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V/AIDS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 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은 17일 오후 대학로에서 감염인들의 인권 증언 '말할 게 있수다'라는 행사를 열었다. 감염인 3명이 참석해 사회적 편견과 오해에 관한 자신들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병원을 옮겨 다니던 중 친구들이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을 알게 됐고,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검사를 받다보니 병원비는 늘어났고, 결국 친척집에 연락했다. …주치의를 만나고 온 홀어머니와 고모, 사촌 형제들은 (병명을 모른 채) 나를 대하던 때와 분위기가 달라졌다. 처음에 병원비를 내주겠다던 큰아버지댁 식구들은 (감염 사실을 알고는) '한 푼도 내줄 수 없다'면서 돌아가셨다. 그럴 줄 알았다. 이놈의 병은 가족에게조차 도움을 받지 못하는 그런 병이었다."
김아무개(남·33)씨의 목소리는 떨렸다. 마이크를 든 김씨의 손도 발언시간 10분 동안 계속해서 떨렸다.
'HIV/AIDS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 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17일 오후 3시, 서울 대학로 한얼소극장에서 감염인들이 직접 나와 자신의 체험을 증언하는 행사 '말할 게 있수다'를 열었다.
이날 증언에는 김씨를 비롯해 3명의 감염인들이 직접 무대로 나와 가족들의 냉대, 직장에서의 차별 대우 등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이들은 "구직, 치료비 지원 등의 도움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도록 감염인들의 인권을 보장해달라"고 입을 모았다.
편견의 벽은 높고, 치료제 선택 폭은 좁고
김씨는 지난해 진료를 위해 방문한 동네 치과에서 쫓겨난 일을 공개했다. 그는 "의학 지식을 가진 의사들도 일반인들과 생각의 차이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감염 사실을 밝히자 나를 접수처로 데리고 나가더니 '이 병원에서는 치료할 수 없다,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 '다른 환자에게 하는 것처럼 기구들을 소독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감염인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없고, 우리 병원은 일회용 장갑조차 준비되지 않아 치료해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김씨는 지난 1994년 11월 감염 사실을 통보받았다. 현재 감염인들의 쉼터에서 간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아무개(남·30대)씨는 "직장 내에 감염 사실이 알려지자 2주 뒤 있었던 인사이동에서 한직으로 밀려났다"며 "전에 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곳으로, '나가라'는 의미였다"고 직장에서 겪었던 차별을 공개했다.
강씨는 "직장 건강 검진을 받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검진을 받지 않으면 사주가 벌금을 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검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게다가 양성 반응이라는 검사 결과가 회사로 통보돼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감염인들의 의료 접근권에 대해 "세계적으로 총 27종의 치료제가 나왔고, 국내에는 15종이 시판되고 있다"며 "치료를 위해 세 가지 약품을 섞어 쓰는 '칵테일 요법'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세 약품 중 하나라도 내성이 생기거나 부작용이 발생하면 약품을 바꿔야 하는데, 국내에는 약품이 다양하지 않아 약을 쓰는데 한계가 있다"며 "국내 감염인이 4천명이 안 돼 수익성에서 떨어지다 보니 신약을 들여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에이즈 예방법이 편견 더 키워"
2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이 외에도 감염인 2명의 영상 증언이 있었다. 또한 감염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 등을 담은 일반인 인터뷰 영상물도 상영됐다. 영상에 출연한 이들이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만 걸리는 병 아니냐", "동성애는 정신병"이라고 말하자 50여명이 앉아있던 관객석에서는 한숨 소리가 나기도 했다.
한편 공동행동은 7월 4일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이하 예방법)의 문제점에 대응하기 위한 감염인과 인권단체들의 공동연대기구로, "감염인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아닌 인권보호를 위해 바뀌어야 한다"며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987년 제정된 예방법은 지금까지 총 5번 개정됐고,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가 개정안을 만들어 9월 정기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공동행동은 "예방법에 따르면, 에이즈 예방을 위해 감염인은 즉시 신고하고, 주소를 옮길 때에도 별도의 신고 절차를 밟아야 하는 등 일상 생활을 감시받고 있다"며 "예방법이 오히려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더욱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민정기자
* 차돌바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20 1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