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사랑과 다르다. 사랑이라는 것이 감정의 문제라고 한다면, 연애라는 것은 그런 감정을 포함한 관계의 문제이다. 또 어떤 것을 연애라고 하며 연애를 할 때에는 보통 이러저러하다는 연애라는 제도의 문제이다.
사랑이 어느 때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의 말처럼 교통사고같이 온다. 연애 관계 역시 급작스럽게 형성될 수도 있지만, 사실 어느 정도는 조절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연애 시장에 뛰어드는 순간, 연애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고, 마음 속으로만 품는 것이 아니라 "저기, 우리 사귈까요?"라는 계약 청약과 같은 말과 그것에 응하는 말이 분명히 존재한 이후에야 실질적인 연애 관계가 시작된다. 박현주의 말대로, 연애의 시작은 말이 있고난 후이다. 이런 청약과 응답의 시기는 무수한 생각과 감정의 겹 속에서 조절된다. 그리고 이런 말이 오가기 위해서는 접촉과 접근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연애를 시작하는 데에는 말과 행동, 그리고 이것을 할 의지가 중요하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행위를 하는 것은 꽤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 에너지를 지불하여야 연애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소위 삽질을 많이 해야 한다. 입만 열면 누구 한 명 소개시켜 달라고 노래를 부르는 한 친구사이 회원은, 막상 기회가 생기면 슬그머니 피하고 만다. "저번에 형이 멀리서 보고 좋다고 했던 그 사람 지금 여기 있어요. 빨리 오세요!" 라고 급하게 연락을 해도, 쉽게 오질 못한다. 얼굴이 벌개지면서 수줍다고 하지만, 그 에너지를 지불할 의사 역시도 그렇게 크지 않아서 쉽사리 나서질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연애는 요원하다.
그야말로 삽질로 끝나고 많은 무수한 삽질 끝에, 연애가 시작된다. 대학 때 동아리 사람들이 성공한 쿠데타는 쿠데타가 아니라는 말을 비꼬고 비틀면서 "성공한 삽질은 삽질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렇게, 열심히 삽질을 한 후에 삽질이 아니게 된 "성공한 삽질"을 일굴 수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단 한 번도 삽질하지 않은 채 연애로 진입할 수 있겠지만, 그 경우는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에나, 단 한 번의 삽질을 곧바로 "성공한 삽질"로 만들어 연애로 골인했을 때이다. 외모와 스타일을 포함한 의미에서 그 능력이 좋거나, 운이 좋아야 한다.
그저 삽질로 끝난 무수한 삽질은 그 삽질들을 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저기요, 그냥 친구로 지내요" "저기요,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별로 관심 없어요" 라는 말들을 듣는 일은 가혹하다. 내 주제에, 라는 자학도 들고, 내가 그렇게 별볼 일 없나, 내 진실을 몰라주다니!, 하는 억울한 생각도 들게 마련이다. 그것은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내는 일이다.
아예 아무런 응답도 없는 경우는 또 어떤가. 메일을, 편지를, 쪽지를, 문자를 보내고 나서 그 메시지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은 아닌가, 맘에 들지 않은데다가 귀찮기까지 해서 답변을 보내지 않는 것은 아닌가 며칠을 전전긍긍하는 마음은 정말 손에 일이 잡히지 않게 한다. 결국 대답을 못 들었을 때에는 속상하고 화나고 쪽팔린다.
이런 상처들에 휘말리게 되면 헤어나기가 힘들 수도 있다. 상처받기 싫어서 연애 시장을 떠나버릴 수도 있다. 연애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치명타이다. 그럴수록 연애할 가능성은 더 줄어든다.
연애를 하고자 한다면, 이런 것에 굴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상처들은 연애 시작에 드는 일종의 비용이다. 삽질자라면 상처 후에 하루 이틀 정도 슬퍼하고 말아야 한다. 남는 상처는 치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실 이 상처들에 가장 좋은 치료제는 "성공한 삽질"이다. 삽질이 성공하였을 때, 이전의 기억들을 돌이켜 보고 눈물을 흘리며 "오홍~ 날 거절한 자들, 후회해도 소용없으리" 큰 소리 한번 쳐볼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삽질만 하다 내 인생 다 끝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대체 연애에 골인을 할 수 있는가 회의가 들 수 있다. 그러나 미래가 불확정적이므로,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꾸준히 밀고나갈 필요가 있다. 삽질을 계속하다 보면 자신의 장단점도 보이고, 자신이 좋아면서 자신을 좋아해줄 만한 대상에 대해서도 감이 조금 생기고, 헉 이 산이 아닌가벼 하는 경험도 쌓여가면서, 삽질의 기술도 슬슬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감 있는(그러나 오만하지 않은) 삽질이 아무래도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본다면, 꿋꿋한 태도가 중요하다.
시선을 바꿔서 보시를 한다고 생각해도 좋다. 내 비록 삽질은 실패하였지만, 상대방에게는 소위 '훈장'을 달아주었으니, 이것 역시 기쁘지 아니한가, 하는 생각을 가지면 자비심도 깊어지고 좋은 일 또 한번 하지 뭐, 하는 생각으로 살짝은 기쁘게 다음 삽질을 기도할 수가 있다.
삽질을 열심히 하는 자, 언젠가는 연애에 성공하리라. 삽질자는 연애를 할 가능성을 열게 되어서 좋고, 또 인간과 관계 및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고, 피삽질자에게는 훈장을 달아줘서 좋은 일이다. 연애를 하고자 한다면 열심히, 여러 번 삽질하는 게 좋다.
다만 삽질에도 주의점이 있다. 한 번의 삽질이면 족하지 계속해서 따라다닌다거나 귀찮게 하면 삽질이 스토킹으로 전락하면서 보시가 아니게 될 수 있다. "우리는 사귄다"는 말을 뱉어내지 않은 이상, 삽질에 응할 것 같았다가도 차가운 태도를 보이는 것들이 피삽질자들이다. 이런 것들을 고려하지 못한 채 어, 분위기 좋았었는데 하면서 여러 번 삽질하는 것은 삽질자로서 도리가 아니다. 그러니깐 삽질은 열심히, 그리고 잘 하는 게 좋다.
덧붙임.
1. 연애 시장의 접근이 아예 차단된 사람들도 많다. 연애라는 제도 안에서의 논리 말고, 연애 제도 자체에 대한 생각들 역시 필요한 것 같다.
2. 이 얘기들은 사실 나한테 하는 얘기다. 나, 연애할래.
호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