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의 판결에 대한 논평] 본인동의 없는 HIV검사, 비밀누설은 HIV예방에 걸림돌 |
1. 4월 9일 서울중앙지법(형사31단독 양석용 판사)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환자의 정보를 다른 의사에게 알린 의사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판사는 "의료인에 대한 전파 가능성 차단과 피해자가 감염인인 사실이 알려질 경우 받을 수 있는 사회적 고립 등의 피해 사이에 법익 균형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7조(비밀누설금지)는 “감염인의 진단·검안·진료 및 간호에 참여한 자, 감염인에 관한 기록을 유지·관리하는 자는.... 본인의 동의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에는 물론 퇴직 후에도 감염인에 대하여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2. 다만 판사가 피고인의 범행 동기와 정황을 고려하여 선고유예로 선처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선고유예는 유죄는 인정되지만 비교적 가벼운 형을 선고할 경우 개전(잘못을 뉘우쳐 마음을 고침)의 정상이 현저하면 형의 선고를 미루었다가 2년이 지나면 면소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피고인의 범행동기와 정황이라 하면 피고인이 “수술과정에서 HIV 전파를 막기 위한 정당한 조치”라고 무죄를 주장한 점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하지만 피고인의 변명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3. 유엔에이즈(UNAIDS)는 이미 1997년 ‘HIV검사와 상담에 관한 정책강령(Policy statement on HIV testing and counselling)'을 발표하여 자발적이고 비밀보장이 되는 익명검사, 강제검사 금지 등을 각 국가정책으로 삼도록 촉구했다. 유엔에이즈는 HIV검사의 원칙으로 ’3C‘를 강조했다. 즉 HIV검사시 본인동의(Consent), 비밀준수(Confidential), 충분한 설명과 상담(Counselling)이 수반되어야 한다. 의료기관에서 제공하는 HIV검사에 대해 환자는 거부할 권리가 있고, 동의 없는 검사는 의식이 없는 환자나 보호자가 없는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권고한다. 유엔에이즈는 고지된 동의와 비밀보장이 없는 검사는 인권침해이고 강제검사가 공중보건목표를 달성한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피고인이 재직하고 있는 병원이 환자 모르게 HIV검사를 한 것 자체부터가 문제이다.
4. 또한 HIV감염사실을 누설하는 것이 HIV전파를 막는 방법이라는 피고인의 주장은 의학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통상적인 감염예방 및 위생수칙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에이즈 환자 진료에 문제가 없다.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이훈재 교수는 “에이즈 환자라고 하더라도 의료행위를 할 경우 특별한 소독이나 보호장비가 필요하지는 않기 때문에, 의료기관내에서 에이즈 환자를 구분하여 관리할 필요는 없다. 의학적 근거에 입각하여 의료인에게는 ‘보편적 감염 주의원칙(Uiversal Precaution)’을 준수하도록 강조되고 있다. 이는 에이즈와 같이 특정한 감염병이 있다고 해서 특별히 조치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환자를 대할 때 항상 감염예방 조치를 원칙에 따라 철저하고 동일한 수준으로 하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기관에서 특별히 주의하여야 할 환자로는 신종인플루엔자와 같이 호흡기로 전파되는 환자와 통상적인 살균과정을 통해서는 소독처리가 되지 않는 인간광우병 환자 정도가 있을 뿐이다”라고 강조한다.
5. 수술과정에서 감염병 전파예방의 책임은 환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 있다. HIV감염인뿐만아니라 각종 감염병환자들이 내원할 수 있고, 현재의 의학으로는 질병명을 모르는 감염병환자도 진료를 받으러 올 수 있다. 따라서 병원은 특정 환자를 가려서 예방조치를 취할 것이 아니라 모든 환자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설, 장비, 안전조치를 마련해야할 책임이 있다. 설령 내원한 환자가 HIV감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HIV전파예방을 위해 통상적인 감염예방수칙 외에 무엇을 더 하겠다는 것인가?
6. HIV를 포함하여 환자(혹은 병력자)의 의료정보나 인적사항이 포함된 정보는 사생활에 해당된다. 판사가 "HIV에 대한 이해 부족과 그릇된 태도 탓에 여전히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존재하고 있다"고 한 것처럼 특히 HIV를 포함하여 사회적 차별과 낙인이 존재하는 감염병의 경우 그 정보의 누출은 환자의 ‘사회적 사망’을 야기할 수도 있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7. 법원이 선고유예기간동안 개전(잘못을 뉘우쳐 마음을 고침)의 기회를 준만큼 피고인은 간과한 의학지식의 습득과 환자인권에 관한 교육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피고인이 반성은커녕 항소했다. 이는 피고인 개인의 잘못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의대 교육과정, 병원내 교육과정에서 HIV감염인 인권에 대한 교육이 절대로 필요함을 방증한다.
2013년 4월 11일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공공의약센터/ 동성애자인권연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저 의사, 환자의 건강 상태와 병력에 대한 정보 자체가 사생활이고 비밀이라는 걸 아예 몰랐나요...
의료인이라면 환자가 얼마나 심신 모두 취약한지 충분히 알고 더더욱 조심해야 퇼 텐데요.
더구나 특정 질병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환자보다도 같은 의료인의 안위부터 챙기고
HIV/에이즈포비아같은 모습까지 보였으니, 참 답답하고 속 터지네요...
거기에 강제 HIV 검사도 문제고 벌금형도 태부족하구요.
(의사보다 판사의 의식 수준이 높다는 게 다행이면서도 걱정스럽군요)
암튼 가장 과학적인 지식을 갖추고 모든 환자를 공평히 대해야 할 의료인이 아직 이렇다니,
의대뿐 아니라 병원 내 의료인에 대한 HIV/에이즈 (재)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