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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warzwald 2004-04-28 03: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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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황산벌’의 그 장면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전세가 불리해진 신라군은 사기를 올리기 위해 화랑을 혈혈단신으로 백제군 진영에 보낸다.
한 명이 죽어서 돌아오면 또 한 명, 이런 식으로 수많은 화랑들이 죽어간다.

화랑(花郞), 즉 ‘꽃미남’이라는 뜻. ‘황산벌’은 여기서 화랑을 충성스러운 젊은 장수가 아니라, 곱상한 부잣집 아들 정도로 묘사한다. 그리고그 고운 모습을 통해 은근한 암시를 한다. 학계 내에서도 논란이 있긴 하지만 화랑도 내에 동성애가 있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 외모가 출중한 남자들이 모여있는 그 집단에서 그런 일이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재활훈련을 받아가며, 현장에서는 휠체어에 앉아 연출했다는 오시마 나기사의 ‘고하토’는 일본의 무사 집단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애욕의 이야기다. 최고의 무사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신선조. 소년 무사 카노는 무예도 무예지만 웬만한 여자들은 감히 겨루지도 못할 아름다움의 소유자다. 그가 들어가면서부터 신선조는 술렁이기 시작한다. 지위고하와 연령을 막론하고 카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무사들. 신선조 총장마저 카노에겐 뭔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듯하다.

남성들만의 집단을 다룬 영화들이 취하는 태도는 둘 중 하나다. 그 집단의결속을 다지든지 아니면 그 균열을 이야기하든지. 하지만 그 어떤 입장을취하든 그 안엔 동성애적 뉘앙스가 풍기기 마련이다.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출품되는 ‘청풍명월’ 같은 영화도 마찬가지. 엘리트무관 양성소인 청풍명월의 투 톱인 규엽과 지환의 우정을 묘사한 몇몇 장면은 단순한 우정 이상의 그 무엇을 느끼게 한다. 결국 이 영화도 두 사람의 대립을 통해 집단 내 균열을 이야기하는 셈이다.‘고하토’는 영어제목인 ‘taboo’가 보여주듯 ‘금기’에 대한 영화이며그것은 바로 동성애, 그것도 사무라이 집단 내에서의 동성애다. 그것이 금기인 이유는 동성애가 집단을 파괴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파 프롬 헤븐’ 같은 영화도 마찬가지다.이 영화가 말하는 것은 1950년대 상류층 가정의 가부장이 알고 보니 게이였다는 사실이다. ‘아이스 스톰’은 70년대 미국 교외지역에 사는 백인여피 집단 내에서 스와핑이 공공연히 실행되었다는 얘기다. 이처럼 어떤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집단 내의 ‘섹슈얼 스토리’는 언제나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대상이며, 가끔씩 용기 있게(!) 그것을 들춰내는 영화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평생 금기에 도전하며 살아왔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67세의 나이에 ‘고하토’를 통해 일본의 전통적 가치와 직결되는 집단인 사무라이들 사이의동성애를 이야기한다. 이 영화가 그의 유작이 될 수도 있지만, 다음 ‘금기 파괴’는 뭘까? 혹시나 천황에 대한 얘기가 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