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게이컬쳐가이드북' 제작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어요.
자료조사, 취재, 인터뷰 등등을 마치고 집필이 한창입니다.
저는 주로 용어정리나 잡다한 박스글들을 맡았는데...
소설도 시도 수필도 시나료도 아닌 이런 요상한 글을 쓰는 건 참 밥맛이어요.
주로 아래와 같은 영원한 순환고리를 밟더군요.
소재결정 -> 무작정자료수집 -> 키워드나 주제선정 -> 혼자 뿌듯해 하며 흡연 -> 내 맘대로 인용발췌 -> 원고작성 시작 -> 첫줄에 막힘 -> 흡연 -> 잠시 TV드라마 감상 -> 자료부족을 실감하고 다시 자료보강 -> 흥미로운 자료 발견 -> 키워드나 주제 변경 -> 기분 좋아 음주 -> 다시 원고작성 시작 -> 글이 안 풀려 비관 -> 잠시 야동의 세계에 빠져듬 -> 흡연 -> 남의 글 컨닝 시작 -> 자존심 상해하며 음주 -> 새로운 아이디어 발상 -> 기뻐하다가 취해서 잠듬.
술과 담배만 늘어간다능...ㅠㅠ
box1 << 70/80 게이가이드북 >>
이제 TV드라마, 영화 등에서 동성애자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심지어는 게이인 척하는 이성애자가 주인공인 드라마까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동성애’란 단어만 두들기면 수많은 정보가 눈앞에 펼쳐지고, 모르긴 해도 ‘세상에 이런 사람은 나 혼자 뿐일 거야’하고 고민하는 청소년 동성애자는 앞 세대에 비해 꽤 줄어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7,80년대 혹은 90년대 중반까지 청소년기를 보낸 동성애자들이 자신들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그들이 아는 신문의 가십난이나 주간지, 여성지 등의 르포나 사건기사들에 등장하는 동성애자만이 유일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행여나 그 기사들에서 롤모델을 찾고자 했던 순진한 청소년이 있었다면, 혹자는 ‘여장하고 술꾼 녹인 남성 호스티스’(1978 ㅅ주간지), ‘몸 파는 게이보이들’(1986 ㅅ주간지) 등의 기사를 훔쳐보고는 남장여자가 되어 윤락가에서 살게 될지 모르는 자신의 미래에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두 소년 못살게 군 2 명의 변태총각(1978. ㅅ주간지)’, ‘게이바 업주 등 16명 구속(1985 ㅈ 일보), 동성연애 알선 카페주인 영장(1991 ㄷ 일보)등의 기사를 접하고서는 공포에 질린 채 범죄자로 낙인찍혀 살게 될 자신의 미래를 두려워하기도 했을 것이고, ‘동성연애 여인이 유서에 적은 사연(1977, ㅅ주간지)’, ‘여자를 사랑한 여자의 한(1978.ㅅ주간지)’등을 읽으며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충동에 휘말리기도 했으리라.
또한 어쩌다 신문에서 동성애상담을 발견하면 ‘동성애란 성에 대한 무지, 병적 욕구 등이 원인으로 어떤 목표를 세워 신경 쓰는 것을 분산시키든가 혼자 해결이 안 되면 신경정신과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1982. ㅈ 일보)’이라는 등의 답변을 철석같이 믿고 바꿀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스스로를 고행 속으로 몰아넣고 괴로워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갔을 때, 그 처절한 수치심과 모멸감 속에서도 살아남기로 결심한 우리의 언니들은 마침내 이를 악물고 거리로 나섰을 것이다. 낡은 잡지 한 장 찢어 바지주머니에 꼬깃꼬깃 넣고서 ‘현장고발: 대낮목욕탕 휴게실 호모족 판친다.1986.ㅅ주간지)’ 등의 기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종로2,3가 뒷골목의 게이사우나들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고맙게도 그런 기사들은 언니들을 위한 ‘게이가이드북’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주었다. 한 예로 어느 주간지에는는 ‘어느 대학생의 충격 고백수기 ’나는 호모였다‘는 제목으로 20대 동성애자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논픽션을 가장한 픽션이 연재되기까지 했다. 이 글은 극장, 술집, 사우나 등의 장소 안내 뿐 아니라 뗏자(때짜), 받자(마짜의 오기로 보임), 전차 등 동성애자들의 은어까지 소개해주는 친절함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누구나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지금 30대 이상인 게이들 중에는 당시 기사에 자주 등장했던 P극장을 찾아 헤매다 한 끗발 건너 피카디리 극장을 선택하는 바람에 영화만 줄창 봐야했던 슬픈 무용담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P극장도 없어지고 7080의 게이가이드북이었던 주간지들도 없어진지 오래다. 하지만 가끔 인터넷에서, 호모포비아와 욕설로 변한 그 시절의 유령들이 출몰하기도 한다. 몸서리나는 기시감에 당황해하는 지금은......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