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현직 판사가 “동성 사이 생활공동체에 이성간의 결혼과 유사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제주지법 정재오 판사(36·사법연수원 25기)는 최근 발표한 ‘동성 사이의 생활공동체-독일의 개정 생활동반체법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우리나라는 동성 사이의 생활공동체를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법률이 제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동성 사이의 각종 법적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관련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 판사는 지난해 7월 인천지법에서 사실혼 관계에 있던 두 여성에 대한 민사소송 선고를 예로 들었다. 여성 ㄱ씨는 함께 살던 여성 ㄴ씨를 상대로 “ㄴ씨와 동거하면서 ㄴ씨 명의로 공동 재산을 축적했는데 ㄴ씨의 폭행과 협박으로 사실혼 관계가 파탄났다”며 ‘사실혼 관계 해소로 인한 재산분할 및 위자료’ 청구소송을 냈다.
그러나 재판부는 “혼인은 남녀의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의미한다”며 “동성간 사실혼 관계는 사회관념상이나 가족질서 면에서 용인될 수 없다”며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이 판결에 대하여 당시 민주노동당은 “다양한 가족관계를 인정하자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고착시키는,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의식에서 비롯된 판결”이라며 “재판부는 진보적 잣대로 건강한 ‘가족’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변화를 모색하여야 할 것”이라고 평했다.
민주노동당의 비판을 ‘화두’로 꺼낸 정 판사는 이에 대해 “동성 간의 공동체에 관한 법률이 없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법원이 동성 생활공동체의 법적 분쟁에 대하여 혼인법을 유추하여 적용하고자 한다면 이는 국회의 입법사항을 사법부가 결정하는 것으로서 삼권분립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판사는 독일의 ‘생활동반체법’을 우리 입법부가 참고할 사례로 들었다. 독일은 2001년 8월 ‘동성간의 공동체에 대한 차별의 철폐에 관한 법률(개정 생활동반체법)’을 발효시켰다. 이 법에 따르면 동성 커플간 생활공동체 성립 약속은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어 이 약속에 대해서 민법상 약혼에 관한 규정이 준용된다. 따라서 인천지법에서 판결받은 두 여성의 경우처럼 사실혼의 파경으로 인한 동성간 재산분쟁에서 손해배상청구권 등 일반적인 법적 권리가 인정되는 것이다. 정 판사는 “5년 넘는 논란 끝에 독일에서 생활동반체법은 가족법과 광범위한 범위에서 유사하거나 동일한 새로운 가족법 제도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정 판사는 “동성간의 생활 공동체에 대한 법적 기초를 제공하는 입법이 이뤄진다면 동성애적인 사람들이 인격권을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도록 돕고 성적 취향에 의해 사회로부터 받는 각종 차별을 철폐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겨레> 사회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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