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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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4 13:38:57
+7 899

1.
폭음을 하고난 다음날에는 두렵기 짝이 없는 우울함이 밀려온다.

더 이상 술냄새가 나지 않게 될 쯤에도 몸은 한없이 늘어지기만 한다. 어제의 표정들과, 기억나지 않는 말과 말 사이에서, 나는 또 얼마나 세상에 쓸 데 없는 감정들을 만들고 남겼는지, 마음은 편치가 않다. 그래서, 문득 앞으로는 내 어깨가 2 밀리미터쯤은 더 좁아지고 굽어지는 것만 같은 이런 과음 따위는 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아니, 내가 진짜 그럴 수 있을까 하며 도리질을 치게 된다. 폭음은 딱 둘이 있을 때만 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인데.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둘이서 술마실 때만 마구 먹기. 애인님이 고생하려나? 쩝. ㅋ

2.
담배도 피기 귀찮을만큼 축축거리는 몸으로 티브이 리모콘만 열심히 돌려댄 하루였다. 그 와중에 잠시 국회티브이에서 하는 양창수 대법관 후보의 인사 청문회를 구경했더랬다. 양 후보의 태도는 사람들의 우려보다는 합리적 보수에 가깝게 보였다. 

청문회라기보다는 구두시험 같은. 또 학교 선생님이 학생을 닦달하는 것 같은. 하지만 무엇이 청문회다운 것인지는 잘 떠오르지가 않았다. 한국 국회의 후진성일 것이다, 라고 편하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3.
국회의원들 같은 정치인들을 보다 보면, 연설을 참 못하는 체질들이어서 아쉽다. 연설의 영역은 사실상 한국어의 불모지. 고종석을 따라 말한다면, 연설이라는 언어의 영역을 발전시키며 한국어를 풍부하게 하려는 정치인들의 노력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는 훈화만이 넘친다. 대통령의 말부터 유세의 말까지, 수구 집단의 선동에서 진보 진영의 연설까지, 나는 말하는 사람 목에 핏대가 얼마나 많이 서느냐 정도의 차이만 발견할 뿐 그리 다양함도, 재미도, 교훈도, 즐거움도 한국의 연설에서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연설은 일방적인 말하기 방식인 것으로 보이지만, 상대방에게 전달력이 상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대화의 조건이 된다. 한 사람이 추구하는 바와 따르려는 가치, 그리고 꼭 알리고 싶어하는 핵심을 잘 드러내는 말하기 방식은 연설 말고는 찾기 힘들다. 논리적이고, 명확하고, 설득적이고, 정서적이고, 교육적이고, 상대와 반응하는, 그렇게 여러 요소들이 결합하는 고도의 말하기 방식이다. 그래서 좋은 연설은 사람들을 들끓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미국 정치사의 유명한 연설들이 이런 요소들이 잘 갖춰진 훌륭한 연설일 것이다. (왜 미국은 저렇게 연설의 정치가 통할 수 있을까? 나는 이게 오래도록 궁금했었다.)

미국 대선 후보들이 연설을 통해 미국인들과 세계를 기만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연설 저거 문제야, 하다가도, 오히려 저항의 무기, 그러니까 많은 집회에서 사람들을 훌륭한 투사로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연설이 가진 사기(지향하는 바는 잘 드러내지만 속마음은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넓은 의미의) 정치나 언어를 연설이 풍부하게 할 수 있다 걸 생각하면, 연설 문화의 공백은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해방 공간과 그후 적어도 20년 동안 군중들을 운집하게 만들었었던, 그 연설의 광경들과 능력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언젠가 노동자의 집회에서 백기완 선생(으로 기억된다)이 지팡이를 짚고 느릿느릿 연단에 오른 적이 있었다. 한참 후에야 무대 중앙에 설 수 있었던 선생이, 천천히, 몸집의 댓 배는 더 될 것 같은, 걸걸하고 높은 높은 목소리로 터뜨렸 말.
"여러부운! 지금 김대중 정부가 우리 노동자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있습니다아!"
와아 하는 군중들의 함성 소리.
"여러부운, 이렇게 김대중 정부가 지른 불을 끄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아?"
싸워야 한다, 물을 뿌려야 한다 등등의 군중들의 대답.
"우리 노동자들도 정권을 향해 맞불을 놓아야 합니다아!"
와아 하는 커다란 함성.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천천히 몸을 돌려 연단에서 내려오던 선생.

그 짧은 연설 때문에, 사실 나는 그날 몸과 마음이 많이 뜨거웠었다.

4.
사람들의 대책 없는 우울함에는 어떤 말투와 음색이 필요한 걸까? 사람들의 눈물 앞에서는 어떤 표정과 손길이 필요한 걸까? 사람들의 노여움 앞에서는 눈짓이며 몸짓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나는 사람이 적잖이 두렵고, 또 사람들을 꽈악 껴안고 싶다.

 

 

오랜만의 오늘의 결론 :  갊의 몸은 뜨겁다. ㅎㅎ

Mr 황 2008-09-04 오후 16:24

댓글이 없으면 슬프다는거...

폭음은.. 건강에 않좋아요.

학생의 의견- <( 어린것이 뭘알아 ..-ㅁ -;;

차돌바우 2008-09-04 오후 18:49

어린 사람도 알건 안답니다 ^^
폭음, 흡연 몸에 안좋아요~~~

말라사랑 2008-09-05 오전 00:39

폭식도 안 좋아요.

폭박사랑 2008-09-05 오전 00:39

전 폭박을 하고 싶어요.

박재경 2008-09-05 오전 03:22

조용히 눈감고 앉아서 이생각 저생각 할수도 있고 진짜 스님들처럼 무상으로 앉아있을수도 있고..... 조용히 눈감고 앉아있으면 자기 내부의 힘이 느껴질걸요
수많은 관계를 떠난 자신의 감정도 배제한 순수한 영혼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게 되면
세상 많은 것들이 연민으로 가득차는거 같아요

안티말라 2008-09-05 오전 03:52

전 대박을 하고 싶어요.

폭탄토끼 2008-09-05 오전 08:02

전 폭탄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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