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화씨의 고백이 사람들을 아프게 했다.
그동안 그녀는 매맞으며 살아 왔다고 한다.
이제야 그 걸 밝히면서 이혼을 준비 중인 그녀를 대하며
나는 슬퍼졌다.
어제 신촌으로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그녀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열심이었다.
그 속이 어떨지는 안봐도 비디오지만
그녀는 그녀의 일에 충실하고 있었다.
왜 매맞고 사는지 이해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게다.
그녀 정도의 경제적 능력을 갖춘 사람이
왜 배우자에게 매를 맞고도 같이 사는지를 이해 못하는...
나도 지난 5년간 살을 맞대고 살던 배우자에게 가끔씩 맞으면서 살았다.
5년이나.
지금은 헤어진지 1년이 넘었기 때문에 그 상처(마음의)가 조금 가시었지만
문득 문득 아프게 살아 오기도 한다.
내가 매를 맞으면서 5년이나 그와 살았던 건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무능해서도 아니고
바보여서도 아니다.
물론 내 주위의 친구들은 내게 헤어질 것을 충고했지만
그리고 결국 그들의 바램대로 이제 그와 헤어져 잘 살고 있지만
나는 지난 기간 그의 곁에서 가끔씩 매를 맞으며 살았었다.
난 자라면서 주먹질하는 싸움을 해 본 적이 없다.
사내 애들은 어릴 적 대부분 주먹질이 오가는 싸움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싸워 본 적이 없다.
고작해야 말싸움 정도였고
그것도 몇번되지 않는다.
싸움을 싫어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는 잦은 싸움을 했는데,
(그점은 나도 이해 안가는 부분이다,
다른 사람과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일도 왜 사랑하는 사람과는 엄청난 일이 되는 건지)
나의 배우자였던 그는 가끔 내게 폭력을 행사하곤 했다.
처음 내게 그가 폭력을 행사한 것은 함께 살기 시작한지 6개월쯤 되었을 때이다.
그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그리곤 바로 사과했고 나를 안고는 눈물을 흘렸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는 다짐과 함께.
그렇지만 그 다짐은 허튼 맹세가 되었다.
폭력의 강도도 점점 세지고 주기도 짧아졌다.
옆집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있었고,
가까이에 사는 그녀의 여동생이 다녀간 일도 부지기수였다.
물론 그는 내게 무릎꿇고 사과하는 등 최대한 성의를 보이는 방법으로 화해를 시도했다.
'이러다가 죽을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즈음에서야 나는 그와 이별하게 되었다.
그게 5년이었다.
내가 그와 헤어지지 않은 것은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며
처음 결혼(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결혼은 아니었지만) 할때 그와 그리고 나 자신과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이혼하지 못하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이유를 안고 있을 게다.
게다가 이성애 부부에게는 자식이라는 책임져야할 또다른 것도 있으니...
'사랑은 배우자의 단점도 감싸안아줘야 하는 것.'
'평생 이사람만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가출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받으면서
난 5년의 시간을 그와 함께 보냈다.
애정이 바닥을 드러내놓고 나서야
난 그를 떠날 수 있었다.
다시 그런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린다면?
자신 없다.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싶은 마음밖에...
다시 그런 환경에 놓이지 않게 하려는 마음밖에...
폭력을 쓰는 사람들은 평상시에 애정 표현을 잘 하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랬는데
그는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날리면서 키스와 같은 스킨십을 잘하는 타입이었다.
좋은 곳에 가면 꼭 내게 전화하고
좋은 것을 보면 내게 사다주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쉽게 헤어지기 어려웠던 것도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변명을 해봐도
지난 시간 내가 바보같아 보이지만
아직도 난 자신이 없다.
그렇지만 다행인 건 난 밝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밝게 살 자신이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