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부산 경성대학교 소강당에서는 제3회 부산무지개영화제 ‘여성+이반’이 막을 내렸다. 1회와 2회에서 레즈비언ㆍ게이 영화제로 자리 잡은 부산무지개영화제가 올해부터 레즈비언 영화제로 초점을 두어 진행됐고 국내 단편 8편, 외국 장편 5편, 외국 단편 6편이 이틀에 걸쳐 상영됐다.
필자는 1회부터 지금까지 부산무지개영화제를 주최해오고 있다. 소속 단체인 부산여성성적소수자인권센터는 2003년 발족했을 당시, 동성애자의 인권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사업을 고민하다가 영화제를 생각해냈다. 영화 매체만큼 대중성을 확보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삶을 편견 없이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1회 영화제는 아주 작은 규모였다. 영화제는 홍보물 제작부터 작품 섭외, 상영장 대여까지 예산이 많이 필요한데, 지역의 작은 레즈비언 단체로서 충분한 예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1회 영화제는 거의 부산 지역 레즈비언들만이 관객인 영화제였다.
규모가 조금 커진 2004년 2회 영화제는 언론 홍보를 시작해 레즈비언들뿐 아니라 부산시민들로 관객층이 확장됐다. 지역 레즈비언들뿐 아니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동성애 영화가 궁금한 사람 등 다양한 이들이 영화제에 다녀갔고, 일반 관객들은 대부분 “새로운 경험이었다”, “동성애자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게 됐다”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긍정적 반응들이 지역에서 특별한 자원도 없이 영화제를 계속 주최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무지개 메신저’의 다리 놓기
2회 영화제는 국가인권위원회 후원으로 개최했으나, 3회 부산무지개영화제는 외부 지원을 받지 못했다. 돈 없이 어떻게 영화제를 치를까 우려했으나 부산무지개영화제를 사랑하는 관객들을 믿기로 했다. 관객 후원금과 관람료만으로 영화제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부산무지개영화제에 애정을 쏟으며 영화제를 지속해나갈 자원 활동가들의 모임인 ‘무지개 메신저’를 꾸렸다.
그래서 올해 영화제는 특별했다. 각종 홍보물은 부산 지역 문화 잡지 ‘보일라’에서 제작ㆍ지원했고, 8편의 자막 제작은 엘워드 까페 자막팀에서 번역과 싱크 작업을 맡아주었다. 홈페이지는 여성이반 문화웹진 ‘엘진’의 운영자인 윤혜성 씨가 제작했고, 부산 지역 여성이반 바(bar)에서 후원을 했으며, 부산독립영화협회에서 상영 장비를 대여해주고 영상 작업에 도움을 주었다. 5백여 명의 관객을 유치한 영화제를 단 1백만 원 안팎의 비용으로 구성할 수 있던 것은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
이제 지역 커뮤니티에서 제법 인지도가 높아지고, 일반 관객들 중에서도 이 영화제를 기다리는 이들이 생겨났다. 예년보다 더욱 풍성해진 상영작과 모양새를 갖춘 홈페이지 덕에 올해 영화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상영 사고가 몇 번 있었으나, 지역에서 레즈비언 영화제를 만나는 소중한 시간은 무사히 지나갔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과제는 첩첩산중이다. 상영 사고를 빚은 기술 부족과 장비 부족 문제는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고 예산 을 조성하는 일도 새로운 길을 뚫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던 길을 어찌어찌 와 보니 새로운 희망들을 만난다. 부산독립영화협회를 비롯해 영화제 기술 지원을 해주겠다는 분들의 제안도 있었고, 무엇보다 올해 영화제를 빛나게 한 ‘무지개 메신저’들의 열정이 있지 않은가. ‘무지개 메신저’들은 레즈비언 영화가 더욱 많은 레즈비언들과 일반관객들과 만나게 하도록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나갈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낼 영화제는 분명히 관객들의 발길을 더 많이 잡아 끌 것이다.
레즈비언의 삶과 꿈, 고통을 다룬 영화를 보며 같은 장면에서 울고 웃는 소중한 시간은 부산지역에서 매년 펼쳐지게 될 것이다. 서로 나누고자 하는 꿈과 희망이 있기에.
Copyrights ⓒ www.ildaro.com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