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 <다세포소녀>는 원조교제, SM(새도매저키즘)과 함께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다세포소녀> 이외에도 작품성이나 흥행 여부와 관계없이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영화 속 동성애를 바라보는 동성애자들의 시각은 어떨까. 동성애자들의 현실을 잘 담아 여론의 전환점 구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편협한 접근으로 인해 편견과 왜곡을 부추긴다고 생각할까.
세 명의 <오마이뉴스> 인턴기자들은 지난 16일 두 명의 동성애자들과 함께 영화 <다세포소녀>를 관람한 뒤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대중매체에서 보여지는 동성애자들의 모습과 그들의 현실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그 정도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참석자 : 인턴기자 최훈길(성균관대 시스템고분자공학 4), 선대식(경기대 독어독문 3), 이지영(국민대 국사학 3)
성균관대 동성애자 동아리 '성퀴인' 회장 지수(가명·27), 연세대 동성애자 동아리 '컴투게더' 회장 현수(가명·22)
<다세포소녀>, 문제는 던지지만 고민이 없다
선대식 기자 "<다세포소녀> 이재용 감독은 영화를 통해 '소수자를 차별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는데, 이런 감독의 의도가 영화에 잘 드러나 있던가. 다시 말해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동성애'를 더 잘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현수 "글쎄, 그다지 큰 역할은 못할 것 같다. 사람들 인식에 문제를 던지고는 있지만 진지한 고민은 없는 것 같다."
지수 "이재용 감독이 지금까지 제작한 영화는 사회적 편견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 영화는 다수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수자의 억울함이 주로 다뤄져 아쉬움이 있다."
최훈길 기자: "영화를 보면 안소니(박진우)가 '나 어떡해. 그 xx 좋아하나 봐'라고 말하며 인터넷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검색한다. 이 장면은 어떻게 봤나."
지수 "지금은 검색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내 경우, '동성애를 어떻게 고칠까' 고민하지 않았다. 책을 찾아보며 공부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PC통신을 이용하면서 교류를 했다."
현수 "초등학교 6학년 때 동성을 좋아한다는 확신을 갖게된 뒤 동성애를 처음 접한 경로는 시사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꽤 불쾌하게 봤다. 동성애자를 너무 부정적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지수 "시사 프로그램들이 동성애를 많이 다루지만 그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올바른 용어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는 심지어 트랜스젠더를 그냥 '게이'라고 불렀다. 홍석천씨가 커밍아웃을 하고 하리수씨가 나타나면서 그나마 용어가 분리된 것이다. 시사프로그램마저 동성애를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이지영 기자 "<다세포소녀>에서 '왕칼언니'(이원종)는 남성이지만 여고생 교복을 입는 것을 즐기는 캐릭터로 나온다. 그는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김옥빈)에게 여장남자(Cross Dresser)에 대해 설명해준다. 이런 점이 성소수자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돕는다고 생각하나."
현수 "그렇지 않다. 용어 설명이 중요한 게 아니다. 용어 설명을 아무리 잘 해도 대중은 트랜스젠더나 여장남자는 모두 '변태'라고 생각하게 돼 있다. 여지껏 미디어가 그렇게 다뤄왔기 때문이다. 강조하지만 중요한 건 용어 설명을 얼마나 잘 해주느냐가 아니다."
잘생긴 게이, 예쁜 레즈비언... 이성애자와 똑같애
최훈길 "영화에서 '지켜보고 있다'라는 팻말이 교실에 걸려있다. 언제 어디서나 차별의 시선이 성소수자를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수 "제 주변 사람들은 영화에서 외눈박이가 두눈박이에게 말한 것처럼 '남들과 다르게 살지 마라'고 할 것이다. 솔직히 다른 동성애자들과 소통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동성애자로 살기 힘들다. 차별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자신이 당당하면 되는 것 아닌가. 당당하게 산다면 그런 차별의 시선도 두렵지 않게 되리라 믿는다."
최훈길 "<다세포소녀> 원작은 만화인데, 원작과 영화 모두에서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는 장면이 있다면 어떤 장면인가?"
