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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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말라 2008-09-24 01:45:06
+10 1313
  ### 준수형을 추모하며 ###

 며칠 지났지만... 수목장 후기 올립니다.


 지난 일요일 고 오준수 회원의 10주기 추모제 겸 수목장 이장미사에 다녀왔다.
공교롭게도 조한이 끌고 온 차에 날아가기와 만리녀, 그리고 나 네 명이 동승하게 되었다.  준수형이 한창 활동하던 시절 함께 한 경험이 있고 그와는 제법 친했던 이들이다.

 초행길이고 약도는 엉터리, 게다가 길치들이 한데 모여선지 도무지 수목장 장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과의 전화 통화도 별 소용없었고 우리 때문에 이장은 계속 지연되고 있었다. 초조한 마음만 앞선 채 여전히 길을 헤매고 있는데 누군가가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준수형은 살아서 그렇게 사람들 맘고생 시키더니 죽어서도 그런다.”
무언의 동의였을까 다들 긴장이 풀리며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각자 준수형에 얽힌 옛날이야기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빵을 사들고 거의 매일 친구사이 사무실에 찾아가서 준수형과 먹었다던 이, 일찍 퇴근하고  사무실에 가는 날이면 피곤에 지친 그의 얼굴 마주하기가 미안했다던 이, 사무실 창밖을 내다보던 준수형의 표정에서 빛나던 포스가 잊혀지지 않는다는 이...


 내가 가지고 있는 준수형의 기억들도 조금씩 떠올랐다.
모두들 즐거운 기억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데 나에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준수형은 세상에 작별을 고하기 직전, 병상에 누워 있는 처참하게 망가진 모습이다. 

 처음 친구사이 사무실을 갔을 때 말을 걸어준 이도 준수형이었고, 같이 소식지를 만든다거나, 세미나며 행사를 준비할 때 준수형은 항상 곁에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기즈베/이쁜이의 역할을 했다고나 할까... 뒷풀이에선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아류스런 목청을 자랑했고 노래방에서 혜은이의 노래를 열창할 때는 갈라언니적 역할을 했고, 논쟁할 때는 직격탄을 스스럼없이 날리는 정애언니적 역할을 톡톡히 했다. 분명 웃고 떠들며 즐기던 시간들이 더 많았었는데... 좋았던 기억보다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더 선명한 건 서운한 노릇이다.


 초동회를 거쳐 친구사이가 만들어지던 구십년대 중반... 오준수는 성깔 있는 친구사이의 맏언니이자 당시 게이커뮤니티의 대표적 혹은 유일한 활동가였다. 
 하지만 준수형이 가끔 말하곤 하던‘오준수의 전성기’는 동성애자인권운동이 태동한 후가 아니라 태동하기까지, 즉 ‘동성애자’라는 단어조차 입에 올리기 힘들었던 팔십년대에서 구십년대 초반 사이임은 분명하다. 

 그는 활동가이기 이전에 섬세하면서 도도하고 기갈스러운 ‘진짜게이’이기 때문이다. 종로 주변의 게이하위문화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당당한‘호모섹휘’로 이십대를 보낸 이, 사랑에 몸을 내던지며 울고 웃던 이가 그다. 에이즈에 감염된 걸 알고서는 예방운동 활동에도 잠시 몸담았으며 이유 없이 손가락질 받는 삶을 항변하고자 수기집도 펴냈으며, 얼굴에 철판을 깔고 게이빠나 극장에 전단지를 뿌리는 발품을 팔아가며 마침내는 초동회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하기까지 했다.

 친구사이 새내기 시절 나는 그가 꽤 어려웠다. 그의 포스가 살짝 무섭기도 했다. 그는 무례한 세상에 대한 분노를 늘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알 수 없는 방어심으로 단단하게 자신을 위장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몸보다는 머리로 성적지향성을 받아들이며 커뮤니티에 고개를 들이민 나로서 그는 쉽게 친해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회의가 끝난 뒷풀이 자리에서 난 지금의 성심/기윤처럼 준수형이나 다른 형들에서 멀리 떨어진 구석 또래들 옆에 가서 숨곤 했다.(믿거나 말거나...^^)

