 대학에서 친구는 정말 제대로 된 연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학교 후배였는데, 제게 애인이라고 정식으로 소개를 시키기도 했습니다.
굉장히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제가 너무 쉽게 받아들여서 친구는 외려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죠.
친구의 연인은 굉장히 강한 사람 같았습니다.
외모는 약해보이는데 그 속에는 든든함이 있어보여 좋았지요.
저와도 잘 어울려주었고, 한동안 불안하기 그지 없었던 친구도 그애로 인해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일년전이었습니다.
친구로부터 걸려온 전화, 목소리가 이상했습니다.
헤어졌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은 음성으로 내뱉더군요.
후배는 영화를 한다며 서울로 떠나면서
앞으로 누구도 이만큼 사랑할 수 없지만 그만둬야된다고,
눈물 질질 짜내는 멜로영화 대사같은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했습니다.
또다시 예전처럼 고통스러워할 친구가 걱정스럽고 안쓰러워서
저도 모르게 그애에 대해 나쁜 말을 떠들어대기 시작했죠.
친구는 제게 말했습니다.
네가 그애와 나를 그렇게 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니 실망이다, 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그 후배가 미운 마음은 없어지지 않았지만
친구가 예전처럼 크게 불안해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에 친구와 밥을 먹는데 불현듯 그러더군요.
나 연애한다.
누구냐고 물어보니 사진을 보여주더군요.
여자였습니다. 두살 연상의.
저는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어색하게 웃으면서 축하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후로 친구가 너무 멀게 느껴집니다.
내가 알고있던 그 사람과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인지 자신이 없어지더군요.
사실 친구는 제게 정식으로 커밍아웃을 한적이 없습니다.
그냥 사귀는 사람이 있는데 남자다.
그렇게 말했었지요.
또한 예전에 저는 굳이 커밍아웃을 할 필요가 있나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친구의 연인이 남자든 여자든 친구가 내게 허락을 구할 필요는 없는거 아닌가요.
그래서 굳이 친구에게 이반인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친구가 살아온 삶을 통해서 그가 이반일거라고 단정지어버린 겁니다.
하지만 이젠 혼란스럽네요.
친구의 성적취향과 나와는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가 동성애자냐 이성애자냐 하는 문제는
그저 성적취향을 떠나서 삶을 통째로 지배하는 무엇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게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을 때
그 친구와 저와의 우정에도 심각한 거리가 생길 것임을 예감합니다.
지금 그 친구와 저의 대화는
그야말로 피상적이며 겉도는, 매우 피곤한, 의례적인 수준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친구와의 만남도 예전처럼 즐겁지 않네요.
그는 이반일까요, 아니면 양성애자일까요?
제가 친구에게 먼저 물어봐야할까요?
너는 동성애자가 아닌가? 라고.
그러면 친구가 기분나쁘지 않을까요?
호기심에서 그런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걱정됩니다.
어떻게 해야 친구의 마음을 다치지 않을 수 있을런지.
길고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불편한 내용이 아니었기를 빕니다.
그 친구분을....... 사랑하고 계신 거.. 맞나요.?
스스로 가만히 생각해 보시면 아실 거라고 사려 됨니다.
처음 그 친구가 남자와 사귐을 가졌을 때.. 님은 그 두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들이셨습니다.
그래야 그 친구가 편해 할 거라고.. 그래서 그리 하셨나요..?
그러다가 그 친구가 여자를 만나자... 거리감을 느끼고 소원한 사이가 되신 거.. 맞나요.?
가만히 되집어 보십시오..
그 친구분이 남자를 사귈땐 자연스럽게 셋이서 만남도 가질 수 있었던 님이..
그 친구분이 여자를 만나고 있다고 하니.. 왜 그리 복잡한 사념에 사로 잡히게 되셨는 지...
꼭, 그 친구분이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 그도 아니면 양성애자인지.. 알고 싶으신 이유가 무엇인지...
속으로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우정과 사랑 사이는... 동성애자, 이성애자.. 를 초월해 온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