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도 똑같은 사랑” 방현희씨 첫 소설 ‘바빌론 특급우편’
[경향신문 2006-06-14 18:09]
‘사람은 다 똑같다. 사랑도 다 똑같다.’
그 뻔한 이야기를 빙빙 돌리고 이리저리 비틀어 해야 할 때가 있다. 사회적 금기와 관련해 그렇다. 고개 뻣뻣이 치켜들고 동성애자도 사람이고 근친상간도 사랑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미학적 안전판을 숨겨둔 문학 속에서도 대부분 작가들은 자기검열 탓에 변죽만 울렸다.
-“소재주의 극복 최초 작가”-
방현희씨(42)의 첫 단편소설집 ‘바빌론 특급우편’(열림원)은 ‘붉은 이마 여자’ ‘연애의 재발견’ ‘녹색원숭이’ ‘13층, 수요일 오후 3시’ 등 수록작 10편 중 4편이 동성애 소재작이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씨는 “동성애를 어떠한 자의식 없이, 무심하게, 그저 사람이 사랑하는 방식으로 그려낸 한국 최초의 작가”라고 평했다. 표제작은 근친상간을 밑그림으로 깔아놓았다.
하지만 ‘최초’라는 어감이 주는 소재주의·생경함·미숙함 등 억지춘향의 흔적이 없다. 성적 소수자의 사랑을 일상적이고 천연덕스러우며 능수능란하게 녹여냈다. 작가가 다룬 동성애는 이성애의 ‘모든 것’과 똑같다. 작가가 시대를 선취했든, 우리 시대가 그런 작가의 출현을 가능케 했든 문제적 작품집이라 할 만하다.
“열기를 가누지 못하고 수소인 그는 필연적으로 맨 처음 맞닥뜨린 암소를 덮쳤을 뿐이었다.” 예를 들어 표제작에서 이 한 줄의 문장을 놓친다면 소설은 전혀 다른 작품이 된다. 그 한 문장을 읽으면서 왜 엄마가 13년간 입을 다물었고, 아들이 늙은 엄마를 업고 다니며 말조심을 하는지 등 ‘사건의 재구성’이 가능해진다. 조금만 집중력을 잃어도 ‘엽기 소설’로 치부될 화두를 다룬 이유는 뭘까.
방씨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어려운 관계를 말하기 위한 전략”이라면서 “가장 밀착된 관계가 사랑이기 때문에 그런 사랑에 집착해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집은 사회적으로 ‘비정상’이라고 치부되는 사람들의 무시되기 일쑤인 진실을 다룬 셈이다.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이상한 사람들’의 사랑이지만 (정상적이라는) 당신들의 사랑과 다를 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사랑한 걸 설마 후회하겠어요?”(‘말해줘, 미란’ 마지막 문장)
그랬더니 사회적 금기를 넘어서는 작품들이 모이게 됐다. 입센의 ‘인형의 집’에서 노라가 가부장제의 집을 가출했다면 방현희 소설은 가족, 낭만적 사랑 등 근대적 이데올로기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 금기의 전면적 부정으로까지 치닫는 형국이다.
등장 인물들은 우리 현실을 잣대로 들이대자면 거의 무중력 공간의 인간들이다. 그들에게 가족은 진즉 해체됐으며, 단 한 사람만을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낭만적 사랑은 허위에 불과하다. 주인공들이 실연 후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서는 것으로 끝난다. 이른바 ‘교환 가능한 사랑’을 내세우는 것이다.
방씨는 사랑에 관한 한 사회생물학 이론에 기대는 듯하다. 그는 “사랑은 자기 욕망”이라고 정의하면서 “관계에서 손해를 보거나 고통을 받는 것도 결국은 자기 결핍을 채우기 위한 대가”라고 했다. 그는 또 “사랑은 둘 사이에 동일하고도 고양된 감정에서 성립한다”면서 “그렇게 밀착된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면서 상대방을 침해 또는 방해하게 마련이어서 결국 고통 받으며 서로를 벗어나려고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상한 사람들’의 진실 다뤄-
방씨는 전북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뒤 1986~94년 경찰병원에 근무했다. ‘동서문학’ 신인상(2001)과 ‘문학·판’ 장편소설상(2002)을 타며 등단했다. 그는 신생아실 근무 때 “단지 그렇게 태어났을 뿐인데 사춘기 이후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할 소위 ‘비정상’ 아기들을 많이 보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작가의 말’에 “내게 비정상인은 정상인이 되고 정상인은 비정상인이 된다. 그러므로 내게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적어놓았다.
〈글 김중식·사진 남호진기자 uy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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