 서운한 일이지만 나는 그가 무너지면서 오히려 가까워지게 되었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준수형이 이런 저런 병으로 아프다는 소문이 게이커뮤니티를 떠돌고 있을 즈음 친구사이의 다른 회원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준수형이 못먹고 계속 아프다. 급하게 와서 좀 봐줄 수 없느냐.’는
직업이 직업인지라 나한테 연락을 했겠구나 하면서도 떠돌던 소문들을 모르지 않았기에 그날 링게르병을 들고 찾아가서 직접 주사를 맞혔다. 그는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이미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던 듯 싶었다. 그리고 소문대로 에이즈 감염인이었다. 건강이 나빠지면서 그는 자신의 에이즈 감염 사실이 몇 몇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걸 묵인하는 듯 보였다. 사실은 몇몇이 아니라 파다하게 소문이 났다고 말해줄 순 없었다. 모두가 알면서 모두가 모르는 척 하는 건 참으로 곤혹스런 일이었다. 어쨌든 그 후 가끔 건강문제로 따로 만나면서 그는 편안한 형으로 내게 다가오게 되었다. 사실 그때 뒤늦게나마 치료를 시작했어도 준수형은 더 오랫동안 건강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자존심은 당시로는 유일한 치료였던 약의 복용을 허락지 않았다. 솔직히 그렇게 스스로를 학대하는 건 미친 짓이었지만, 우리가 강제로 그에게 약을 먹일 순 없었다.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에이즈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당당히 활동하겠다는 생각과 피도 눈물도 없이 냉정한 현실 사이에서 그는 고민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 때를 전후하여 준수형과 함께 친구사이를 만들고 활동했던 또래 활동가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활동을 접어가기 시작했다. 
 준수형 역시 오년 동안 함께 해온 친구사이을 떠나는 길을 택했다. 남아있던 주류의 사람들은 그를 잡지 않았다. 그동안 건강상의 이유, 경제적인 이유, 그밖의 이유 등으로 주위 친구들과 지인들을 힘들게 했고, 다들 너무 지쳤다고도 했다.
나도 별 생각없이 주류에 동참했다. 모두가 철이 없었던 시절, 세상도 철이 들지 않았던 탓이라고 자위 해보지만 지금도 남아있는 가슴 한 구석의 죄의식은 어쩔 수 없다. 

 첨에 그는 아는 사람이 있는 감염인 쉼터로 간다고 했었다. 물론 쉼터라고 해도 지금에 비하면 훨씬 조악하고 체계도 없는 곳들이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들은 이야기로 그는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다투고 나오기 일쑤였다. 함께 지냈던 이들은 다들 그의 고집과 성깔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는 동안에도 가끔 직간접적으로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그의 건강은 계속 나빠졌다. 아파하면서도 미련스럽게 의사의 말은 듣지 않았다. 그는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으려 했다. 감염인 활동가로 커밍아웃 하고서 살면 낫지 않겠냐는 권유도 한번더 해봤지만 여전히 감염인에 대한 편견이 말도 못하게 심할 시기였고 그는 한 번 더 용기를 내어주지는 않았다. 

 사실 그는 도도하고 우아한‘진짜게이’였다. 사람들 앞에서 모습을 감춘 후 그로부터 직접 전해들은 이야기였는데... 그가 친구사이를 떠난 건 다른 많은 이유도 있었지만 직접적인 건 망가져 가는 자신의 외모를 다른 사람들이 보는게 싫어서였다고 했다. 당장 밥 사먹을 돈도 없다며 내게 손을 벌리던 절박한 상황에서도 내 얼굴을 보며‘네 피부는 아직 참 곱구나. 나도 예전엔 정말 고왔었는데...’하면서 부러워하던 이가 그였다. 지금 같으면 기갈스런 농담으로 일격을 날리고도 남았겠지만 그땐 그냥 멀뚱멀뚱 그를 쳐다보며 ‘저 사람이 철이 없는건가 뭔가...’ 멍해졌던 기억이 난다.

