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보호법 상의 ‘동성애’ 조항 삭제는 단지 시작일 뿐이다.
2004년 4월30일부터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상의 ‘동성애’ 조항이 삭제된다. 2000년 8월 엑스존 사이트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부터 청소년유해매체로 고시처분 된 후로 4년만의 성과이다. 이는 엑스존의 법정공방을 비롯하여 동성애자들의 헌신적인 투쟁과 문제제기, 인권․시민단체들의 적극적인 연대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시행령 상의 동성애 조항은 동성애자들을 ‘변태성행위’를 즐기며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집단으로 규정한 것이었다. 따라서 모든 동성애자들은 음란, 불온, 퇴폐라는 단어를 늘 꼬리표처럼 달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는 작은 승리를 거두었다. 법조항 하나가 삭제된다고 해서 모든 차별과 편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의 도전이 숨쉬기조차 버거운 현실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한국기독총연합회 등 이 사회 보수주의자들의 말도 안 되는 억지와 반박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들의 성정체성은 지극히 자연스럽다’라는 우리들의 상식적인 요구가 승리한 소중한 성과이다.
희망을 싹 띄우다! (골방에서 거리로)
지난 2000년 8월 엑스존 사이트가 청소년보호법 상의 동성애 조항으로 인해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부터 청소년유해매체 고시처분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제도적 차별에 저항하는 우리들의 행동은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엑스존의 청소년유해매체물 고시처분결정을 계기로 2001년 친목사이트 운영자들까지 함께하는 동성애자차별반대공동행동을 구성하였고, 이후 우리들의 행동도 180℃ 변화했다. 차별조항과의 길고 긴 투쟁의 첫 발을 디딘 것이다.
2001년 7월 동성애자들의 독자적인 ‘사이트 공동파업’이 이루어졌다. 그 해 8월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앞에서의 항의집회 및 엑스존의 법정공방 등 동성애자들이 직접 사회를 향해 저항의 목소리를 내질렀다. 이를 통하여 동성애자 인권을 지지하는 수많은 인권, 시민단체들의 적극적인 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2003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삭제권고결정을 이끌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삭제입장을 촉구하고, 대사회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동성애자들의 투쟁과 단체들의 연대는 계속되었다. 차별조항에 반대하는 1200명의 서명과, 3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제출한 탄원서는 자유로운 세상을 향한 동성애자들의 요구에 커다란 힘을 실어주었고, 이는 명동 한복판에서의 집회 등을 통하여, 당당한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는 자신감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인터넷국가검열을 반대하는 공동대책위원회, 인권운동사랑방, 보건의료단체연합,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 등 일부단체는 특히나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하였다.
이제부터다!
청소년보호법 상의 동성애 조항이 삭제된 것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투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직 우리가 넘어야 할 벽들은 너무나 많다. 다음(Daum)포털사이트에서는 ‘이반’이라는 단어를 금칙어로 정해놓고 있으며 차단소프트웨어프로그램에서도 ‘동성애’ 부분이 제외되지 않고 있다. 또한 청소년보호위원회도 동성애사이트 100% 오픈에 찬성하지 않고 있으며, 한국기독총연합회 등의 보수주의자들은 ‘청소년보호’라는 칼을 들어 또다시 동성애자를 겨냥할지 모른다. 청소년보호법이라는 굴레 속에서 동성애사이트는 언제든 ‘음란성’ 시비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들의 대중적인 저항과 연대로 이 사회의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도덕과 윤리, 미풍양속 등을 깨뜨릴 수 있음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였다. 청소년보호법 상의 동성애 조항 삭제라는 작은 승리에 만족하는 것이 아닌 더 큰 산을 뛰어넘기 위한 준비라고 하자. 투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2004년 4월23일
동성애자인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