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한 번만 더' 라고 말할 때 검지를 펼쳐 보이지, 엄지나 중지를 펼쳐 보이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삿대질을 할 때도, 자기 자신을 가리킬 때도 우리는 검지를 사용한다. 자신을 향해 손을 향했을 때 심장에 가장 가까운 손가락이 검지이기도 하지만, 중추신경계와 가장 긴밀한 교감을 이루며 진화해오면서 우리를 온전히 '호모 파베르'라는 존재론적 위치에 가닿게 만든 중요한 기능체 역시 검지일 게다. 요컨대 검지는 우리 존재의 눈이며, 심장인 것.
검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한 번만 더'라고 애원하는 사람이 거절을 당했을 때, 가장 먼저 수그러드는 것 역시 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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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사랑을 향해 무작정 없는 잘못까지 샅샅 바닥까지 긁어내 '한 번만 더', 촬영할 적에 테이크를 더 가고 싶을 때 애원하는 눈으로 '한 번만 더', 그리고 마지막으로 술이 더 먹고 싶어 일어나는 술친구들을 붙잡은 채 게슴츠레 눈 비벼 뜨며 '한 번만 더' 라고 말할 때를 제외하고, 좀체로 검지를 꺼내들지 않는 나는 이상하게 '한 번만 더'라는 말을 듣게 되면 여전히 어떤 설렘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곤 한다.
곰곰 생각해 보니 아뿔사, 남자며, 영화며, 술이며... 죄다 연애질 대상이었다.
박성신 | 한번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