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AP/뉴시스】
미군 내 동성애 불허 원칙을 고수하는 한편 동성애 병사들의 존재를 철저히 비밀에 붙이는 '묻지마 정책'을 도입했던 존 사카시빌리 전 미 합참의장이 최근 군 동성애 허용에 더이상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카시빌리는 1994~1997년 미군 합참의장을 지내는 동안 군 안에서 동성애를 공개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군 도덕성에 상처를 입혀 신병 모집을 어렵게 하고 전투부대의 결속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며 이에 대해 묻거나 언급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는 '함구 정책'을 구사했다.
그는 그러나 최근 동성애 병사들을 직접 만나본 뒤 생각을 바꾸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는 사카시빌리가 "병사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요즘 군대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알 수 있었고 게이나 레즈비언 병사도 동료들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동성애병사에 대해 누구보다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그가 이처럼 전향된 태도를 보임에 따라 군 동성애 금지조항 철폐가 가능해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군 신뢰도.전투력 훼손' VS '현실 무시한 제도적 차별'
군 동성애 허용법안은 이미 의회에 소개된 바 있지만 사안이 워낙 민감하다보니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전면전을 꺼리고 있다. 크게 볼때 민주당은 평등 원칙에 의거해 군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동성애 차별에 반대하는 입장이며 공화당은 군 동성애 허용에 반대하고 있다.
대선 출마를 노리고 있는 존 맥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미 국방부의 군 동성애 금지규정이 '매우 효과적'이라며 지지한 바 있다.
반면 군 동성애 금지 반대파는 군대가 자격이 갖춰진 지원자를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배척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원 군사위원회 소속 마티 미핸 민주당 의원은 사카시빌리의 발언을 환영하고 지난 2005년 발의했던 관련 법안을 올해 다시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핸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당시 공화당의 크리스 셰이즈 의원과 민주당 지지를 천명한 무소속 상원의원 버나드 샌더스 등 모두 122명의 지지를 얻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미핸 의원은 "이 나라에서 인종, 신념, 성에 기반한 차별이 허용되는 공간은 어느 곳에도 없으며 특히 연방 차원의 제도적 차별은 당연히 허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카시빌리는 그러나 현재 이라크 전략 수정이나 이라크전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는 문제가 급선무이기 때문에 군 동성애 허용법안을 지나치게 서둘러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 군 지도부 출신 인사들 "시대가 바뀌었다"
중요한 것은 미군 수뇌부 출신 인사 가운데 동성애에 대한 생각을 바꾼 사람이 사카시빌리 혼자 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 해군제독 출신인 존 휴스턴 2성 퇴역장군은 2일 지난 10여년 동안 미국 문화가 크게 바뀌었으며 동성애 공개 허용이 군 전투력을 약화시키보다 오히려 강화해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휴스턴 장군은 "분명 군 동성애는 결국 허용될 것"이라며 "그러나 아마 조지 부시 대통령 임기 안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 내 동성애 문제는 90년대 초반 미 전역에 걸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켜 1993년 이를 금지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채택됐으며 이후 지금까지 수천명의 병사들이 동성애 문제로 면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미국에서 실시된 군 동성애 허용에 대한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에서는 반대가 37%, 찬성이 26%, 중립 또는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37%였다.
나경수기자 ksna@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