현수 "원작 역시 이성애자 관점에서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그려져 있다. 예를 들면, 외눈박이를 좋아하는 축구부 주장. 이 사람이 동성애자이다. 그런데 이 축구부 주장을 만화·영화 모두에서, 소위 말하는 '변태'처럼 그리고 있다."
지수 "늘 동성애자는 비호감 인물로 설정된다. 축구부 주장도 마찬가지. 누가 봐도 비호감인 인물이다. 비뚤어진 시각이다. 왜 동성애자는 늘 사람들에게 호감을 가질 수 없는 존재로 판단하는지 모르겠다."
선대식 "동성애자들을 희화화 하고 있다는 것인가?"
지수 "그렇다. 왜곡된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매끄럽게 잘 생긴 남자도 게이일 수 있다. 호리호리하고 예쁜 여자들은 레즈비언일 수 없나? 다시 말해 게이·레즈비언들도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인 사람들이다."
현수 "이 영화만 봐도 왕칼언니나 축구부 주장을 지나치게 희화시키고 있지 않나. 왕칼언니는 크로스드레서의 실제 모습을 완전히 왜곡시킨 것이다."
선대식 "'영화 <다세포소녀>에서는 트랜스젠더, 외눈박이, 이성복장 도착증에 이르는 망측한 행태가 펼쳐진다'고 나온 신문기사가 있었다. 이 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현수 "그들이 이성복장을 입는다거나 트랜스젠더로 성전환 수술을 하는 것은 스스로 행복해지려는 것이다. 누구나 행복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 사람들의 그런 모습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가. 아니다. 그것을 가지고 제3자가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다. 그것들을 망측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망측한 일이다."
"영화·드라마, 우리 이야기가 아니다"
선대식 "대중매체에서 동성애자에 대해 왜곡하는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
현수 "게이의 경우 대중매체에서는 여성성을 강조한다. 이런 것도 왜곡이다. 게이에 남성적 게이가 있고 여성적 게이가 있나? 단지 다양한 성격의 개성있는 게이가 있다고 보면 된다. 대중매체를 보면 게이 캐릭터의 여성스런 말투나 행동이 강조된다. 이런 것들이 오해를 부르게 된다."
최훈길 "현실과 영화 사이의 괴리가 생각보다 큰 것 같다. 어느 정도인가?"
현수 "영화나 드라마는 오직 영화나 드라마일뿐이다. 우리 이야기가 아니다. 스크린이나 TV 속에서 동성애자를 보고 공감하면서도 주변에 동성애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만일 주위에 동성애자가 있다면 불쾌하게 생각한다.
나도 친한 형에게 커밍아웃을 한 적이 있는데 엄청 놀라더라. 동성애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활발히 성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지만 정작 일반인들은 주위의 동성애자들과 함께 산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수 "솔직히 현실적으로 가족 문제가 제일 걸린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이란 이성간의 사랑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이성간의 만남만이 옳고 다른 것은 틀린 것으로 본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가족들도 가족 중에 동성애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동성애자들 중에는 가족이 받게 될 충격을 생각해 동성애 사실을 숨기거나 '여자친구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수 "계속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해야하는 게 힘들다. 죄책감도 든다. 하지만 커밍아웃은, 어떻게 될지 뻔히 보이는 힘든 길이니까…."
다를 게 없는 우리들
동성애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말하던 이들도 가족에 대한 질문에서는 모두 쉽게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것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어려운 일이라 추측할 뿐이다.
이들은 <다세포소녀>에서 그려진 동성애자들의 모습을 보고 불쾌해했다. 그리고 대중매체가 그들이 처한 진정한 고민과 그들의 삶을 다뤄주길 바랐다. 우리 사회는 아직 그들이 바라는 차이와 다름을 인정해 줄만큼 성숙되지 못한 듯 했다.
그들이 사는 방식은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 접하는 그들은 우리에게는 함께 어깨동무 걸 수 없는 이질적 존재로만 그린다. 동성애자들은 오늘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데 말이다.
최훈길, 선대식, 이지영 대학생 인턴 기자
* 차돌바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2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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