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는 지난 2월 초 학교에 가지 않고 부모로부터 수학과 라틴어 교육을 받던 멜리사란 이름의 15살짜리 소녀가 강제로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일이 있었다. 독일 의무교육법을 위반한 혐의이다. 독일 교육당국은 학교공포증에 대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법원에 신경정신과 수용 영장을 청구했다. 멜리사 가정 외에도 독일에서 홈스쿨링을 하다 적발돼 처벌 받은 사례는 40건이 넘는다.
이 사실이 전해지자 미 복음주의 단체들이 들고 일어섰다. 이들은 멜리사의 부모에게 법률 자문을 제공하는 한편 독일 의회를 상대로 법률 개정 로비에 나섰다. 기독교인들에게 홈스쿨링은 종교적 가치를 교육하기 위해 널리 사용되는 방식이다. 미국의 경우 150만명 이상이 재택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멜리사의 어머니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백통이 넘게 배달되는 지지 서한에 용기를 얻는다고 밝혔다.
미 일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멜리사의 사례가 미국 내 복음주의 단체들이 해외에서 벌이는 ‘문화전쟁’의 상징이라고 17일 보도했다. 이 밖에도 기독교 보수파 지도자 제임스 돕슨 등이 설립한 동맹보호기금(ADF)이란 단체는 영국에서 ‘일요 근무’를 거부하다 해고된 한 남성의 법정 투쟁을 지원하고 있다. ADF는 스웨덴에서 설교 도중 동성애자들을 ‘암적인 존재들’이라고 표현했다가 증오범죄 혐의로 기소된 한 목사를 둘러싸고 대법원과 씨름을 벌이고 있다.
극우 복음주의자인 팻 로버트슨 목사가 이끄는 ‘미국의 법과 정의 센터(ACLJ)’는 체코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저지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ACLJ의 유럽지부인 ECLJ는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줄기세포 연구를 제한하기 위해 로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이 유럽국가들의 법률 개정에 힘을 기울이는 것에 대해 벤자민 불 ADF 수석자문은 “외국일지라도 잘못된 사례를 방치할 경우 부메랑이 되어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서 “이를 방관하면 미국 법률구조가 바뀔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 연방대법원이 2003년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토록 규정한 소도미법에 위헌 판결을 내린 사실을 언급하며, 유럽의 판례가 미국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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