 소식이 뜸해졌다 싶을 무렵... 그는 한두 번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했던 것 같다. 병문안을 갔다가 돌아올 때면 차라리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들 했다. 적어도 치료는 받을 테니까...
그리고 이제는 건강해지려나 싶었을 무렵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너무 늦었다. 그는 간성혼수에 빠져 있었고 곧 임종했다. 
가족들의 연락은 끊어진지 이미 십년도 지난 상태였다. 당시 친구사이에서 활동하던 우리들이 상주노릇을 하며 우왕좌왕 장례 준비를 해야했다.
어쨌든 친구사이 주변의 많은 이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고 울었다.
그의 짧았던 삶을 애도하며 울었고, 스스로의 한을 못 이겨 울었고, 미안해서 울었고, 또한  반드시 더 나은 세상을 만들리라는 다짐으로 울었다.
동성애자가 슬프게 살았던 시대는 그와 함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한 편 그가 여생을 보냈던 수도원의 수녀님들로부터 몰랐던 사실을 전해 들었다.
마지막 몇 달 동안 그는 ‘루까’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고, 불꽃처럼 열심히 또한 행복하게 살았다고 했다. 병원에도 다니고, 신문배달도 하고, 동성애자이자 에이즈 감염인으로서의 커밍아웃도 하고, 미래를 계획하기도 하고... 
허탈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준수형이 그간의 실수를 만회하고도 남았다는 반가움이 앞섰다.
수녀님은 준수형의 유품을 전해주었다. 유품에 있던 몇 가지 악세서리는 친구들이 나눠 가졌고, 편지와 일기, 준수형의 자전수기집 등을 바탕으로 일 년 후 친구사이에서 추모집을 제작했다.
당시 시골에 살고 있던 나는 시간이 많고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일주일간 손목에 압박붕대를 감은 채 책 한권을 모두 워드로 쳐내기도 했다.(원주녀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

준수형을 시발점으로 많은 감염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누나, 동생, 친구... 길거나 짧거나 다양한 관계를 맺기도 했다. 직업적인 관심을 넘어서는 감염인들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잠시나마 험한 곳에 가서 에이즈 환자를 보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들 중에는 이미 우리 곁을 떠난 이들도 있다. 안타깝다. 세상엔 충분히 할 일이 많고, 조금만 노력하면 되는데 스스로를 아끼지 않아 사랑하는 이들을 슬프게 한다면 난 그들을 미워할 것이다. 또한 세상이 자신의 건강을 돌볼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준수형처럼 세상에 분노해야 마땅할 것이다.

아고... 주저리주저리 글이 너무 길어졌다.
그날 추모미사 겸 이장은 비가 오는 가운데 조용히 치러졌다.
수녀님은 변함없이 온화하셨고 평소 같으면 절대 한자리에 모이기 힘들 지인들이 많이 참석해주었다. 준수형이 하늘에서 참 반가워했을 것 같다.게다가 준수형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젊은 후배들까지 찾아와서 추모에 동참하는 걸 보면 가슴 뿌듯해 할 것이고 짧았지만 잘 살았다고 여길 것이다.
부럽다. 그는 진짜 복받은 사람이다.
다시 한 번.
동성애자가 슬프게 살았던 시대는 이제 안녕.
또한 에이즈 감염인이 숨어서 살았던 시절도 안녕.


- 십 년도 지난 일이라 내 기억이 온전한 지는 모르겠습니다. 혹 사실과 다르게 기억하는 부분이 있다면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무수 2016-10-24 오후 13:59

오래전에 우연히 손에잡힌 책이였습니다..너무나 가슴 아픈 책이였고 아름다운 책이기도했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 때때로 이분은 무얼하며 살아가고있나 종종 생각에 잠겼습니다.일면식 하나없는 그분이 그저 잘살길 바랐었습니다..
누구나 오면 누구나가는게 당연한일이지만 가슴아픈 일이기도하지요..잠안오는 겨울이 오는새벽 갑자기 책 생각이 나서 검색하다 들어왔습니다. 그 겨울허수아비 쓰신작가분..그분에 관한글맞는지요? 아니였다면 대단히 큰 실례를 범한것을 머리숙여 사죄드립니다. 항상 좋은일 가득히시길..

