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법정전염병 병력자 정보제공계획을 즉각 철회하라!
지난 10월 11일 보건복지부는 결핵 등 법정 전염병 환자의 채혈 관리를 위해 11월부터
법정 전염병 병력자 정보제공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국정감사에서 수혈을 통한
HIV 감염이 밝혀진 후 혈액안전관리를 위한 대책이라며 부랴부랴 발표한 법정전염병
병력자 정보제공방안은 질병관리본부가 보유하고 있는 법정전염병 병력자 명부를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제공하여 적십자사의 혈액정보관리시스템에 전산입력하겠다는
것이다.
수혈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의무다. 그러나
법정전염병 병력자 정보제공을 통해 수혈감염을 방지하겠다는 것은 실효성있는 대책이
아니다. 이번에 밝혀진 수혈감염은 항체미형성기의 혈액으로 인한 것이며 법정전염병
병력자 정보로도 방지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법정전염병 병력자들의 혈액은 현재의
혈액검사시스템을 통해 감염여부가 판정되므로 굳이 정보가 사전에 제공될 필요가 없다.
이번 대책은 전염병 병력자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대책이며 혈액안전관리의
부실함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전염병 병력자들이 마치 고의적인
전염자들인 것처럼 편견을 조장하는 비열한 대책일 뿐이다.
전염병 병력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불합리한 차별과 편견으로 인한 사회적 고립을
경험해왔다. 부당하게 격리되었던 한센병환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까지는 수십년의
시간이 필요했으며 HIV 감염인들은 감염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직장에서의 해고와
가족들로부터의 외면에 시달려야 했다. HBV 감염인들은 오해와 편견이 조금씩 해소되고
있는 지금까지도 고용에서의 차별에 부딪치고 있다. 전염병 병력자에게 자신의 병력
정보는 이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무엇보다도 소중히 지켜져야 할
인권이다.
전염병 병력자들의 신상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전염병 예방효과가 높아지지도
않으며 전염병 병력자의 치료와 인권보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가지고 있는 정보를 통째로 샅샅이
대한적십자사로 넘기겠다는 것은 질병관리본부가 감염인 인권에 대해서 최소한의 고민도
없음을 증명할 뿐이다. 질병관리본부가 넘기겠다는 정보에 대한 권리는 누구보다도 먼저
병력자 자신에게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공중보건의 필요에 의해 그 정보의 일부를
관리해야 하더라도 그것의 사용은 전염병 병력자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을 수 있도록
최소한으로 축소되어야 하며 정보의 양도 최소한으로 한정되어야 한다.
수혈감염의 발생은 대한적십자사의 혈액관리시스템이 부실한 탓이다. 혈액의 감염여부를
판정하기 위한 검사가 전문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감염여부가 밝혀졌을 때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전혀 갖추지 못한 실정이다. 수혈감염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현행
혈액관리시스템의 근본적인 개선을 통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혈액안전관리시스템의
구축이다. 수혈감염을 방지하기 위한 실질적 효과도 없는 모든 병력정보를 매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정보를 전산화해 전국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헌혈 문진 때마다 확인하도록
하겠다는 것은 전염병 병력자들을 차별과 편견이 난무하는 사회로 내동댕이치는 것일
따름이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병력자 정보제공방안을 즉각 철회하고 감염인 인권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에 더욱더 매진해야 할 것임을 단호히 밝힌다.
2005년 11월8일
HIV/AIDS 인권모임 나누리+(동성애자인권연대/평등사회를위한
민중의료연합/한국남성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친구사이/행동하는 의사회)/
HIV감염인과에이즈환자를위한모임 세울터/ HIV감염인을위한모임 러브포원/
한국HIV/AIDS감염인연대KANOS/ 한국감염인협회 KAPF/ 거창평화인권예술제위원회/
건강세상네트워크/ 구속노동자후원회/ 다산인권센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새사회연대/
원불교인권위원회/ 인권운동사랑방/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평화인권연대/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이상 26개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