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추노>(KBS) <파스타>(MBC)가 수려한 영상미와 캐릭터의 진화를 보여주며 아쉬움 속에 끝났고, MBC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은 수많은 애청자들에게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주며 종영했다.
미국 드라마의 영향인지 요새는 한국영화보다 TV 드라마가 더 재미있다. 그 바통을 이어받을 새로운 주자들이 지난 3월 말 이후로 나타났다. 확실한 주자일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이 김수현 극본의 <인생은 아름다워>와 이새인 원작·극본의<개인의 취향>이다. 이유는 이들 드라마에 '게이'라는 단어가 등장해서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제주도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대가족의 이야기를 담았고, <개인의 취향>은 게이가 된 퍼펙트한 남자와 어리바리한 여자의 동거이야기, 즉 게이인 척하는 남자와 여성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긴장을 이용한 로맨틱 코미디다.
사실 내가 이 두 작품에 관심이 더 가는 이유는 한국에 살고 있는 남성 동성애자, 즉 게이로서 이 드라마들이 동성애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아웃팅의 공포 표현하지 못하는 <개인의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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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드라마 <개인의 취향>의 한 장면. '가짜' 게이 전진호(이민호 분)는 '아웃팅'의 무서움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했다. |
ⓒ M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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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개인의 취향>은 첫 홍보 때부터 <꽃보다 남자>의 스타 '이민호(전진호 역)'가 게이인 '척'하는 남자를 연기한다는 점을 부각시켰고 매체들 역시 이를 앞세워 기사로 실었다. 게이도 아니고, 게이인 '척'하는 남자를 연기한다는 것이 이렇게 화제라니, 우선 실망이었다. 이민호의 새 작품이라는 것 때문에 함께 호흡을 맞추는 여배우 손예진의 이름이 실린 기사를 찾는 것도 힘들었다.
이런 이상스런 기대들 때문인지, 실제 방영 때에도 타 방송사의 <신데렐라 언니>(KBS)에 더 관심이 갔다. 이미 <커피프린스 1호점> 등으로 가짜 게이 이야기는 접해본 터라, 이야기 구도나 드라마 재미, 배우 연기를 떠나서 우선 신선도가 떨어졌다.
아직 극 초반이라 단언할 수는 없으나, 간혹 등장하는 극 중 여주인공 '박개인(손예진 분)'이 '전진호(이민호 분)'의 성정체성을 당사자의 동의없이 타인에게 말하는 장면(특히 3회 '포창마차 장면')은 동성애자에겐 굉장히 공포스러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아웃팅'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전진호'는 그 순간 느꼈을 공포를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개인의 취향>은 이러한 동성애자의 아픔, 공포에 대해 관심이 없다. '전진호' 스스로가 이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니가 하면 '사랑', 내가 하면 '불편한 애정표현'?
동성애자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커밍아웃'하기란 쉽지 않다. 그 어떤 이성애자도 자신의 성정체성이 스트레이트(이성애자를 표현하는 영어식 표현)라고 말하지 않는다. 동성애자라고 언제 어디서나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성애 중심사회, 특히 결혼제도 중심의 한국사회에서 비혼자인 동성애자는 커밍아웃에 대한 고민을 항상 지니고 산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으로 얻어지는 수많은 제도적 혜택이나 이익을 무시하고,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고민하는 한국의 수많은 동성애자는 자신에게 던져지는 결혼이나 연애관에 대한 질문에 궁색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김수현 극복의 <인생은 아름다워>이다. 대가족의 장남 '태섭'(송창의 분)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노총각 의사다. 그의 연인 '경수'(이상우 분)는 게이라는 정체성을 숨길 수 없어 최근에 자식이 있음에도 이혼한 이혼남이다.
최근 언론들이 앞다퉈 이 드라마를 다룬 이유는 이 둘의 애정장면 때문이다. 뭐 사실 아직 이렇다 할 애정 표현 장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문들은 찬반 논란이 팽팽하다고 난리들이다.
특히 다양성을 담보 해야 하는 지상파 방송에서 동성애 소재가 옳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는 동성애 혐오에서 비롯한 것이다. 수많은 이성애자들의 키스 장면과 정사 장면에 감정이입 못하는 동성애자들에게 '사랑'의 차원에서 접근해달라고 절실하게 부탁하는 이성애자는 누구도 없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니가 하면 '사랑'이고, 내가 하면 '불편한 애정표현'이나 다름없다.
가족 드라마에 웬 동성애냐라는 말들도 많다. 막장드라마라고 불리는 수많은 가족드라마보다 이 드라마가 진정으로 가족 공동체의 존재를 위협하는 그 무언가를 담고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남성 사이의 애정장면을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만큼 스스로가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설사 불편하다고 표현하고 싶더라도 그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은 아니란 것은 스스로 감지해야 한다.
동성애자는 전 세계에 동시대에 살고 있는 구성원이자, 인생을 살아가는 같은 인간이다. 혐오할 대상이 아니다. 국제보건기구(WHO)는 1990년 5월 17일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했다.
동성애, 개인 문제 아닌 가족 문제이자 사회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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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한 장면. 태섭(송창의 분)과 경수(이상우 분)은 사랑하는 사이다. |
ⓒ S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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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소시민의 자식으로 잘 살고 있는 장남 '태섭'은 자신이 '게이'인 것보다 가족들에게 숨겨야하는 현실이 더 고통스럽다고 토로한다. 이러한 동성애자의 현실을 그린 이야기가 지상파 방송,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것에 적잖이 많은 사람들이 놀란 듯하다. 아직은 이르지 않냐고 이야기한다. 단순한 소재로써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로 다가오는, 자신의 가족 중에도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당황하고 불편해 한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동성애 문제만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라 가족 전반에 걸친 인생사를 이야기 하고 있다. 사람의 인생사가 그렇듯이 동성애 문제는 누군가에게는 타인의 문제일 수도 있고, 나 같은 동성애자에게는 존재의 문제다. 또 나를 동성애자로 알고 있는 우리 가족(누이와 형)에게는 가족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그 층위가 다들 다르지만, 제도적으로 차별받는 동성애자, 성소수자들이 사회에 존재한다고 표현하면 그 문제는 사회의 중요한 이슈가 된다.
지난해 11월 풋풋한 20대 게이들의 사랑 영화 <친구사이?>가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고, 군형법의 92조는 '동성 간의 성행위'를 징역 2년으로 처벌하고 있다. 수많은 청소년 동성애자는 아웃팅 위협과 동성애자에게 불친절한 사회 때문에 지금도 자살을 고민하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드라마들의 등장 자체가 이슈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등장에 관심을 갖지말고 동성애를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고 잘못된 표현이나 억지스런 과장은 바로 잡아줬으면 한다. 또 동성애를 사회문제 차원으로 봐야 한다. 아직 두 드라마 모두 방영 초반이라 더 기대할 것은 많다고 본다. 그 기대가 꺾이지 않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