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거미
늑대거미는 내가 아는 어느 여자 후배와 닮았다.
'첫 각인'에 대한 미망.
늑대거미 암컷은 처음 교미를 한 수컷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나중에 다른 수컷을 고를 때도 처음의 수컷과 닮은 것들을 선호할 뿐만 아니라, 사마귀처럼 교미 후에 수컷의 머리부터 뜯어먹는 습성을 지닌 암컷 늑대거미는 그 교미의 대상이 처음 수컷과 닮아 있으면 영양 보충을 포기한다(죽이지 않는다).
본능이라고 하기에 이 늑대거미의 삶은 비범한 구석이 많다. 이들의 '사회적 기억'은 3일 이상이나 가고 암컷의 모성은 눈물 겨울 정도다. 새끼들을 죽을 때까지 업고 다닌다는 암컷 늑대거미에 관한 백과사전 항목을 처음 읽었을 때, 난 내가 감동의 전염을 지닌 인간이라는 게 죽도록 싫었었다. 어머니, 라는 낱말을 듣자마자 곧장 숙여해지고마는, 고향을 떠난 자들에겐 특히나.
아무튼 첫 섹스가 아니라 '첫 각인'의 미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그 후배를 보면, 가끔 늑대거미가 생각난다. 달을 등진 늑대의 긴 포효처럼 그녀가 쏟아놓는 말들의 긴 리듬, 회전하는 상처의 고리.
단 하룻밤만 같이 자줘요
이 말은 나에게 있어 의태擬態와 같은 말이다, 속임수라는 말이다.
단 한 번도 아무에게도 해보지 못한 말이지만, 폭설에 갇힌 길고 긴 겨울 한밤에 대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판타지로부터 추신된 그런 알량한 속임수.
단 하룻밤만 같이 자줘요, 나랑 사랑해요, 그러면 안 돼요? 라는 소심한 권유와 요청으로부터 기인하는.
그런 이미지였으면 좋겠다. 내가 단 하룻밤만 같이 자줘요 라고 말하면, '네, 단 하룻밤만이에요' 하고 서로 어깨를 부비며 폭설에 갇힌 길고 긴 겨울 한밤으로 발자국 소리도 지워가며 그렇게 조용히 스며들고 싶다.
컷과 컷 사이의 생략과 여백, 내 사랑도 역시, 컷과 컷 사이가 단순했으면 좋겠다. 내가 단 하룻밤만 같이 자줘요, 라고 말하면 그가 '네, 단 하룻밤만에요'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온갖 쓸데없는 감정들의 배설이 곧 사랑을 위한 기초 공사인 것처럼 구는 변명들을 생략한 채, 그렇게 단조로운 울림으로 넘어갔으면 좋겠다. 아, 얼마나 짧고 무미건조한 삶이란 말인가. 발자국을 지워가며 둘이 서로 어깨를 부벼가며 눈 쌓인 처마밑으로 스며들어가기에도 얼마나 부족한가 말이다.
요즘 난 생략과 욕망이 버무려져 어쩔 줄 모르는 밤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Celtic Song | Ten Strings Group
난 여우거미를 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