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기다린다. 30초간의 침묵, 깊고 조용한 응시, 으르렁거리는 듯 사방 공기를 전율시키는 그 낮고 그윽한 한숨. 마침내 그가 입을 연다.
"당신은 나이가 너무 많아요."
이따금 이십 대 중초반의 젊은 친구들을 만날 때, 되도록이면 그런 말의 거절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말을 조심스레 전하곤 한다. 내가 막상 서른 다섯을 넘고 보니 딱 내 나이쯤 되던 사람들이 이십 대의 나에게 수줍고 떨리는 프로포즈를 했을 때 핏줄 속을 타고 도는 혈기의 끝간 데 모를 것만 같은 그 왕성함만 믿은 채,
"형은요, 나이가 너무 많아요."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뱉은 그 말 한 마디, 그 한 마디에 무참히 구겨졌을, 새처럼 떨렸을 마지막 희망의 한줌, 진창 같은 그 삶의 깊은 한숨이 마치 이제는 내 것처럼 느껴져, 뼈 마디마디에 박히는 날카로운 비명의 기억으로 되살아나기에 더 이상 그리 하지 말아야겠거니 생각하지만 아뿔사, 이제는 어느덧 그렇게 나이가 들어 그저 젊은 친구들에게, 눈이 아프게 푸른빛이 도는 그들 귓속에 씨알도 박히지 않을 그런 충고를 헛헛히 입술에 머금을 뿐, 아, 세월이 안긴 그 역설의 잔인한 미소. 미상불 어디 나이뿐이겠는가. 얼굴이며, 손이며, 걸음걸이 버릇이며, 돈이며, 목소리며, 직업이며, 또 그 모든 것이며.
사실 타인의 구애에 대한 모든 거절은 바로 이런 역설의 잔인한 미소를 배태하고 있지 않을까?
당신의 빠른 거절에 빠르게 등을 돌릴 수 있어 그저 고마울 뿐이에요, 하고 간이 정거장 나무 벤치를 부유하는 가볍디 가벼운 그 먼지 같은 겉사랑에 중독될수록 우리는 이미 내 옆에, 내 등에, 바로 내 눈꺼풀 위에 성큼 다가선 그 잔인한 미소를 띤 삶의 역설을 보지 못할 뿐이다.
허나 그러함에도 절개된 뇌의 마디마디를 백발처럼 흩날리며 모든 기억을 잊은 채 오늘 거절을 당하고, 또 거절을 하는, 그 예고된 반복의 행각. 차라리 내 눈을 덮어버리는 게 낫겠다.
Nathalie Manser | Les An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