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속 ‘동성애’ 봇물 우리사회 ‘코드’ 변했나
[문화일보 2006-02-03 14:47]
(::‘왕의 남자’ 흥행은 ‘꽃미남에 대한 열광’::) 관객 800만명을 넘기면서 흥행기록을 세우 고 있는 영화 ‘왕의 남자’에 이어 이른바 ‘동성애 코드’를 담고 있는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되고 있다. 이들 영화는 대부분 동성애를 성적 정체성의 문제보다는 ‘타자에 대한 사랑의 한 형 태’로 풀어내고 있다. 대상이 남성이건, 혹은 여성이건 관계없 이 ‘사랑의 또다른 형태’로 동성애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관 객들은 팬터지의 공간인 스크린에서만큼은 동성애에 대해 더 없 이 너그럽다. 특히 ‘욕망’이 거세된 동성애적인 표현에 대해서 는 우호감마저 보이고 있다. 과연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우리 사 회의 감수성이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왕의 남자’는 동성애 영화인가 영화 ‘왕의 남자’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영화에 등장한 공 길 역의 배우 이준기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 자면 관객들이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 자연스럽지 못하 다. 이준기의 인기는 동성애의 코드보다는 동성애자로서의 욕망 은 생략된 ‘예쁜 남자’로 다가갔던 탓에 가능한 것이었다. 지 난해 개봉됐던 영화 ‘내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민규동 감독) 에서 천호진과 남자가정부 김태현이란 동성애 커플이 화면에 등 장했을 때 객석에서는 당혹스러운 웃음이 터져나왔다.
진지하게 그려낸 남자와 남자의 애정관계에 관객들은 ‘닭살’이 돋는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 그런 관객들이 ‘왕의 남자’의 공 길에게 환호를 보내는 것은, 트랜스젠더를 쉽사리 용인하지 못하 면서 ‘예쁜 용모’의 하리수는 인정해줬던 사례와 여러모로 닮 아 있다. 게다가 사극이라는 비현실적인 보호막을 쳐놓고 있어 영화 속의 동성애는 이성애자들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질 않는 다는 점도 ‘왕의 남자’의 동성애 코드를 쉽게 받아들이는 장치 로 작용한다.
그러나 동성애를 다루는 한국영화에서 공식처럼 답습되던 ‘동성 애=고통스러운 사랑’이란 도식을 벗어나 완성된 사랑의 그림을 보여줬다는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사실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뤘 던 ‘내일로 흐르는 강’(1995년작)이나 ‘로드무비’(2002년작) 등의 경우는 동성애를 ‘일탈’로 그렸고, 그 귀결점은 예외없 이 ‘고통’이었다.
#‘소통’에 대한 통찰을 다룬 동성애 영화들 외화에서는 이제 동성애는 더이상 새롭거나 충격적인 소재가 아 니다. 사랑의 한 형태이기도 하고, 가족의 한 형태이기도 한 동 성애는 인간 사이의 관계와 소통을 모색하는 ‘미답의 지역’인 것이다. 영화는 이 미답의 지역에서 인간 사이의 소통과 관계를 통찰한다.
오는 24일 개봉을 앞둔 ‘브로크 백 마운틴’(리안 감독)은 1963 년 여름 목장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두 카우보이가 각자 고향으 로 돌아가 가정을 꾸렸지만, 서로를 잊지 못하고 다시 만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람 사이의 그리움을 간절하게 그려낸 이 영 화는 2005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비롯해 미국 LA비 평가협회 최우수 작품상·감독상을 받았으며, 뉴욕비평가협회 최 우수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과 골든글로브상 등을 석권했다.
상영중인 일본영화 ‘메종 드 히미코’(이누도 잇신 감독)도 동 성애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아버지가 동성애자인 딸이 아버지의 동성애 대상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게 대략의 줄거 리. 이 영화는 서로 전혀 어울릴 것같지 않은 여자와 남자를 등 장시켜 인간의 ‘소통’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영화 속 에등장하는 ‘욕망을 걷어낸’ 황혼기의 동성애자는 서정적인 인간 으로 그려져 이성애자인 관객들도 ‘따뜻한 감동’을 느낄 수 있 게 해준다.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타임 투 리브’(9일 개봉)는 젊고 유능 한 패션 사진작가가 말기암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를 거부한 채 죽음을 맞이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동성애자인 사진 작가는 주변의 가족, 애인과 이별하기 시작한다. 아이를 남길 수 없는 동성애자인 주인공은 죽음이란 ‘완벽한 소멸’ 앞에서 괴 로워 한다. 결국 주인공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 부부의 요청을 받고, 남편의 동의 아래 부인과 동침한다. 그리곤 자신의 재산을 앞으로 태어날 아이에게 남기고 쓸쓸히 최후를 맞이한다. 동성 애자로서의 욕망이 다뤄지긴 하지만, 인생을 마무리하는 비장감 과 쓸쓸함이 관객들의 거부감을 비켜간다.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