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지난달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동성애 문제에 대해 "인간은 남녀가 결합해서 서로 사는 것이 정상"이라고 동성애 비하 발언을 하고도 여전히 지지율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군다나 당시 인터뷰에서 이명박 전 시장이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밖에 없는 거 같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장애인 단체 활동가들은 이 전 시장 선거사무실을 찾아가 사과를 요구하면서 항의 농성을 벌이기도 했지만, 동성애자들은 제대로 항의도 못했다.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 아직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우리사회에서 이들은 부당한 일을 당해도 집단행동 한번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방송사 카메라에 얼굴이 찍혀 '아웃팅'(강제로 커밍아웃하는 것)이라는 당하게 되면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등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어야할지도 모르기 때문. 다행히(?) 이날 간담회에는 방송은 물론 일간지 기자들도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나는 뒤늦게 각성한 붉은 3반"
이처럼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후보가 성소수자들과 간담회를 갖는 일은 어떤 측면에서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이날 노 의원이 간담회에서 한 말처럼 유교가 종교로 남아있는 일본, 사상으로 남아있는 중국 등 이웃나라와 비교해서도 한국은 유교가 지배적인 문화로 남아있어 동성애 문제에 대한 금기가 더 심하다.
노 의원은 이날 간담회 인사말에서 "나는 이반(동성애자들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뒤늦게 각성한 붉은 3반"이라고 고백했다. 그 나이 또래의 진보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성소수자들의 차별 문제에 대해 뒤늦게 관심을 갖고 각성했다는 말이다.
노 의원은 이어 우리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단순히 유교적인 배타적 성인식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는 종교, 사상, 연령, 성별, 성적 지향 등 다양한 '차이에 대한 차별'의 문제와 직결된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우리사회 민주주의의 '질'을 가늠할 수 있는 문제다.
'민주노동당이 진정 진보정당인가'라는 질문은 민노당이 이들 소수자 문제에 얼마만큼 민감한가가 잣대가 돼야 한다고 노 의원은 말했다.
성소수자들의 선호도 1위 후보는 박근혜?
노 의원과 함께 풀어보는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된 퀴즈, 이날 간담회 장소인 카페의 주인인 탤런트 홍석천 씨의 인사말 등 준비된 행사를 마친 뒤 노 의원과 성소수자들은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좀더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진보가 일종의 유행 내지는 당위로 여겨지면서 동성애 문제에 대해 대놓고 반대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은 문제'라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갖고 있는 이들이 많다. 노 의원이 관심을 표명하는 것도 이런 차원에 그치는 것 아닌가?"
최근 성전환자인 하리수 씨가 결혼하면서 아이를 입양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노 의원은 이와 관련해 "폭력을 행사하고 아이를 돌보지 않는 일반적인 부모보다는 아이를 원하고 사랑해 줄 준비가 이미 되어 있는 성전환자,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가족, 혹은 동성애 커플이 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면서 하 씨의 편을 들었었다. 노 의원은 또 결혼, 입양 등 성소수자의 가족구성권이 보장받을 수 있도록 법제화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한 참석자가 이에 대해 문제제기했다. 그는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성소수자들이 가족을 구성하고 살아갈 수 있겠냐"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없애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내가 취업이 될까, 안 될까'를 고민하는 우리 현실에서 '가족구성권'은 우선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
또 다른 대학생 참석자도 "취업 문제 등 경제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성소수자들의 현실"에 대해 얘기했다. 가족들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커밍아웃 여부와 상관없이 이들은 이성애자들에 비해 독립에 대한 욕구가 크고, 또 가족들의 경제적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다.
더욱이 김대중 정부에 이은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통해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이들도 경제 문제를 정치적 선택에 있어 우선적인 잣대로 삼게 되는 경향이 커진 듯 했다. 근본적인 삶의 문제가 어려워질수록 다원성이 보장받기 힘들어지고,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는 가장 먼저 이 문제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인터넷상의 성소수자들의 커뮤니티 중 회원이 가장 많은 '이반시티'에서 올해 초 실시했다는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1위를 차지했다는 것도 바로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에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1위를 차지했었다고 한다.
노 의원과 성소수자들과의 특별한 만찬은 이날 밤 10시가 넘어 끝났다. 노 의원은 이 간담회를 마치고 나서 "성소수자들의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노 의원은 또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되는 청소년기에 이런 문제를 상담할 수 있는 상담교사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고 자신들의 경험에 기반해 정책적 조언을 했다"면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노력을 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