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겸/ 독립영화 감독
추적추적 내리던 비와 함께한 2003년 4월26일. 장국영의 죽음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닥쳤던 19살 동성애자 육우당의 자살 소식을 듣고 당시 (제도)학교중심주의, 나이주의, 동성애혐오증 등에 시달리며 간신히 버텨오던 내 안이 단번에 무너지는 듯했다. 동시에 청소년 퀴어로서 우리가 다르게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기 위한 프로젝트 그룹 ‘앵그리인치’를 결성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탈학교생이자, 레즈비언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으로 정의될 수 없던 청소년 퀴어 나비와 함께 시작한 앵그리인치는 숨이 턱턱 막히는 남한 사회에서의 퀴어가 아닌 아시아의 다양한 퀴어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피해자 정체성’의 외피를 벗다
우리는 글로벌 지원사업 프로젝트에서 지원을 받아 일본의 퀴어 그룹들과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도쿄의 게이 거리인 신주쿠 니초메를 방문해 청소년 동성애자를 만나려 애를 썼지만 남한의 이태원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게이 크루징(Crusing)의 공간인 니초메의 풍경은 실망스럽고 우울했다. 하지만 일본의 레즈비언·바이섹슈얼 센터 ‘라우드’나 ‘킨스위민’을 방문했을 때는 새로운 기운을 얻는 듯했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가 질문했을 때 “레즈비언이야!”라고 대답했다는 이와 레즈비언이 되면서 우울증에서 벗어났다는 사람들을 만났다. 피해자 정체성으로 자기방어적으로 행동하는 한국의 게이·레즈비언들과는 달리, 자신의 정체성에 기반해 영화나 퍼포먼스 등을 만들어내는 일본 레즈비언들의 문화적인 생산력이 놀라웠다. 일본 여행으로 우리는 피해자와 억압의 레토릭으로 둘러싼 수동적이고 비창조적인 정체성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퀴어 감수성으로 문화를 생산해내는 힘을 발견할 수 있었다.
△ 동성애자인 김겸 감독이 영상을 통해 자신의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성찰한 <나와 인형놀이>. |
우리는 한국에 돌아와 여행에서 얻은 느낌에 바탕해 <나와 인형놀이>라는 사적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이 영화는 남성인 내가 어린시절 가지고 놀던 인형놀이와 제도화된 학교에서 청소년 시기를 보내며 겪었던 이분화된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성찰한 영상이었다. 이듬해 우리는 일본여행 프로젝트가 좋은 평가를 받아 영국의 ‘퀴어 유스 얼라이언스’(QYA·Queer Youth Alliance)를 만날 수 있었다. 일본에서 성인들이 만든 퀴어 문화에서 힘을 얻었다면 QYA에선 우리와 같은 자생적인 청소년 퀴어 그룹과의 접촉이라는 점에 초점을 두었다. 우리는 영국 전역에서 온 청소년 퀴어들과 함께 또래 활동가 교육(Peer Trainer)에 참가해 청소년 퀴어로서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기존 성인 중심의 성소수자(LGBT) 단체는 청소년 동성애자 이슈를 끌고 가더라도 청소년의 의견은 소극적으로 반영해왔고 실상 청소년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조직을 꾸리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같은 어려움을 겪어온 우리에게도 공감되는 말이었다.
새로운 세대의 ‘앵그리인치’를 기대하며
영화 <헤드윅>에서 앵그리인치가 성전환 수술의 실패로 잘려나간 페니스의 외상으로서 남성과 여성, 이성애와 동성애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분노의 상징이었던 것처럼, 앵그리인치는 청소년 퀴어로서 어정쩡하게 세상에 존재하는 우리의 탈출구와 성장의 역할을 해주었다. 앵그리인치를 통해 우리는 힘겨웠던 피해자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나비는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난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가부장제와 이성애주의의 유령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거대한 욕망의 네트워크 속에 빠져든 청소년 퀴어 스스로가 (사회적 커밍아웃이 아니더라도)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자기 세대의 문화를 생산하는 새로운 세대의 앵그리인치‘들’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들만이 기존의 담론들을 뒤엎는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