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stler: East of the Wall, (1985), Wieland Speck서독의 펠릭스와 동독의 토마스가 사랑에 빠졌다네요. '남남북녀'가 생각납미다.
제작년도가 85년이니,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기 전이고, 동독으로 서독인들이 여행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던 시기겠네요.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랄 수 있겠어요. 그리고 공공연히 히치콕의 '찢어진 커튼'을 언급하고 있는 이 영화의 시선은 그 가치를 입증해내고 있습니다.
서독의 펠릭스는 미국인과 함께 여행을 하다가 잠깐 동독에 놀러가지요. 한데, 예쁘장한 머슴애가 따라다닙니다. 말을 붙여보죠. 그리고 잠시 식사를 함께 하게 돼요. 하지만 펠릭스는 곧장 서독으로 떠나야 합니다. 전화번호를 적어주려고 하자 토마스는 전화가 없다고 말합니다. 동독 상황을 보여주는 거죠. 어쩔 수 없이 펠릭스는 자신의 전화번호만 적어주고 서독으로 떠납니다.
펠릭스와 자유를 갈구하던 토마스는 호텔 전화를 빌려 간신히 펠릭스에게 전화를 하게 돼요. 그러자 펠릭스가 단숨에 동독으로 날아오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집니다. 펠릭스는 매주 토마스를 보러 동독으로 와요. 그 좁고 가난한 단칸방에서 두 사람은 사랑을 키워갑니다.
하지만 이렇게만 되면 재미가 없죠. 동독 출입국 관리소에서 점점 펠릭스를 의심하게 됩니다. 너무 자주 들락거리니까요. 발가벗겨서 조사를 하는 등 펠릭스의 자존심을 무참히 뭉개고, 펠릭스는 환장할 지경에 이르지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펠릭스에 대한 사랑 때문에 토마스는 '탈출'을 결심합니다. 우선 돈을 벌어 프라하 여행을 갑니다. 그곳에서 토마스와 만나게 되죠.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예요. 동독인들은 프라하를 제외하고 여행이 어려우니까요. 토마스는 프라하에서 비밀 탈출 모임 사람과 조우하게 되었는데, 마침내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잡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길이 아니에요. 일단 헝가리로 빠져 나갔다가, 거기에서부터 혼자 유고슬라비아까지 헤쳐나가야 합니다. 서독까지 가려면 머나먼 길이지요. 마치 북한 사람들이 탈북해서 남한으로 돌아오기 위해 여러 나라를 경유하는 것과 같은 이치. 토마스는 희망적이라고 말하지만, 펠릭스는 그저 불안하기만 합니다. 두 사람은 프라하를 배회하다가 마침내 헤어져야 하는 새벽의 거리를 걷습니다. 그리고 정지 화면.
과연 토마스는 무사히 서독으로 가서 토마스를 만나게 되었을까요? 영화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아요.
이 영화는 아마도 관광 장면을 제외하고, 전부 서독에서 찍었을 거예요. 레닌 동상이 있는 동베를린 거리를 포착하는 카메라 시선이, 마치 남한 사람들이 평양 거리를 찍은 누군가의 관광 동영상을 유심히 보는 듯한 시선과 많이 닮아 있어요. 예전에 독일에 갔을 때 동독 출신의 기자가 저한테 '북한의 게이'에 관해 인터뷰하던 게 퍼뜩 떠오르더군요.
북한은 언제쯤 여행이 가능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