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존재부터 인정부터 해달라” 말조차 꺼리는대선판 ‘쓴웃음’
김소연 기자
» 법무부가 차별금지 대상에서 성적 지향과 학력, 출신 국가, 가족 형태 등 7개 항목을 뺀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하자, 인권·시민단체들이 지난달 8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전면 거부 뜻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아웃사이더에게 대선을 묻다 ③ 성소수자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평소 그늘에 가려져 있는 동성애자, 성전환자 등 성소수자들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도 존재감을 느끼기 힘들다. 경제, 교육, 복지, 통일 등 온갖 부문의 공약이 백가쟁명식으로 쏟아지지만, 성소수자들을 위한 얘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존재 자체 부정하거나 이야기조차 안꺼내 ‘외면’
차별금지·건강권 보장 등 10대요구 들고 공동행동 외국선 조직돼 영향력 커
■ 공약도 배려도 없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동성애자 김희은(32·가명)씨는 “텔레비전에서 대선후보 토론회를 봤는데, 성소수자 얘기를 하는 후보는 한명도 못 봤다”며 “선거가 나와 별 상관이 없어 솔직히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이종헌(29) 대표는 “자신들의 삶을 바꿔 줄 후보도 없고 설령 동성애를 옹호하는 후보가 있다고 해도 당선이 힘들 것이라는 소외감이 작용해, 성소수자들 가운데는 선거에 냉소적인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 여론조사 지지율 6위 안의 대선 후보 가운데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만이 △성소수자 차별 금지 △이성애 중심의 교과서 전면 개정 △교사와 군 간부 대상 동성애자 교육 실시 △동성애 부부 인정 등 관련 공약을 제시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조차 “성소수자의 인권 보호는 필요하다”면서도 “공약은 따로 없다”고 밝혔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지난 5월 한 인터뷰에서 “인간은 남녀가 서로 결합해 사는 게 정상이라서 동성애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동성애자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물이불(24·필명)씨는 “이 후보의 태도는 상당히 우려스럽다”며 “정책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겐 가장 먼저 이해와 인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후보별 성소수자 공약 및 차별금지법에 대한 견해
■ 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선거 때마다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가 부각된다. 현재 진행 중인 2008년 미국 대선의 공화당 경선에서도 얼마 전까지 전국 지지율 1위를 달렸던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동성애 지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했고, 이에 경쟁자인 마이클 데일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가 동성애 반대를 내세우면서 경선의 쟁점이 되고 있다.
‘커밍아웃’한 배우 홍석천(36)씨는 “사회적 인식이 성숙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거의 생명은 결국 표가 아니겠냐”며 “외국에서는 연예인이나 사회 지도층 가운데 ‘나는 동성애자야, 성전환자야’라고 커밍아웃하는 그룹이 많아 그들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미국에서는 지난 1968년 이후 성소수자 인권이 흑인·여성 문제와 더불어 중요한 의제로 등장했다”며 “성소수자의 조직력도 영향을 끼치지만, 우리는 일부 인권단체에서만 성소수자 문제를 다뤄 아직 보편적 담론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 큰 이유”라고 말했다.
■ 행동에 나선 성소수자들 =지난 10월 마련된 차별금지법안에서 ‘성적 지향’ 등 7개의 차별항목이 빠진 것을 계기로, 대선을 앞둔 시점에 성소수자들이 공동 행동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성소수자문화인권센터 등 10여개 단체로 구성된 ‘차별금지법 대응 및 성소수자 혐오·차별 저지를 위한 긴급 공동행동’은 그동안 1인 시위, 기자회견, 서명운동, 공청회 등을 진행한 데 이어 오는 16일 서울 대학로에서 거리 홍보를 벌인다. 현재까지 이들의 목소리에 공감하는 대선 후보는 문국현·권영길 후보뿐이다.
공동행동은 “대선에서 소수자 인권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후보를 선택하겠다”며 ‘성소수자 10대 요구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요구안에는 △차별 금지 △성전환자들의 건강권 및 노동권 보장 △군대 안 성소수자 인권문제 해결 △가족을 구성할 권리 보장 등 그동안 이들이 겪었던 사회적 편견과 고통들이 담겼다.
지난 2000년 결혼식을 올린 동성애 부부 김기철(45·가명)·최기영(41·가명)씨는 김씨가 아파서 응급실에 갔는데 최씨가 법적인 보호자로 인정되지 않아 입원 수속도 할 수 없었던 경험이 있다. 이들은 “우리들의 직접적인 문제인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후보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이즈퇴치연맹에서 일하는 동성애자 홍민우(40)씨는 “성소수자들의 문제가 쟁점화되기 위해서라도 선거 기간에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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