욜사마 2008-09-24 오전 02:12

감동스러운 글입니다. 그는 나를 알지 못하지만 난 그가 병원에 입원해 있고, 임종을 맞이하는 그 순간 병원에 있었습니다. 너무 어린나이여서 모든 것들이 기억나지 않지만 많은 친구사이 회원들이 병원에 있었고. 그의 슬픔을 모두 아파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요즘 <<두개의 미국>>이라는 책을 읽는데. 여기에 에이즈와 동성애 부분이 조금 언급되어 있습니다. 에이즈 상담사로 6년 정도 일한 저자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를 주름잡았던 동성애자 운동의 최대의 성과(특히 에이즈감염인들과 함께한)는 그 어떤것보다 "당장 내일 죽을 줄 알면서도 후대의 동성애자들을 위해, 공동체를 만들고 서로 만날 때 웃으며 만나기. 에이즈 이야기하지 않기, 격려해주기 등의 사람냄새가 물신풍기는 행동을 만들었다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준수님이 한국에서 남긴 건. 그 역할을 하였고. 현재까지 그런 기풍을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10년이 지나 친구사이라는 가족 품으로 돌아온 준수님.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이제부터 친구사이 후배들과 동기들. 선배들의 관심 속에서 편히 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니콘 2008-09-24 오전 03:12

다른 사람이 나를 기억해 주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내 몸이 세상에서 사라진 후에 말입니다.

Sander 2008-09-24 오전 06:1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모르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무심했던 제가 부끄럽네요.

Mr 황 2008-09-24 오전 06:40

앙 ㅠㅠ.~~~. 난 그동안 뭘한거야 ㅠ- ㅠ''

날아가기 2008-09-24 오후 21:44

잊었떤 기억들이 덕분에 새록새록.

damaged..? 2008-09-25 오전 00:09

비록 험한 시절의 한계 때문에 더 손 쓰지 못한 채 활동도 접으셨고 일찍 가셨지만,
그 분도, 그리고 그 때부터 활동하신 모든 분도 정말 고생 많으셨고 존경스럽네요... ㅠㅠ
성소수자라서, 감염인이라서 눈물 흘리던 나날은 정말 이젠 안녕~!

돌멩e 2008-09-27 오전 06:36

연남동 사무실 시절, 앉은뱅이 책상에 혼자 앉아 뭔가에 골몰하던 초췌한 모습의 그를 두어번이나 보았을까. 그 시절의 나야 그저 어쩌다 1년이면 한 두번 손님일 뿐이었으니 그 속 깊은 사정들이야 내 알 수 없었던 시절이었지요.

제 글 가운데 그를 추모하면서 썼던 시가 한편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데이터들을 잃어버리면서 찾을 수가 없게 되었네요. "서 있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시였는데 말입니다. 제 기억에 그의 책 "겨울 허수아비도 사는 일엔 연습이 필요하다" 에도 같은 제목의 시가 있었지요, 아마.

PC통신의 등장과 인터넷의 확산으로 천천히 시들다가 마침내는 없어져 버린 소위 "P살롱(파고다 극장을 그렇게 불렀었습니다)"이라 불리던 극장 입구를 내려다 보는 건너편 2층, 창이 넓은 까페의 이름이 "서 있는 사람들"이었지요.

주말 즈음의 'P살롱'의 상영관 안으로 들어서면 입구부터 사람들로 꽉차서 막혀 있곤 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헉~ 모 이렇게 관객들이 많아?'라고 했을 테지만 정작 객석들은 80퍼센트 이상이 텅텅 비어 있곤 했습니다. 모두들 서서 영화를 보고 있기 때문이고, 그 어두운 상영관 안에서는 대부분의 게이들이 '서서' 크루징이 이루어지곤 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80년대 90년대의 탑골공원과 파고다 극장과 '서 있는 사람들'까페는 그 시절 제게조차 연상적 아이콘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책에 그 시절의 아프고 어둡던, 그리고 절박했던 모습들이 아주 제대로 있는데 말입니다. 책을 구하기가 이젠 어렵지요, 아마.


그는 사는 사는 동안 사랑했고, 아픈 동안 자신과 세상에 투쟁했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사랑하고 있으니... 그도 지금쯤은 웃고 있지 않을까요? 언제 한 번 그가 묻힌 나무 그늘 아래를 찾아 가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김조광수 2008-09-27 오전 08:56

읽다보니 눈물이 나네.
몇분 되지도 않는 단편을 만든다고 추모식에는 가지도 못했어.
나도 연남동 사무실에 갔을 때 그분을 본적이 있었는데 말이야.
언제든 어떤 상황에서든 용기를 내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
막상 닥치면 그럴 수 있을지 장담은 할 수 없지만 말야.

Akey6731 2011-11-12 오전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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