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레즈비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동성결혼이 합법화될 경우 ‘파트너와 결혼을 할 의사가 있다’고 답한 사람이 67.2%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결혼할 의사가 없다’고 답한 사람은 27.8%다.
레즈비언권리연구소는 2006년 10월, 11월 두 달간 레즈비언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2006 국내 레즈비언 인권실태조사” 결과를 밝혔다. 이번 실태조사는 198명의 레즈비언을 대상으로 설문응답 방식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응답자는 연령은 20대가 주를 이루었다.
20대 레즈비언 ‘가족’과 떨어져 사는 비율 높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8%인 96명의 레즈비언이 현재 혈연가족과 함께 살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교제하고 있는 애인이나 또는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는 경우도 있었으며, 혼자 사는 경우도 18.7%에 달했다.
설문 응답자 중에 혈연가족으로부터 독립해서 살고 있는 비율이 절반 가까이 되는 것은,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들 중 20대가 76,8%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았을 때 매우 높은 수치라고 볼 수 있다.
레즈비언권리연구소는 인권실태조사 보고서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30세 이하의 비혼 여성이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조사결과는 경이로운 수준”이라며, “레즈비언들이 혈연가족과 독립하고자 하는 욕구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래에 함께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도, 혈연가족이라고 답변한 사람의 비율은 5.0%에 불과했다. 응답자 중 60.6%가 미래에 동성 애인과 함께 살고 싶다고 답했으며, 애인과 친구 등을 포함한 ‘그룹 홈’을 이루겠다는 응답도 24.7%로 나타났다.
커밍아웃 어려운 상대는 ‘부모’
레즈비언들이 커밍아웃을 하기 어려운 대상으로도 ‘가족’이 꼽힌다. 레즈비언들은 주위 사람들 중 ‘이성애자 친구’에게 가장 많은 커밍아웃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커밍아웃을 한 레즈비언들 중 75.8%가 이성애자 친구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혔다. 반면 직장 동료는 12.1%, 부모는 14.1%, 자매와 형제를 포함한 친인척은 27.8%로 낮은 수치였다.
레즈비언권리연구소 측은 “직장 동료에게는 공적 영역에서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크기 때문에 커밍아웃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부모에게 커밍아웃하기 힘든 것은 불이익 때문이라기보다 ‘효’와 연관”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즉 부모의 뜻에 반하여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효’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가족은 가장 보수적인 집단으로서 자신을 이해해줄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부모에 대해 갖는 각별한 애정으로 인해 부모에게 심적인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문제" 입장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지 못한 채 가족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동시에 독립에 대한 욕구도 큰 레즈비언들에게 합법적 동성결혼은 어떠한 의미일까.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성결혼이 합법화될 때 파트너와 결혼할 의사가 있다는 응답은 67.2%였다. 하지만 27.8%는 동성혼이 합법화된다 할지라도 파트너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결혼할 의사가 없다’고 응답한 사람 중 절반 이상인 50.6%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로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가족, 친구들 및 주위 사람들이 사실을 알게 될까봐 두렵다’가 18.5%, ‘사회적 불이익, 차별, 폭력 등을 당할까봐 두렵다’가 역시 18.5%로 뒤이었다.
레즈비언권리연구소는 “결혼할 의사가 없는 이유로 ‘결혼 제도 자체에 부정적이다’라는 답변이 가장 많은 것은, 레즈비언들이 현재 이성애자들에게 보장된 합법적 결혼과 이를 둘러싼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레즈비언권리연구소 측은 “동성혼의 합법화가 다른 차별을 야기하지 않는지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동성결혼이 제도화되는 것이, 결혼하지 않은 동성애자나 동성애자가 아닌 비혼자들에게 차별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것과, 결혼 제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서로 상반된 의견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는 모두 동성애자들이 겪고 있는 차별이 개선되기 위한 바람이나 의지를 바탕에 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는 레즈비언이 노후에 대해 가장 고민하는 것은 ‘경제적 안정’이라는 점(45.5%), 레즈비언 중 62.6%가 10대 이하의 나이에 처음 동성과 교제했다는 점, 교제 시 가장 힘든 점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것(33.8%),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차별 및 피해를 겪은 이들 중 22.7%는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한 사실 등이 드러났다.
이번 레즈비언 인권실태조사는 2004년과 2005년에 이은 세 번째 실태조사로, 레즈비언권리연구소 홈페이지의 ‘열린 기획’ 코너를 통해(lesbian.or.kr) 보고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