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터 봐야지봐야지 하던 예전 직장 동료와 술 한 잔을 했다. 삼겹살에 소주를 시켜놓고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중에 3년 전 같이 고생하며 가족같이 일했던 누나의 최근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때 그녀는 나보다 먼저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빚이 만만찮았다는 것 정도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뒤 몇 번의 연락처와 몇 번의 거주지가 바뀌었고 직장이 바뀌었다. 그리고 얼마 전 그녀는 남편한테 아이를 맡긴채 이혼했고 방을 따로 얻어 혼자 생활한다고 한다. 어려울 때 함께 했던 사람이 잘 안 됐다고 하니까 남일 같지가 않다. 입에서 ‘잘 좀 살지 으이그 잘 좀 살지’ 란 말이 계속 돈다. 입이 써졌고 그렇게 한잔 두잔 마신 술이 결국 정량에서 약간 오바됐다.
동료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거기서부터 30분쯤 걸어서 집으로 왔다. 불이 꺼진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불을 켜기가 싫었던 난 그대로 터벅터벅 방에 들어섰다. 모든 것이 검은 실루엣으로만 보이는 방에 서서 어쩔까하다가 옷을 입은채 누워버렸다. 조금만 그렇게 있어야지 했는데 나는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요즘은 어느정도 술을 마시고 자면 다음날 일찍 깬다. 창문 너머로 푸르스름한 빛이 들어오는 걸 확인했다. 자켓도 양말도 벗지 않고 그대로 잠들었더니 좀 갑갑해서 창문을 연다. 며칠간 무슨 꿈을 꾸긴 하는 것 같은데 아무리 애써도 기억이 나진 않는다.
2005년이 얼마 남지 않았던 어느날 불현듯 초콜릿이 내 입맛을 자극했다. 그때부터 조금씩 먹기 시작한 초콜릿 양이 지금은 꽤 늘었다. 담배가 생각날 때마다 초콜릿을 먹은덕에 나는 자연스레 담배를 끊었고 자연스레 살이 붙었는데 그게 어느새 65Kg이다. 누군가 담배를 피웠던 사람은 담배를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거라고 했는데 그말이 맞지 싶다. 몇 년 동안은 습관처럼 담배를 태웠고 지금은 습관처럼 초콜릿을 먹는다. 가끔 담배를 계속 태우게 되는 날이 있듯이 어제는 계속 초콜릿을 먹었다. 그렇게 어제 먹어치운 초콜릿이 총 200g은 되는 것 같다. 담배값보다 초콜릿값이 더 많이 나간다.
며칠 전 거금 만원을 주고 머리를 잘랐다. 미용실 누나가 신경써서 이쁘게 잘라주었고 어떻게 손질해야하는지 다 일러주었는데 정작 나는 모자만 푹 눌러쓰고 다닌다. 머리 자르기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저 내가 머리를 잘라야겠다고 결심했던 건 아침에 우연히 거울을 봤는데 도무지 머리 꼬라지를 못 봐주겠어서였다. 친구 녀석 중에 하나가 그런 나를 한심스럽게 쳐다보길래 나는 말했다. “모자가 편해 얼굴 가리기도 좋고”
한국은 참 거울이 많은 나라다. 엘리베이터에도 거울이 있고 화장실 칸 안에도 거울이 있고 식당에도 거울이 있고 편의점에도 거울이 있고 방에도 거울이 있고 건물 곳곳에 거울들이 있다. 근데 정작 나는 그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다. 오랜만에 거울을 본다. 수염이 까칠하다. 요즘 나의 행색은 참 한심하다. 옷은 맨날 그 옷이 그 옷이고 얼굴에 스킨하고 로션 마지막으로 발라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고 신발엔 때가 꼬질꼬질하다. 한가지 다행인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흐른다는 것이다.
사실 난 이말이 하고 싶었다. 나는 담배도 끊었고 살도 쪘고 수염도 길었고 얼마전엔 손까지 다쳤는데.. 언제까지 모른체할꺼냐고...
따아식.. 어제 생깐 거 미안하고, 곧 술 한잔 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