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딘은 스타가 되기 전, 말론 브란도와 몽고메리 클리프트를 존경했죠. 이후, 제임스 딘이 유명해지고 나서 세 사람은 친구가 됩니다. 이 세 사람이 바로 2차 세계 대전 포스트 세대의 대표적인 남성 배우 트로이카.
하지만 제임스 딘은 자동차 사고로 죽음과 함께 '신화'가 되어 버렸고, 말론 브란드는 오래 동안 걸작들을 찍으면서 은막의 신화가 된 반면, 몽고메리 클리프트는 56년 치명적인 자동차 사고가 나면서 인생이 곤두박질치게 됩니다. 얼굴이 완전히 망가졌죠. 그리고 이후 약과 술독에 빠져 점점 나락의 길을 걷다가 66년 심장 마비로 세상을 뜨게 됩니다. 죽기 전 찍은 영화들 속에서 몽고메리는 생기가 전혀 없고, 심지어는 얼굴도 이상했어요.
제임스 딘과 말론 브랜드의 그늘에서 그렇게 조용히 생을 마감한 몽고메리 클리프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좀 박한 편입니다. 심지어는 점점 잊혀지기까지 하니까요.
몽티(몽고메리의 애칭)는 운 좋게도 하워드 혹스의 걸작 '붉은 강'을 통해 1948년 데뷔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과연 빛나는 미모를 발산하고 있죠. 그리고 그 해 또 한 번 운 좋게도 프레드 진네만의 '수색'에 출연하게 되고, 이걸 기화 삼아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합니다.
Red River (1948)
Director: Howard Hawks
'붉은 강'에서 존 웨인의 양아들로 출연하는 몽고메리는 가히 눈이 부실 정도죠. 연약해 보이면서도 아버지의 권력에 맞서 제 갈 길을 가는 어린 카우보이 역을 멋지게 해내게 됩니다. 프레드 진네만의 '수색'과 더불어 이 영화로 몽고메리는 일약 헐리우드의 기린아로 발돋움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 해, 또 한 편의 걸작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바로 히치콕의 '로프'.
동성애자 범죄 커플 이야기를, 동성애자 시나리오 작가한테 의뢰해 각본을 맡긴 이 프로젝트의 주인공으로 히치콕은 가장 먼저 몽고메리를 찾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몽고메리는 거절했죠. 왜 거절했을까요? 세간의 입소문을 빌리자면, 몽고메리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감추고 있었고, '로프'라는 영화를 통해 그 사실과 직면하기가 싫었던 거겠죠. 몽고메리가 이 제안을 거절한 이후, 로프 시나리오는 케리 그란트에게 넘어갑니다. 하지만 케리 그란트도 이 시나리오를 거절하게 되고, 한때 히치콕의 페리소나였던 케리 그란트와 히치콕은 이 사건을 계기로 멀어지게 되죠. 케리 그란트는 몽고메리를 '가장 멋진 양성애자'라고 폭로할 정도로 그와 친한 친구였었고, 그 자신도 양성애자였습니다.
여하간 이토록 화려한 데뷔 시절을 겪은 몽고메리는 후에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만나게 됩니다. 불세출의 걸작으로 남아 있는 '젊은이의 양지'를 통해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헐리우드는 두 사람을 세기의 커플로 호명하게 되지요. 56년 몽고메리가 심각한 자동차 추돌 사건이 났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도 엘리자베스 테일러였지요. 'Raintree County'를 비롯 이후로도 여러 편, 함께 영화에 출연하기도 합니다.
A Place In The Sun (1951)
이후 몽고메리의 활동은 눈이 부십니다. 결국 히치콕의 부름에 응한 '나는 고백한다'에서 신도의 비밀을 지키는 신부의 내면 연기를 썩 잘 해냈을 뿐만 아니라, 프레드 진네만과 다시 의기 투합해서 찍은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는 군대 규율에 굴하지 않는 트럼펫 기수 역을 훌륭히 해내지요.
그러나 이렇게 화려한 연기 생활의 이면 속의 몽고메리는 고독하기 짝이 없었어요. 늘 마약과 술에 쩔어 살았죠.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비롯한 여자 친구들이 늘 그의 주변에 있었지만, 그는 고독했고, 절실했으며, 아무도 모르게 그만의 비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게이 휴양지에 저택을 하나 사서 난잡한 파티와 헌팅에 몰두하고 있었던 거죠. 해변가 청년들을 픽업해서 파티를 열고, 밤마다 크루징을 하고 있던 소문이 돌고 또 돌았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힐 수 없었던 시대의 '벽장 속 게이'의 전형이었던 거지요.
그렇게 자신을 자학하던 몽고메리는 56년 끔찍한 교통 사고를 당하고, 재기에 나서지만 예전의 영광을 찾을 수는 없었지요. 엘리아 카잔의 '와일드 리버', 그리고 존 휴스톤의 컬트 괴작인 '기이한 사람들'에 연달아 출연하지만, 그의 눈빛은 빛을 잃었고, 연기는 생동감이 전혀 없게 돼요. 심지어 '기이한 사람들'에서는 마를린 먼로와 함께 출연하는데, 이상하게 존재감 자체가 없어 보이죠.
그러나 이 와중에 몽고메리는 한 가지 특이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바로 멘키위즈의 '
지난 여름, 갑자기'라는 영화에 갑자기 출연하게 된 것이 그것. 이 영화는 테네시 윌리암스의 희곡을 각색해서 영화화한 작품인데, 그 자신 동성애자였던 테네시 윌리암스의 분열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영화죠. 캐서린 햅번과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불꽃 튀는 연기가 압권인 이 영화에서 몽고메리는 특이하게,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무능력한 관찰자로 등장했던 겁니다. 히치콕의 '로프'를 거절했던 몽고메리는, 이후 마음이 변했던 걸까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억압하는 가족과 시대를 피해 유럽으로 도망갔다가, 해변가에서 미소년을 추근덕거리던 와중에 거의 광기에 가까운 폭력의 희생자로 죽임을 당한 한 동성애자 이미지가 자신의 처지와 닮았다 생각해서, 용기의 결단을 내렸던 걸까요?
(이 영화를 놓고 모 리뷰어는 답답해 죽겠다고 말하던데, 되바라진 시선이 결코 예리한 시선은 아니죠. 테네시 윌리암스와 몽고메리의 처지로 보면, 감히 말할 수 없는 그 감정을 결코 발화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지연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기 때문이죠.)
그랬을 수도 있겠죠. 생기 없는 얼굴로 더듬거리듯 대사를 치는 몽고메리의 모습은 이상하게 존재감이 하나도 없지만, 광포한 소년들 떼에 쫓겨 도망치는 이 영화의 엔딩은 몽고메리가 평생 감추고 은폐하고 있던 비밀의 삶을 결정적으로 압축하고 있는 명장면이지요.
66년 몽고메리는 심장 마비로 죽었습니다. 결코 많지 않은 나이죠. 그 동안 17편의 영화를 찍었고, 영화사에 남을 걸작들 몇 편을 남겼어요. 전 몽고메리의 데뷔작인 하워드 혹스의 '붉은 강'을 참 좋아하는데, 이 영화에서 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신성의 출현'. 그토록 빛나게 반짝이며 등장한 몽고메리는 일약 50년대 최고의 헐리우드 스타로 군림했지만, '지난 여름, 갑자기'의 엔딩처럼 비밀의 삶에 쫓겨 자신을 끊임없이 학대하던 '크로젯 게이'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